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모 34년 감옥생활, 그것은 천국”

▲ 6.15 기념행사에 참석한 비전향 장기수

1993년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노인이 송환되었을 때 북한사회는 환영행사로 떠들썩했다. 감옥에서 34년간 살면서도 전향서를 쓰지 않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왔으니 주민들에게 ‘충성심의 표상’으로 선전하기가 딱 좋았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까지 제작되었다.

“남조선 감옥은 사람이 살아서 나와요?”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엉뚱했다.

‘아니, 남조선의 감옥은 대체 어떤 곳이기에 수십 년 동안 갇혀있던 사람이 살아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북한에서는 어떠한 수감시설이든 그 안에서 30년 이상을 살아 버틴다는 것이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남조선의 감옥에서는 3끼 밥을 여러 종류의 국과 반찬과 함께 꼬박꼬박 주고, 그것을 먹지 않으면서 ‘단식투쟁’까지 할 수 있다니, 어떤 탈북자는 ‘그것은 감옥이 아니라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의 소감을 전한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경비대원으로 근무한 적 있는 탈북한 안명철씨의 수기 『그들이 울고 있다』에는 이러한 주민들의 반응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이인모가 이송된 후에 만들어진 북한의 현재 최고의 영화 「민족과 운명」의 속편 12~14부 이인모 편은 우습기 그지없었다. 이인모의 감옥살이를 담은 이 영화는 이인모가 감옥 안에서 혹독한 굶주림과 뭇매로 인해 다리가 불구가 되고 폐인이 되었고 배고픔에 쥐를 잡아먹는 장면을 담았다. 이것을 보던 경비대원 모두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34년간 옥살이를 했으면 응당 시체가 되어야 할 사람이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는 34년은 고사하고 3개월 간 구류장 생활을 하고 나면 사람은 완전 폐인이 되어 출소 후 5∼6개월 이내에 죽고 만다. 그리고 배고픔에 쥐를 잡아먹는 장면은 사람이 연기를 하면서 쥐를 먹는데 사람이 배가 고프면 연기는 고사하고 닥치는 대로 입안에 넣기 바쁜데 우습기 그지없었다.”
– 『그들이 울고 있다』 107p

노대통령 발언, ‘진정성’ 있었을까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대체 어떤 곳이기에 ‘남한의 감옥은 천국’이라고 한단 말인가.”

부시 대통령이 『평양의 어항』(한글판은 『수용소의 노래』)을 읽고 저자 강철환씨를 백악관에 초청, 북한의 인권실태와 개선방법에 대해 직접 들어보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과연 정치범수용소의 실태는 어떠하며, 왜 만들어졌는지, 어떤 사람들이 갇혀있는지, 수용소의 증언자들은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왔는지, 수용소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지 등을 묻는 독자들의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취임 후 첫 미국방문 기간중 “내가 북한에 살았다면 지금쯤 정치범수용소에 있을 것”이라며 과거 자신의 민주화 투쟁 경력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노대통령이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다룬 책을 한권이라도 직접 읽어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발언이 진정성을 담은 것이었다면, 그리고 정치범수용소의 실태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런 ‘사치스런’ 말을 입에 올리기에 앞서 이미 북한인권 문제는 대북정책의 가장 중요한 어젠더로 올라 있을 것이다.

DailyNK는 앞으로 7회에 걸쳐 정치범수용소(북에서는 ‘독재대상구역’이라 부른다)에 수감되었거나 경비대원으로 있다 탈북한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특별기획 ‘아! 정치범수용소’를 연재한다.

90년대 이후 실체적 진실 드러내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1990년대 초반까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런 곳이 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은 있었지만 그곳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탈북자들은 없었다.

