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제안’ 분석하면 北核 앞날 보인다

▲ 지난해 6월 개최되었던 제3차 6자회담 모습

10일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는 지난해 6월 제3차 회담 때 미국이 제안한 ‘6월 제안'(June Proposal)에 기초해서 평화적, 외교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2004년 6월 23~26일 개최된 3차 회담을 마치면서 회담 참가국들은 ‘9월말 이전에’ 4차 회담을 갖기로 했다(의장성명 제7항). 그러나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4차 회담은 개최되지 못하고 있다. 원인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

‘6월제안’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북핵 협상 진행될 것

북한은 지난해 9월 16일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남한의 핵물질 실험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기 전에는 6자회담에 참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2000년에 남한 과학자들이 실험목적으로 농축우라늄 0.2g을 추출한 적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를 시비 걸고 나선 것이다. 남한의 과거 핵물질 실험 보도는, 어차피 미국 대선 이후로 6자회담을 미루고 싶었던 ‘울고 싶은’ 북한의 뺨을 때려준 격이 되었다.

북한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보다는 다루기 쉬운 민주당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랐을 텐데, 기대는 어긋났다. 그러자 2월 10일 핵보유와 6자회담 불참을 선언했다. 이때부터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어오기 위한 나머지 5개국의 설득 노력이 시작되었다.

지난 10일 한미정상회담은 ‘북한을 6자회담으로 불러오기 위한 마지막 단계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유인책”(a lot of inducements)이 마련되어 있으니 이제 그만 회담장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이런 ‘러브콜’의 이면에는 ‘이번 권고마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함께 담고 있다.

그러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지난해 3차회담에서 미국이 제안한 ‘포괄적인 비핵화(comprehensive de-nuclearization)’방안 – 이른바 ‘6월제안(Jun proposal)’이다.

‘6월제안’에는 북한이 핵을 포기했을 시 보상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있으며, 당시 북한은 이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앞으로 한미양국은 ‘6월제안’을 보다 구체적인 로드맵으로 재구성해 북측에 전달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핵포기 선언 → 미북 국교정상화’ 이르는 5단계 로드맵

‘6월제안’은 3차회담에서 미국이 내놓은 A4용지 7페이지 분량의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말한다. 그전까지 미국은 CVID –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의 원칙을 강조하며, 핵폐기의 직접적인 대가는 없고, 핵폐기가 완전히 이루어졌을 때에야 보상문제를 ‘논의해 볼 수도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3차 회담에 이르러 핵을 포기하였을 시 어떠한 보상을 해줄 수 있는지 여러 가지 ‘당근’을 꺼내 보여주었다.

‘6월제안’은 우선 북한이 고농측우라늄(HEU)을 포함한 제반의 핵포기 선언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것이 1단계이자 ‘6월제안’의 전제조건이다.

핵포기를 선언함과 동시에 핵폐기를 위한 3개월의 준비기간을 갖는다.

이 기간동안 북한은 ▲핵활동을 완전히 중단(동결)하고 ▲핵프로그램 및 시설을 보고한 후 ▲핵사찰을 받게 되며 ▲모든 핵시설을 해체한다. 이 기간동안 미국을 제외한 6자회담 당사국(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들은 북한에 대한 중유공급을 재개한다.

1단계 조치로 인해 북한이 핵을 포기, 해체했다는 것이 분명히 확인되면 북한을 위한 선물보따리가 풀린다.

▲2단계로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조치가 취해지고, ▲3단계로 북한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제공해주게 되는데, 미국은 이것을 경수로 건설과 같은 핵에너지가 아니라 비(非)핵에너지로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4단계로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대북경제제재 해제 문제 등이 논의되며 ▲5단계에 이르러 미북간의 국교정상화 문제가 논의된다.

이러한 제안내용은 미국 내에서 “대담한 접근(Bold Approach)”이라고 불렸으며, 3차회담 도중 북한도 “미국이 노정표(路程表)를 제시해줘서 고맙다”(김계관 외무성 부상)고 긍정적으로 반응한 바 있다.

‘6월제안’ 합의되어도 과제는 첩첩산중

그러나 ‘6월제안’은 ‘밑그림’에 해당하는 제안으로 구체적인 실행시기, 검증과 보상의 방법, 내용과 규모 등이 명확하지 않다.

