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北 연이은 ICBM 도발에 ‘원유 공급 중단’ 카드 쓸까

북한이 28일 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에 나서면서 국제사회의 대북공조 향배에 이목이 쏠린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4일 북한의 ‘화성-14형’ 첫 시험발사 이후 한 달 가까이 대북제재 결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추가 시험발사로 안보리 이사국 간 협의에 탄력이 붙을지 주목된다.

외교가에선 북한의 지난 4차, 5차 핵실험 이후 각각 대북제재 결의 2270호, 2321호를 채택하기까지의 기간과 비교했을 때, 이번 ‘화성-14형’에 대응한 대북제재 결의 채택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더욱 짧을 것이라 보고 있다. 앞서 2270호는 채택까지 57일, 2321호는 83일이 걸렸다.

내용면에 있어서도 그간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들의 구멍(loophole)로 여겨졌던 부분을 메우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안보리 결의 2270호 채택 당시 ‘유엔 비군사적 제재 역사상 초강경’이라는 평가가 나왔음에도 불구, 북한의 통치자금 유입 통로를 차단하는 데 허점이 있어 2321호가 이를 메우는 데 주력했던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자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의 원유공급 중단, 광물 제재범위 확대 등 추가 조치를 안보리 결의안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왔다. 특히 한 달 사이 북한이 미 본토를 겨냥한 ICBM 시험발사를 연이어 진행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외화자금줄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도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29일 기자들과 만나 “지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270호, 2321호 채택 과정과 비교했을 때 이사국들 간에 의견을 교환하는 속도가 빠른 감이 있다”면서 “‘화성-14형’ 첫 시험발사 이후부터 계속되는 의견 교환에 있어서 일부 진전도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 당국자는 “통상 안보리 이사국들은 결의안 내용에 관해 논의한 뒤 제재 대상으로 어디까지 포함시킬지 논의한다”면서 “아직 후자까지는 논의되지 않았고 초기 단계에 있다고 보면 된다. 오늘, 내일 사이에 신규 대북제재 결의가 채택될 상황은 아닌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안보리 이사국들 모두 북한의 ‘화성-14형’ 시험발사가 명백한 안보리 위반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면서 “다만 제재 강도와 관련해 협의가 필요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당국자는 또 “지난 5일 개최된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니키 헤일리 유엔 미국 대사가 안보리 제재에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북한 해상·항공 활동 제한, 북한 고위 인사 포함 제재 대상자 추가 등을 추가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면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안보리 결의안 내 주요 요소에 관한 논의가 계속돼 왔고, 일부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직 안보리에서 협의 중이기 때문에 (제재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다”면서도 “헤일리 대사가 지적한 내용들에 힌트가 담겨 있다고 본다. 대북 원유수출 제한이나 석탄 수출 금지, 해상·항공 활동 금지 등을 쉽게 짐작할 수 있고, 북한 고위 인사 제재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갈지도 유추할 수 있지 않나”라고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중국 등 제3국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 조치가 안보리 대북제재 차원에서 본격 시행될지도 관심이다. 이제까지 미국은 독자제재는 물론, 안보리 차원의 제재에서도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 및 개인을 제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다만 이는 북한과 가장 많은 거래를 이어오고 있는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만큼 결의안에 포함되기 어려웠다.

외교부 당국자는 “안보리 결의 2321호가 나올 때까지 약 석 달이 걸렸는데, 시간이 지체되자 미국에서도 안보리 결의 채택만 기다릴 게 아니라 그 전에 강력한 독자제재를 시행하고 이를 대중 압박 레버리지로 삼고자 한 것”이라면서 “안보리 제재라는 건 정치적 타협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걸 모두 포함시킬 수 없다. 때문에 빈 공간을 메우는 차원에서 독자제재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우리 정부 차원의 독자 대북제재가 취해질 가능성에도 이목이 쏠린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 직후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필요시 독자 대북제재 방안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다만 북한의 ICBM 개발이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정부가 북한 도발 국면에서도 ‘대화 기조’를 견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실효성 있는 독자 대북제재를 내놓을 수 있을지 의견이 갈린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미 5·24조치라는 강력한 대북제재가 있는 만큼 이제까지 정부는 상징적인 측면에서 대북제재의 빈틈을 메우는 요소들을 발굴하려 했다”면서 “이번에도 독자 대북제재를 취할 경우 한미, 한미일 공조라는 틀에서 검토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독자제재에 대한 협조 수위를 조절하는 차원에서 그치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는 “공조를 한다는 게 미국이 제재 조치를 취했다고 해서 우리가 자동적으로 해야 하는 건 아니다”면서 “우리 나름의 내부적 절차와 검토를 선행한 후 독자제재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도발 국면 속에서도 베를린 구상 등 ‘대화 기조’가 계속 유지되는지에 대해서도 이 당국자는 “정부는 나름 소신을 갖고 큰 틀에서 대북 정책 방향과 철학을 제시해왔다”면서 “애초에 우리가 대화 제의한다고 해서 북한이 당장 도발을 중지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일희일비 하지 말고 인내심과 끈기를 가진 채 대북구상을 이어간다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이 당국자는 북한 ‘화성-14형’이 ICBM으로 확인될 시 정부의 레드라인(임계치)를 넘는 것이냐는 질문에 “정부는 북한의 특정 도발을 두고 레드라인이니 게임 체인저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면서 “다만 북한의 이번 시험 발사는 기술적으로 중대한 진전을 보였기 때문에 엄중성을 갖고 다뤄나가려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후 북한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에 대응해 열린 외교부 간부회의에서 “안보리 긴급회의 소집을 포함해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가 조속히 도출되도록 협의하고 우방국 차원에서 추가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면밀히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강 장관은 이번 미사일 발사가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뤄졌다고 지적하면서 “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며, 한반도와 국제평화·안전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써 우리 정부도 강력히 비판하는 정부 성명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주 참석하는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등 아세안 관련 외무장관 회의 계기에도 북한의 도발 억제 방안을 협의하고 강력한 대북 경고 메시지가 발신되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강 장관은 또 “올해 들어 11번째 탄도미사일 발사로, 발사 시각과 장소 모두 최근 패턴에서 벗어난 것이며, 현재 진행 중인 발사체 유형에 대한 분석을 지켜봐야겠으나 기술적 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인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북한의 도발 행위에) 단호한 대응 조치를 하면서도 베를린 구상의 동력이 상실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부분을 유념해달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