그러나 정치범수용소에서 석방된 후 탈북한 강철환, 안혁씨, 이들과는 반대로 수용소 경비대원으로 있다가 탈출한 안명철씨의 증언으로 그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 1998년 국내에 탈북자들이 대량 입국하면서 그 가운데 정치범수용소 경험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이들은 사실 ‘정치범’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출신배경과 성장과정,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이유가 각기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오히려 전부 북한체제(김일성, 김정일)에 충성을 다했던 사람들이었다. 일반 주민들보다 살림살이가 괜찮았던, 속된 말로 잘나가는 집안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강철환씨의 집안은 일본 조총련 내에서도 상당한 고위직이고 거액의 헌금(사실상 전 재산)을 내고 북송선을 탄 이른바 ‘귀국자’ 집안 출신이고, 안혁씨의 경우는 아버지가 고위간부인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나 학생시절에 남들은 엄두도 못 낼 오리털 파카를 입고 다녔다고 증언하고 있다.

강철환씨는 조총련 내부의 누군가가 누명을 씌워 할아버지가 사실상 숙청당하자 일가족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고, 안혁씨는 친구들과 백두산 근처로 놀러갔다가 중국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 더욱이 안혁씨는 중국에 잠깐 구경 갔다 온 후 아무래도 문제가 될 것 같아 근처 국가보위부에 ‘중국에 갔다왔다’고 자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간첩으로 몰려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수용소 출신 증언, 이제는 교차확인 가능

처음 이들이 수기를 냈을 때 ‘설마 이렇게까지……’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강철환씨와 안혁씨가 수감되었던 요덕 15호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의 국내 입국이 줄을 지었다. 2005년 6월 현재 요덕 15호 수용소 출신 탈북자는 10명이다.

1970~78년까지 수감되어 있었던 김영순씨, 1988~1992년 수감되었던 김태진씨, 1995~1999년 수감되었던 김정일 경호원 출신의 이영국씨, 그리고 이영국씨와 같은 기간에 수감되어 있었던 P모(2001년 출소), K모씨 등이 있다.

▲ 북한민주화운동본부 홈페이지 화면

이들의 요덕 15호 수용소에 대한 증언은 정확히 일치한다. 특정 시기 있었던 사건, 수감되었던 주요인물, 수인들의 생활, 체벌의 방법 등을 서로 다른 곳에서 따로 물어보아도 거의 틀림없이 일치한다.

따라서 이들의 증언이 과장되어 있다거나 거짓말이라는 친북좌파들의 주장은 이제 설 자리를 잃었다. 그토록 의심스러우면 북한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단체인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 찾아가 언제든지 물어보면 된다.

혁명화구역은 완전통제구역에 비하면 ‘또다른 천국’

이들의 증언으로 인해 검은 장막 속에 가리워져 있던 수용소의 진실이 하나둘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를 또 한번 놀라게 하는 것은 강철환, 안혁씨를 비롯해 현재 국내에 입국한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은 모두가 ‘혁명화구역’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혁명화구역은 형량을 다 채우면 출소할 수 있는, 정치범수용소 중에서도 비교적 생활이 나은 곳이다.

혁명화구역이 아닌 ‘완전통제구역’을 증언하고 있는 탈북자는 경비대원 출신인 안명철씨이다. 그가 증언하고 있는 완전통제구역의 실상은 인간 생지옥을 방불케 한다. 아직껏 완전통제구역에서 수인으로 있었던 탈북자들의 증언은 없다. 하지만 언젠가 진실은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북한 정치범수용소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오가와 하루히사 일본 동경대 교수는 사람들이 정치범수용소에 무관심한 이유를 “그들이 증언하고 있는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이 너무나 끔찍하여 오히려 잘 믿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은 선진국들에는 아직 이들의 증언이 번역되지 않아 그 구체적 참상을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너무나 끔찍하다고 진실이 아닌 것이 아니다. 이제 줄을 잇는 진실 앞에, 끔찍해 눈을 감고 싶어도 우리는 그 진실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에 이것을 알려야 한다. 부시대통령과 강철환씨의 만남은 그 작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편에 계속)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