예컨대 ▲북한의 핵시설을 검증, 해체 하는 방법 ▲중유공급의 주체와 구체적인 시기, 규모 ▲안전보장의 형식과 내용 ▲에너지 지원 규모와 내용 등이 논란이 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따져보자면 북한의 핵시설을 검증하는데, 이것을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담당할 것이냐, 6자회담 참가국들이 담당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대립하고 있다. 북한은 후자(後者)의 방식을 선호하고, 미국은 NPT(핵확산금지조약) 추가의정서(Additional Protocol) 가입을 통해 IAEA가 북한 내 의심되는 시설을 언제 어디든 사찰하는 전자(前者)의 방식을 선호한다.

또한 북한이 핵포기를 하면 중유공급을 재개한다는 것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지만, 핵포기를 선언하는 것만으로 중유공급을 재개할 것인가, 핵사찰이 상당부분 진행되었을 때 재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립한다. ‘핵사찰의 상당부분 진행’이라는 표현도, 어느 정도가 되어야 ‘상당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지 기술적인 문제가 걸려있다.

거기에다 북한은 3차회담 당시 핵프로그램 동결의 대가로 연간 200만Kw의 전력지원을 요구했는데, 당시 북한이 ‘중유’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을 중유로 치면 270만t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동안 KEDO에서 지원했던 50만t의 5배에 달한다. 적당히 합의가 되어 규모가 줄어든다 하더라도 6자회담 참가국들이 이러한 경비를 지불하려 할 것인지 의문이다.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을 하는 문제도, 북한은 문서를 통한 조약(條約)적 성격의 안전보장을 주장하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해왔고, 미-북간에 약속을 하고 6자회담의 나머지 4개국이 ‘증인’이 되어주는 방식을 중국 정부가 제안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미국은 이에 대해서도 난색을 표했다.

미-북간 불가침조약은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들 수 있으며, 북한 핵문제는 주변국 모두의 문제인데 미-북 간의 문제인 것처럼 범위가 좁혀지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6월제안’은 그것에 합의를 해야 한다 할지라도 실행에 옮겨지기까지 첩첩산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만약 ‘6월제안’이 합의되고 구체적으로 실행에 들어간다 하더라고, 북한의 HEU 프로그램이 낱낱이 밝혀졌을 때 세계여론의 변화, 협상 성과에 대한 각국 내부의 평가, 높아지는 사찰강도에 대한 북한의 대응 등 어디서 어떤 변수가 튀어 나올지 모른다.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북한

북한은 이러한 ‘6월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6월제안’에는 그동안 북한이 요구해왔던 모든 내용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덥석 받아 물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미국의 의도는 북한이 NPT 추가의정서에 가입하고 IAEA의 전면적 핵사찰을 받는 것이다. 추가의정서에 따르면 신고한 핵시설 뿐 아니라 의심이 되는 모든 시설에 접근하여 주변 대기, 식물, 건축물 등의 방사성 잔여물 존재여부를 확인받아야 하며, 그렇게 되면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존재여부가 확실히 드러난다.

북한이 핵보유가 협상용이고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제안을 그리 어렵게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동안의 거짓말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고 더 이상 비밀 핵개발이 불가능하게 되니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다.

따라서 북한은 IAEA가 아닌 6자회담 참가국들의 사찰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러시아, 한국을 끼고 어물쩡 사찰을 넘겨버릴 의도다. NPT와 IAEA에서 탈퇴한 국가라는 그럴 듯한 명분도 있다. 그러나 제네바합의에서 속았다는 뼈아픈 교훈을 갖고 있는 미국, 특히 부시행정부가 이것을 받아들일 리 없다.

북한이 일단 ‘6월제안’을 받아들이고 제네바합의 실행 초기처럼 끝없이 시비를 걸며 ‘시간벌기’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미국의 다음 대선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때까지 시간이 너무 멀다.

미-북 둘만의 게임이었던 제네바합의와 달리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 등 4개국이 지켜보고 있고, 향후 실행과정에서는 EU도 지원 주체로 결합할 것이 분명한데 거짓말이나 협박, 약속 위반을 할 수도 없다. 이래저래 북한으로서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김정일에게는 ‘독약’, 북한주민들에게는 ‘보약’이 되는 제안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