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통신은 11월 16일 김정은이 “삼지연시 건설사업이 결속되는 것과 관련해 3단계 공사실태를 료해(파악)하기 위해 삼지연시를 현지지도했다”라고 보도했다. 지난달 12일 국방발전전람회에서 김정은이 기념 연설을 한 이후 35일 만의 공개 행보이다. 한편 북한 선전매체는 이번 김정은의 현지지도에 앞서 삼지연 건설에 참여한 216사단을 소개하면서 “216사단의 창조 방식에서 특징적인 것은 자력갱생의 토대를 튼튼히 구축하고 과학기술을 생명선으로 틀어쥐었으며 집단주의 위력을 최대로 발양시킨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면 북한이 선전하는 집단주의란 무엇인가?
1998년에 개봉돼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트루먼 쇼」라는 미국 영화가 있다. 영화 초반, 주인공은 돌아가신 줄 알았던 아버지가 탄 버스를 쫓아가다 커다란 문 앞에 서게 된다. 문 위에는 ‘UNUS PRO OMNIBUS, OMNES PRO UNO’라는 라틴어 격언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의미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One for all, all for one)’이다.
이 라틴어 문구는 셰익스피어의 서사시인 「루크레티아의 능욕 (The Rape of Lucrece, 1594년)」과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1844년)」 등 문학 작품에서 인용되어 많이 알려졌다. 또 19세기 후반 스위스에서는 당시에 불어 닥친 강력한 가을 폭풍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구호(救護)를 독려하기 위한 구호(口號)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라틴어 격언에 헌법적 가치를 부여한 체제가 있다. 다름 아닌 북한이다. 1998년 개정된 북한 헌법 제63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한다”라고 명기하고 있다. 이 말은 천리마 운동이 시작된 직후인 1959년 초, 김일성이 평안남도 강선제강소를 현지지도할 때 그곳 노동자들에게 서로 돕고 이끌면서 집단적으로 혁신을 일으킬 것을 강조하면서 제시한 것으로서, 북한 체제의 특성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구호이기도 하다.
다만, 북한 당국은 외부 세계의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대외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 웹사이트에 올린 “집단주의와 전체주의는 어떻게 구별되는가”라는 글(2005.6.27.)에서, “집단주의를 전체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완전한 날조”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집단주의는 공동의 이익을 존중할 뿐 아니라 집단에 속한 모든 성원들의 이익을 다 같이 귀중히 여기는 사상이지만, 전체주의는 개인은 전체에 복종해야 한다는 미명 아래 통치계급의 탐욕적인 이익을 위하여 근로인민대중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반동적 이념이다. 전체주의에서 말하는 전체는 국가 주권을 틀어쥔 독점자본가, 대지주, 반동 관료배, 군벌과 같은 극소수 특권계층을 의미하며, 집단주의가 반대하는 것은 개인의 이익 자체가 아니라 집단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더 기본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집단주의를 표방한다는 북한의 실제 모습은 어떠한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 이른바 집단주의는 그 자체에 개인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을 조화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한 마디로 쌍방향적이다. 결코 일방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북한 헌법과 그보다 상위 규범으로 작동하는 노동당 규약에 명기된 규정들을 보면, 북한은 주민 전체는 물론이고 국가 체제와 노동당 조직까지도 백두 혈통의 현존 집권자 ‘특별한 한 사람’을 위해 복무할 때만 존재 가치를 부여받는 체제이다. 「우리 민족끼리」의 설명을 그대로 따른다면, 북한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전체주의 체제라고 할 것이다.
이 같은 북한의 집단주의는 1980년대 말에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 등장하면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의하면, 집단의 생명은 곧 사회정치적 생명으로서 개인의 생명, 육체적 생명보다 더 귀중할 뿐만 아니라 집단과 더불어 영생한다. 인간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성원이 됨으로써 수령과 혈연적으로 연결되며, 육체적 생명과는 관계없이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생명력이 부여된다는 설명이다. 쉽게 설명하면, 수령의 눈 밖에 벗어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마치 중세 시대에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한 영주는 어떤 정치적 영향력도 할 수 없게 되듯이 말이다.
이런 체제에서는 필연적으로 최고 권력자를 중심으로 해서 작동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일성 사망 1주기인 1995년 7월 8일에 개관한 금수산태양궁전이다. 여기에 투입된 비용은 약 8억 9,00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문제는 당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런 비상 상황을 외면한 채, ‘친애하는’ 북한 지도자는 망자(亡者)의 전시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낭비했고, 결과적으로 수많은 아사자를 발생하게 하였다.
