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용 따로, 개인용 따로…두 권 일기장 쓰는 北 소학교 학생들

개인 일기에는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솔직한 감정과 생각 담아…어려서부터 자기검열 방식 체득

개학
2020년 6월 4일 평양시 대동강구역 옥류소학교의 개학 당일 모습. /사진=북한 대외선전매체 ‘메아리’ 화면캡처

최근 북한 일부 지역의 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이 검열용 일기장과 본심이 담긴 일기장을 따로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에 제출하는 일기와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적은 일기를 구분하는 모습은 북한 사회의 검열 문화에 어린 학생들도 길들여져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데일리NK 함경남도 소식통은 21일 “최근 함흥시 일부 소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사이에서 일기장을 따로 나눠 쓰는 사례가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하나는 학교 선생님에게 검열받는 일기장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속마음과 생각을 솔직하게 적는 개인 일기장”이라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함흥시의 일부 소학교들은 3학년 이상 학생들에게 매일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숙제와 함께 일기 쓰기 숙제를 주고 있다. 이렇게 학생들이 쓴 일기장은 담임교사의 검열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매일 일기를 쓰게 하는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나타난 특징적 변화라고 한다. 예전에는 방학 때에나 일기 쓰기 숙제가 주어졌으나 지금은 때와 관계없는 필수 과제가 됐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소학교 학생들이 일기장을 따로 쓰고 있다는 사실은 부모들이 우연히 자녀의 숨겨둔 개인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면서 드러났다.

실제 이달 초 함흥시의 한 소학교 4학년생의 부모는 자녀의 책들을 정리하던 중 숨겨둔 개일 일기장을 발견했다. 일기에는 “선생님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 어떤 때는 나를 가로보는(째려보는)것 같다. 다른 동무들한테는 웃으면서 나한테는 웃지 않는다. 선생님을 잘 도와주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학교에 가기 싫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소식통은 “이 학생의 가정은 끼니를 거를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넉넉하지도 않은 형편”이라며 “일기를 본 부모는 다른 학부모들처럼 담임교원에게 쌀이나 현금을 자주 챙겨주지 못해 아이가 소외감을 느꼈다는 생각에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어 눈물을 훔쳤다”고 전했다.

또 다른 가정의 소학교 3학년생 개인 일기에는 “운동복이 낡아 새것을 사달라고 하고 싶지만, 어머니가 마음 아파할까 봐 말을 못 하겠다”, “열성자가 되고 싶은데 우리 집이 못살아서 할 수 없다. 열성자는 돈 있는 동무들이 하는 것 같다”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소식통은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녀 문제를 놓고 속얘기를 터놓는 과정에서 비슷한 사례가 확인됐다”며 “그러면서 아이들이 학교에 제출하는 검열용 일기장과 별도로 자신의 솔직한 속마음을 적는 개인 일기장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됐다”고 말했다.

이렇듯 개인 일기장에는 친구나 교사와의 관계에서 느낀 서운함, 어려운 가정형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이루고 싶지만 이룰 수 없는 소망 등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솔직한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다고 한다.

반면 학교에 제출하는 검열용 일기장에는 기념탑 청소, 공부와 숙제, 부모의 일손 돕기 등에서 나타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글이나 앞으로의 결심 등 사회적 기준이나 입맛에 맞춘 모범적이고 형식적인 내용들만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겉으로 해도 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하는 자기검열의 방식을 체득해 일상적인 글쓰기까지 적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아이답지 않게 벌써부터 검열받을 글과 숨겨야 할 글을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 아프다”, “얼마나 검열에 익숙해졌으면 일기장을 나눠 쓸 생각을 했겠느냐”, “힘든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해 일기장에만 적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럽다”라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소식통은 “여기(북한)서는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한 이야기를 밖에서 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반복해서 받는다”며 “이런 게 반복되면서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공식적으로 해도 될 말과 혼자만 간직해야 할 말을 자연스럽게 구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모들은 개인 일기장에 적힌 자녀의 속마음을 보고도 함부로 묻거나 나무랄 수 없어 더욱 속상해한다”며 “일기장을 봤다고 말하면 앞으로는 그마저 감정을 표출할 길이 없을 거라는 안쓰러운 생각에 보고도 모른척할 수밖에 없다면서 앞으로는 자녀들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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