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운전석 앉겠다 했지만 차가 안 움직이는 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7일로 100일이 됐지만, 자신했던 남북관계 복원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고 남북관계 운전석에 앉겠다던 공약이 무색하게, 현재 정부는 북한이 대화 제의에 호응해오길 기다리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모습이다. 북한의 셈법을 꿰뚫어 보지 못한 채 ‘대화만능론’에 치우쳤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측 대화 제의에 대한 북한의 냉랭한 반응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예상된 바다. 정부는 출범 직후 민간 대북접촉을 잇달아 승인하며 남북대화 재개의 물꼬를 트려 했으나, 북한은 인도지원을 위한 방북마저 퇴짜를 놓으며 정부의 대북구상을 시험대에 올렸다. 당시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은 늘 그래왔다”면서 북한이 새 정부의 대북정책 탐색 과정에 있다는 데 원인을 돌렸다.

하지만 100일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따른 남북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 제의에도 침묵으로 일관한 채, 오히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과 말폭탄 공격에 주력하고 있다. 대화든, 대치든 미국과 하겠다는 ‘통미봉남’ 전략도 여전하다. 북한에 대화를 설득할 카드도, 비핵화를 이끌 카드도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남북관계 주도권마저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정부, 北호응 기다리는 것 외에 대안 내놓지 못해…도발 멈출 레버리지도 부재

물론 보수정권 9년간 단절돼 온 남북관계가 진보정권의 등장으로 단숨에 복원되기란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북한의 ‘침묵’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대화의 문을 열어두겠다는 정부의 입장도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정부가 북한의 호응을 마냥 기다리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데 아쉬운 목소리가 많다. 북한이 호전적인 언행이 계속되자 정부도 ‘도발 중단’을 대화 여건으로 내걸었지만, 정작 북한의 도발을 멈출 레버리지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게 한계로 지적된다.

문 대통령도 이렇다 할 복안을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침묵을 타개할 해법을 묻는 말에 “남북 간에 대화가 재개돼야 한다. 그에 대해서 우리가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한이 ICBM 탄도미사일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무기화하는 것을 레드라인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점점 레드라인의 임계치에 다가가고 있고, 지금 이 단계에서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을 막아야 한다”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신규 대북제재 결의 만장일치 채택 등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남북관계 문제를 전담하는 통일부에서도 북한의 침묵 속 대북정책 향배를 묻는 말에 수주 째 같은 답변만 내놓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북측이 남북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에 호응해 나옴으로써 남북 간 상호관심사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북측의 긍정적 호응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이어 “‘베를린 구상’과 광복절 경축사에서 분명히 밝힌 바와 같이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갖고 있지 않고 북한의 붕괴나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면서 “통일부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구상인 ‘베를린 구상’의 동력이 상실되지 않도록 북한에 일관되게 메시지를 보내며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정부, ‘대화만능론’ 넘어 北정권 셈법 직시해야…주변국 협조도 절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북한 정권의 셈법과 한반도 정세를 두루 고려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대화 위주의 해법에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보수정권과의 차별화와 ‘남북대화 성사’라는 성과 위주의 구상에 치중한 결과 시기와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대북정책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김광인 코리아선진화연대 소장은 데일리NK에 “냉각된 남북관계를 풀어가기 위해 대화와 교류라는 방법을 택했지만 현재 한반도 정세를 고려할 때 시기가 적절치 않았던 부분이 있다”면서 “기존의 대북정책 방향이 현실과 맞지 않으면 상황에 맞춰가야 할 필요도 있는데, 대화에만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김영환 준비하는미래 대표도 “북한 문제의 본질이나 핵심을 파헤치는 데 다소 나이브하게 접근한 측면이 있다. 북한 정권이 대화나 협상으로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라면서 “유화정책을 기본으로 가되 사드 임시 배치 등 나름대로 강경책도 추진하겠다는 건데, 다소 비현실적인 환상에 매달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남북관계 운전석에 앉겠다고는 했지만, 차가 움직이지 않고 있지 않나”라면서 “지난 정권에서부터 이어진 외교안보 공백이나 남북관계 경색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비교적 정리는 잘 했지만, 아직 남북관계 주도권을 잡을 동력을 확보하진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남북관계에 있어 정부의 입지가 더 이상 좁아지지 않도록 주변국과의 공조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반도 문제에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시도와 함께, 국제사회의 대북정책 방향에 발맞춰 가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북한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긴밀한 대화와 협력이 전제돼야 한다. 한국이 미국과 상반된 주장만 하면 미국 역시 한국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겠나”라면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줘야 남북관계 운전석에 앉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낼 레버리지가 필요하다. 북핵 위협을 목전에 뒀을 때 조건부 핵무장론의 타당성이나 핵무장 기본 계획을 검토할 수도 있어야 한다”면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지 않는 선에서 한국을 지키기 위해 핵무장론을 ‘검토’하는 단계까지만 가더라도 미국과 중국을 움직일 레버리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북한 체제의 본질을 더욱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 ‘남북관계 복원’과 같은 수사와는 별개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 김 씨 정권을 유지하려는 북한의 속셈을 직시해 대북전략을 구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북한 문제의 근원은 북한 체제에 있는데, 북한 체제의 근본적 변화 구상이 부재한 채 어떻게 비핵화와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라면서 “북핵과 북한 체제, 북한인권 문제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진전 없는 대북정책도 숨통을 틀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