북한의 이런 현실에 대해,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북한의 재정 운영 중 20%는 김정일이 자유로 사용하는 예산이고, 50%는 군비이며, 인민의 생활에 돌아가는 돈은 30%에 불과하다”라고 폭로한 바 있다.
한편 북한 집단주의는 주요 계기 시마다 통치목적, 특히 경제 목표 달성을 위해 강조되어왔다. 예를 들어 당 창건 60돌이 되는 연도인 2005년에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노동신문 사설(2005.6.11)을 통해, “우리는 집단주의 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한 우리 인민의 정치 사상적 위력을 약화시키려는 적들의 사상 문화적 침투 책동에 언제나 경각성을 높여야 하며, 우리 인민의 집단주의적 생활방식과 어긋나는 자그마한 요소도 우리 사회에 절대로 발붙일 수 없게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으며, 같은 해 7월 2일 발표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중앙군사위원회 공동구호에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가 포함되었다. 이외에도 같은 해 6월부터는 모든 기관·기업소에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일제히 내걸기도 했다.
또 정권 창건 60주가 되는 2008년에는 「공화국창건 60돐(돌)을 맞는 올해를 조국청사에 아로 새겨질 력사적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라는 제목의 로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등 3개 신문 신년공동사설에서 “경제관리에서 사회주의 원칙, 집단주의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여야 한다”라고 집단주의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북한은 최근 삼지연시를 건설하는 216사단을 비롯해서 경제 각 분야에서 집단주의가 이룩한 성과를 보도하고 있는데, 이는 올해 새로운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첫해 결산을 앞두고 ‘집단주의 정신’의 발휘를 강조함으로써 막판 성과를 짜내려는 노력(勞力) 착취이자 또 하나의 천리마, 만리마 운동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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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북한의 이런 행태는 지난 2월 28일 조선중앙TV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내보낸 데 이어 노동신문 사설(3.1)에서 “오늘 우리 당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원칙을 더욱 철저히 구현해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던 데서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이 내세우는 집단주의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전체주의 체제를 호도해 보려는 포장지인 동시에 북한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오직 한 사람에게 복속게 하는’ 통치 수단인 것이다.
끝으로 ‘북한 집단주의’라는 영화 촬영장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희비극적 에피소드 두 가지를 소개한다.
한 편의 희극 : 지난 6월 4일, 한 달여간 공개 활동이 없었던 김정은이 정치국 회의에 참석하자, 그의 체중 감량과 관련한 관측이 이어졌다. 김정은의 밀착 사진을 본 일부 전문가들은 “손목에 착용한 시곗줄 3칸이 줄었다”라거나 “얼굴 살이 빠져 턱선이 생겼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정은의 체중이 줄어든 모습과 관련, 어느 고위 탈북자는 “집권 10년 차를 맞으며 홀로서기에 나설 만큼 지도자의 위상을 굳혔고, 건강을 고려해 북한에서 ‘살까기’라고 부르는 다이어트에 나선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이런 와중에 북한 조선중앙TV는 6월 25일 김정은이 관람한 국무위원회 연주단 녹화 방송을 내보냈는데, 이를 시청한 주민이 그의 ‘수척한 모습’을 걱정하는 인터뷰를 담았다.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김정은)께서 수척하신 모습을 볼 때 인민들은 제일 가슴 아팠다”라는 내용이었다. 김정은의 수척해진 모습이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한 불면불휴(不眠不休) 격무의 ‘흔적’으로 분식한 것이었다. 영락없는 북한판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다.
다른 한 편의 비극 : 십여 년 전, KBS스페셜 ‘북한 3대 권력세습 김정은, 그는 누구인가’ 편에서 토끼풀로 끼니를 잇던 북한 20대 여성의 동영상은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봉두난발에 누더기나 다름없는 옷을 걸친 23세 북한 처녀 향란이는 ‘토끼풀 매서 뭐하니?’라는 물음에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제가 먹으려고요.’라고 했다. 이 동영상은 KBS뿐 아니라 일본 아사히TV와 영국 BBC 등에서도 방영돼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그런지 몇 개월 후, 향란이는 동네 옥수수밭에서 굶어 죽은 모습으로 발견됐다. 지난 6월 평안남도에서 이 여성과 인터뷰를 가진 기자는 “이 여성이 지난 10월 20일경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밝혔다. 그녀의 시신이 발견됐을 때는 이미 부패가 시작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 신고를 받은 해당 지역 인민보안소(경찰)가 무연고자라는 이유로 늑장 대응을 벌이는 바람에 시신이 오랫동안 방치됐던 것이다.
이 두 편의 희비극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내걸고 집단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북한의 속살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야말로 「북한본색(北韓本色)」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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