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8 그날 전주민 방아쇠에 손걸었다”

▲ 당시 판문점 도끼사건 현장사진

8.18일은 북한에도 ‘판문점 도끼사건”으로 잘 알려진 날이다.

1976년 8월18일 낮 2시, 갑자기 중앙방송 확성기에서 “미제 침략자들이 중앙군사분계선 북측지역을 침범하여 나무를 찍는 범죄행위를 감행했다”는 보도가 귀청을 때렸다.

이어 중앙TV와 라디오는 “영웅적 조선인민군의 자위적 조치에 의하여 미제 침략자들은 두 명의 주검을 남기고 도주했다”고 보도하고, “이는 정전협정 위반이다”며 사건발생 책임을 미국과 남한에 덮어씌웠다.

북한당국은 “미군이 가지고 나온 도끼는 나무를 찍기 위해 생긴 도끼가 아니라 살인용 도끼이며, 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계획적인 도발행위였다”며 일방적으로 북한주민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지금도 판문점 ‘통일각’에 가면 당시의 도끼를 생생하게 구경할 수 있다. 도끼와 사진을 전시해놓고 주민들을 교양하는 반미 선전도구로 진열해놓고 있다.

이날 급박하게 방송이 나가자 곧이어 최고사령관 김일성의 명령으로 전국에 ‘준전시 상태’가 선포됐다. 북한군, 노농 적위대, 붉은 청년근위대에 하달되어 전국은 비상 태세에 들어갔다.

북한에서 ‘준전시’는 전쟁의 준비단계다. 즉 방아쇠에 손을 건 상태다, 명령만 내리면 총알이 발사될 직전상태를 말한다. 이 기간에 단속되는 사람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군법에 의해 처벌된다.

노동신문과 중앙방송은 연일 한반도 정세를 보도하면서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라는 구호로 강경하게 나왔다. 동해로 향하는 미국 항공모함의 움직임과 남한의 군사대비태세를 보도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정세를 이끌어갔다.

“돌아올 기름은 없다. 항공모함은 육탄으로 까라”

비행사들은 “우리들에게 돌아올 기름은 필요 없다. 육탄이 되어 미제 항공모함을 들이받아 동해 바다에 수장할 것”이라는 맹세를 올렸고, 포병들은 포탄을 장전하고 24시간 대기태세에 들어갔다.

노동적위대, 교도대, 붉은 청년근위대원들은 자동소총과 장구류를 지고 참호에서 전쟁명령만 기다렸다.

고등중학교와 직장에서 인민군대 자원입대를 청원하는 탄원자들이 수많이 늘어났다. 고등학교에서는 인민군대 탄원모임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완수하고 돌아오겠다”며 전교생 앞에서 맹세모임을 가지고 속속 군복을 입었다.

당국은 15세 이상 학생들까지 군대에 나갈 것을 요구해 이 사건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10년 동안 총을 맸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을 가리켜 군대 안에서는 ‘도끼사건 패’라고 불렀다.

군대에서 제대되어 직장과 사회에서 일하던 제대군인들은 복대(원대복귀) 탄원서를 내고 다시 군복을 입었다. 이리하여 북한의 현역 군사력은 근 3백여만 명으로 증강됐다. 당시 민간무력까지 합하면 어린이와 노약자를 빼놓은 전민이 군인이 되었다.

지금도 정세가 긴장되면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준전시 상태가 실시되고, ‘전민 무장화’ ‘전국요새화’ ‘전군 간부화’의 소동이 북한땅을 소란스럽게 하고 있다.

8.18 도끼사건은 ‘푸에블로’호 사건 이후 가장 크게 동원되었던 전민적인 전시동원 태세였다. 다행히 전면전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8.18 도끼사건을 계기로 북한에는 준전시 상태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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