한미동맹이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고의 순방, 회담”이었다고 평가했듯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을 군사안보 동맹에서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킨 한국 외교의 쾌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은 다양한 글로벌 현안에서 협력과 공조를 약속하며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승격됐다. 그러나 많은 장밋빛 기대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에는 헤쳐나가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 글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의 많은 의제 가운데 특히 북한 문제와 지역 현안의 과제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겠다.
지난 21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는 글로벌 백신 협력, 반도체와 배터리 등 기술 협력,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원전 산업 및 기후변화 협력 등 다양한 의제들이 논의되고 합의됐다. 특히 한국 안보에 족쇄로 작용했던 미사일지침이 완전폐기된 것은 미사일 주권을 되찾았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는 평가다. 미사일지침의 폐기 외에도 미국 측은 이번 회담에서 한국 입장을 많이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표적으로 양국 정상이 싱가포르 합의 외에 판문점 선언까지 존중하며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공감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뿐만아니라 양국 정상은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북한 입장도 에둘러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지난달에 열린 미일정상회담에서는 ‘북한 비핵화’라고 언급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존중하고 남북관계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겠다는 배려 차원의 언급으로 해석된다. 심지어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과거 입장까지 번복하며 비핵화에 진전이 있을 경우를 전제로 미북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 입장에 ‘원론적인’ 수준에서나마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대만 문제를 처음으로 거론한 것이다. 양국 정상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남중국해와 여타 지역에서의 국제법 존중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처럼 양국 정상은 백신, 반도체 및 배터리 협력을 넘어 원전 산업 협력, 기후변화 논의 등 글로벌 차원에서 동맹의 위상을 승격시켰을 뿐 아니라, 한반도와 지역 차원에서도 공고한 협력과 공조를 약속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양국은 동맹의 암흑기를 겪었기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의 위상을 복원하고 동맹 진화의 발판을 마련한 성과는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미국 정부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남북관계의 개선을 끌어내고 그것을 북핵 문제 해결의 마중물로 만들겠다는 한국 정부의 의지에 동의한 모습을 보였지만 한미동맹이 복원을 넘어 진화하기 위해서는 향후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비핵화’의 대상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미북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 등을 거론했지만,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다. 사실 한국은 이미 비핵화한 지역이다. 때문에 북한만 비핵화하면 한반도 전체가 비핵화하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쓴 것은 북한 당국을 배려하여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려는 유인 의도가 내포돼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대북 유화책만을 고집하고 있는 문 대통령의 입장도 고려하여 정상회담 분위기 전체를 의식한 미국 측의 양보였다고 볼 수 있다. 싱가포르 합의와 판문점 선언을 존중한다는 내용 역시 그러한 전략적 고려의 일환으로 판단된다. 향후 북한과 있을지 모르는 비핵화 회담에서 다시 공전을 거듭하지 않으려면 한미 양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이 곧 북한 비핵화임에 의견을 함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미국이 확장억지(핵우산)를 철회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반도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는 북한 당국의 강변에 말려들어 회담은 쳇바퀴 구르듯 돌아가고 한미 간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둘째, 북한의 입장이 주목된다. 한미 양국 정상은 이번 회담을 통해 공을 다시 북한 당국에 넘겼지만, 북한 당국에서 한미 양측의 ‘당근’을 덥석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최근까지 북한 당국은 거친 담화를 통해 한미 양국을 강하게 비난해왔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정상회담의 원론적인 유화 메시지보다 양국 정상의 구체적인 합의에 주목하며 반발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23일 16시 현재까지 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북한 당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나온 북한 인권 개선 약속과 한국의 미사일지침 완전 폐기에 더욱 주목할 듯 싶다.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인권문제의 거론은 최고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한 인권문제의 개선에도 노력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든지 판문점 선언의 존중같은 내용을 원론적인 미사여구로 치부할 공산이 크다. 게다가 이번에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까지 폐기됐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자위권에 심각한 위협 요인이 발생했다고 강변할 개연성도 크다. 요컨대 북한 당국을 대화로 유인하기 위한 이니셔티브들이 온전한 효과를 발휘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셋째, 북한 당국의 통미봉남 행태가 더욱 노골화할 수 있다. 북한 당국이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력에 의문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과연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제안들을 얼마나 실현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당국은 바이든 정부를 상대로 시간벌기에 치중하면서 핵 능력을 완성하고 문재인 정부보다는 차기 한국 정부를 상대하는 것이 몸값을 올리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할 법하다.
‘김정은 조선’을 구축하는 데 여념이 없는 북한 당국은 최근에도 자력갱생을 위해 내부기강을 다잡고 있어 한미 양국의 제안을 수용할지도 의문이다. 북한 당국은 지난달 29일 열린 제10차 청년동맹대회에서 반사회주의적인 요소를 일소하고 사상무장을 강화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와중에 한국과 미국의 대화 제안에 제대로 응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북한 당국이 미국과는 소통하면서 한국을 철저히 배제하는 경우 한미동맹에는 또 다른 시련이 다가올 수 있다.
넷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발휘해야 할 전략적 스탠스가 한국 정부 대북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하며 미중 갈등이 첨예화할 시 주한미군을 투입할 수 있다는 구상을 지니고 있다. 가뜩이나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 미사일의 사거리 제한이 풀려 한국 미사일이 기술적으로는 중국 베이징까지 사정권에 넣을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가 한국과 미국의 전략 의도에 의구심을 지닐 수 있는 상황인데 주한미군의 운용까지 중국을 타겟으로 설정한다면 중국의 북핵 협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현재에도 사드 배치 문제로 한국과 중국이 미묘한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데 미사일지침 폐기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국에 대한 중국의 압박을 가중시켜 새롭게 설정된 한미동맹에 커다란 딜레마를 지울 수 있다.
글로벌 전략동맹으로 화려하게 복원된 한미동맹은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가치의 공유도 중요하지만 국익의 교집합이 더욱 커져야 한다는 점을 절절히 말해주고 있다. 북핵 문제의 해결이나 중국 견제뿐 아니라 다양한 글로벌 현안들에 관한 양국 국익의 접점이 늘어난다면 한미동맹은 앞으로도 더욱 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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