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동상 밝히기’가 전력공급 1순위

▲ 김일성 동상은 야간에도 환히 밝혀있어야 한다

기자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평안북도 도(道)배전부에서 전기기사 겸 감독원으로 근무한 바 있다.

이번에 한국 정부가 공개한 ‘중대제안’의 대북전력 직접지원은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는 에너지문제를 풀 수 있는 생명선과도 같다.

북한 경제침체의 걸림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력문제이다. 북한이 이것을 자력갱생의 힘으로 풀기에는 역부족이다. 남한의 이번 전력지원은 민족경제의 동시발전과 북한주민들에게 광명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제안이다.

북한 정권은 즉각 모든 핵을 폐기하고 이러한 지원을 사심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전기를 배분하고 있으며, 전력상황은 어떠한지에 대해 깊이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1990년대 초반부터 전력 사정 급격히 나빠져

북한은 1980년 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 ‘10대 전망목표’에서 “전력 1000억kWh를 10년 안에 생산한다”고 공포한 바 있다. 이러한 방대한(?) 목표는 그야말로 말뿐인 선전에 불과하고 실현에 옮겨질 수도 없는 것이다.

당시 대학 교수들은 “우리가 1000억kWh를 생산하려면 현존 발전소들을 만가동(풀 가동)해도 500만kW 이상의 발전설비가 추가로 필요하다”면서 “그러려면 수풍발전소와 같은 발전소를 7개는 더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회적으로, 당의 목표가 실현불가능하다는 회의감을 표현한 것이다. 당이 원대한 목표를 제시한 이후로도, 북한에 건설된 발전소는 별로 없다.

1980년대 말까지는 전기가 괜찮게 공급되었다. 군수공장, 특급공장은 물론 지방공장에도 전기가 공급되었다. 단지 요구하는 만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주민용 전기가 끊어지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혹 자연재해로 전주(電柱)가 넘어지거나 전선이 단절되어도 배전소에서 즉각 출동해 사고를 퇴치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도 비상이 걸려 지체 없이 급전(給電)을 보장하곤 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에 들어 전기가 턱없이 모자라기 시작했다. 석탄이 모자라는 화력발전소들은 가동률이 저하됐고, 그나마 있는 수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마저 중국으로 넘기다 보니 국내에는 전기가 고갈되다시피 했다. 북-중 국경지역에 있는 수력발전소는 북한과 중국이 공동 개발해 생산된 전기를 반반씩 나눠가졌는데, 이때에는 원유(原油)와 식량을 받아 먹고 대부분의 전기를 중국에 넘긴 것이다.

군수공장에 최우선, 일반공장은 교차생산

생산과 수요를 놓고 중앙과 지방의 ‘급전사령탑’ 사이에 마찰이 자주 생겨났다. 서로 먼저 가져가려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 인공위성에서 내려다 본 한반도 야경. 북한은 암흑 천지다.

전기가 턱없이 부족해지자 전력공급대상을 부류별로 나누고 전력리미트(limit)도 새로 짰다.

우선, 지하에 들어가 있는 군수공장과 전략물자를 생산하는 군수직장, 군수일용 등에는 가장 우선적으로 전기를 공급하기로 했다. 또한 휴전선을 지키고 있는 군부대와 군수물자 보급소는 전기가 중단되지 않았다.

그리고 종전의 통일적인 전력공급망을 군수공장선(線), 특수기관선, 민수공장선, 주민용 선로로 분리되게 되었다. 그 중 ‘특급대상’으로는 특수기관(김일성동상, 혁명역사연구실, 당 ∙ 보안서 ∙ 보위부 등의 건물), 체신소(우체국), 병원(수술실, 응급실) 등이 속한다. 여기는 24시간 정전을 모른다.

다른 조치로, ‘교차생산조직’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교차생산조직은 ‘주석결정 00호’로 집행할 데 대한 엄격한 명령이 떨어졌다. 북한에서 주석결정은 누구도 거역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최고의 명령이다.

‘교차생산조직’이란 정해진 시간에 공장들이 교대로 가동하는 형태로, 모자란 전력량으로 수요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방법이다.

공장에서 필요한 전력 이상으로 남용하면 전동기에서 열이 나고, 주파수와 전압이 떨어져 전동기가 타고, 제품에 오작동이 생긴다. 주민용인 경우 220V의 전압이 최하 60~80V, 3300V인 전기철도 전압은 1800V까지 내려가는 것은 다반사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교차생산을 시키기 위해 전력공업성에서 각 배전소에 위임해 감독권을 줬다. 각 공장마다 교차생산 시간표를 짜고 실행하였고, 감독원들은 전기 도용과 남용, 교차시간을 감독 통제했다. 공장들에 공급되는 전기할당량을 대폭 줄이고 그것을 초과하는 지배인들은 철직, 심지어 감옥까지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북한의 전력사정이 긴박했음을 증명해주는 사례다.

1차

2차

3차

4차

김일성동상,

혁명역사연구실,

혁명사적관,

우상화선전물

군수공업,

특수기관

(당, 안전부,

보위부)

공장,

기업소

주민용

▲ 북한의 전력공급 우선 순위

주민들에게는 전기도 ‘명절용’

전력공급대상 중 가장 말단이 주민공급이다. 공장이 먹고 나머지가 주민들의 몫이었다. 전기공급이 최악으로 떨어지던 1994년에는 가정에 들어가는 전기를 동력선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켜 버렸다. 앞서 설명했듯 전기선이 군 따로, 특수기관 따로, 생산시설 따로, 주민용 따로, 계통을 따라 분리된 것이다.

당기관의 책임비서와 인민위원장, 특수기관 책임자들의 집은 청사(廳舍)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거기에 연결해 도둑전기를 썼다. 그러자 전기에 대해 알지 못하는 주민들이 그 도둑전기선에 자기도 연결하면 전기가 통할 줄 알고 나름대로 개조를 하다가 사고가 빈발했다. 계통이 다른 전기선들은 서로 전압도 달랐는데 이것을 막무가내로 잇다 보니 전반적으로 전압이 약해지고 전력손실이 심해진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전기는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날만 공급받는 ‘명절용’이다. 설날, 명절연휴 이틀 동안 TV를 볼 수 있다. 명절이어서 공장이 가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등을 켤 수 없는 주민들은 대용으로 경유를 시장에서 한 병에 40원씩(당시 노동자 월급이 100원)에 구입하여 등잔불을 켰다. 등잔에서 나오는 그을음으로 인해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온통 새까맣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영진 기자(평양 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