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절 음식 싸들고 노동단련대 수감된 아내 찾는 北남편들

진행 : 오늘(8일)은 국제부녀절입니다. 북한 여성들도 이날만큼은 가부장제와 돈벌이 압박에서 벗어나 행복한 하루를 만끽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데일리NK 설송아 기자와 함께 3.8절의 풍경과 함께 노동단련대 여성수감자들이 이날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설 기자, 관련 소식 전해주시죠.

기자 : 해마다 찾아오는 3.8절이지만 북한 여성들에게는 갈수록 의미가 다른 것 같습니다. 가정의 생계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장에 출근하면서 ‘아플새도 없다’는 여성들이지만요. 유일하게 즐기는 날이 국제부녀절이거든요. 가부장제로 ‘남자는 하늘이다’는 문화도 3.8절 아침이면 여성 우대문화로 바뀌고 있습니다. 센스 있는 남편들의 깜짝 선물도 기대해 볼 수 있는데요.

특히 ‘비법(불법) 장사’로 노동단련대 수감된 여성들도 3.8절 특식으로 명절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시간에는 국제부녀절을 맞은 북한 여성들의 모습과 함께 단련대 수감자들의 모습까지 함께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진행 : 노동단련대라면 구타, 강제노동, 영양실조 등 대표적 인권유린 시설로 알려져 있는데, 국제부녀절을 보낼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기자 : 일단 중범죄로 인정되면 인민보안성(경찰) 교화국 소속 노동교화소에 가구요. 경범죄도 처벌수위에 따라 노동교양소(1~2년), 노동단련대(1개월~6개월)에 수감됩니다. 노동교양소도 교화소와 마찬가지로 보안성 교화국에 소속된 사법시설이지만요. 노동단련대는 해당지역 시 인민위원회에 소속된 시설입니다.

노동단련대 수감자들 식량은 보안성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 보장하고 있다는 말인데요. 단련대 부업지 농사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기존에는 강도 높은 노동에 제대로 먹지 못한 수감자들이 죽어나갔거든요. 그러다 국제사회가 인권을 강조하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가족들의 면회가 일주일 두 번 가능해졌다”는 것이 평안남도 소식통의 설명입니다.

특히 3.8국제부녀절은 여성수감자 가족들의 면회도 허가해준다고 해요. 수감자 절반 이상이 여성들이거든요. 강제노동으로 지친 여성들은 남편이나 자녀들이 가져온 음식을 봉지에 넣어 보관해 특식으로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달랜다고 합니다.

진행 : 그렇다면 노동교화소나 노동교양소도 면회를 허용하는지 궁금한데요. 그곳에도 여성수감자가 많지 않습니까?

기자 : 장사는 대체로 여성들이 하잖아요. 장사규모가 큰 건 당연히 비법이 많고, 이에 따라 여성 수감자가 많은 겁니다. “교화소에 가면 일단 사람이 아니기를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또한 평안남도 소식통이 “노동단련대 수감자가 말 못하는 죄인이라면, 교화소 수감자는 짐승이라고 보면 된다”고 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느 정도일지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국제부녀절 면회는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한 달 두 번 면회가 있긴 한데요. 3.8절 튀기가루(옥수수를 변성시켜 익힌 분말)라도 먹으며 배를 곯지 말라고 미리 면회 가는 남편들도 있다고 합니다.

진행 : 남편들의 정성이 감동이군요. 북한 남성들이 아내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 참 많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자 : ‘남자는 하늘이다’는 가부장제였지만요. 장마당의 발달로 남성 권위가 조금씩 하락하면서 부부간 다툼도 잦았지만 남편들은 분명 변하고 있습니다. 시장에 나가는 아내를 도와줘야 가정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가사를 적극적으로 돕는 남편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주부들의 명절로 유일한 3.8 국제부녀절이야 말할 것도 없겠죠.

아침밥을 해주는 건 기본이구요. 지역별 차이는 있겠지만 센스 있는 도시 남편들은 꽃다발에 돈을 넣어 아내에게 선물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2017년 평성시에서 탈북한 한 40대 여성은 “3.8절은 남편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평가하는 날”이라며 “돈벌이 좀 한다하는 남편들은 아내에게 옷 선물보다 국제부녀절을 즐기라고 돈을 주기도 했었다”고 소회했습니다.

국영기업소에서 일하는 남편들은 꽃다발이나 옷 선물은 못하지만요. 시장으로 출근하는 아내의 상품보따리를 매대까지 날라준다네요. 또한 저녁에 돌아오면 뜨끈한 두부국으로 밥상도 차린다고 합니다.

진행 : 오늘 같은 날에도 시장에서 돈을 벌려는 여성들이 있는 거군요?

기자 : 그렇죠. 명절일수록 쉬지 않고 시장에서 돈을 벌려고 하거든요. 또한 상품을 팔면서 점심식사는 해야 하잖아요. 때문에 음식매대 상인들이 그릇을 이고 시장을 돌거든요. 3.8절에는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팔고 있는데, 요즘 평안남도에서 새로운 음식으로 알려진 쌈밥이 인기라고 합니다.

평성시 출신 탈북자는 “취나물, 깻잎, 갈대 잎에 찹쌀밥을 넣고 만든 건데 인기가 있다”면서 “대중음식으로 알려진 두부 밥, 인조고기밥이 이젠 쌈밥에 밀린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공장기업소 여성노동자들은 3.8절 음식비용을 미리 모아 떡, 온반(밥에 돼지고기국을 얹은 것)으로 소박하게 보낸다고 하는데요. 90년대 만해도 국제부녀절은 공휴일이 아니었거든요. 직장장 권한으로 오후 휴식을 주었지만 지금은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미리 명절준비를 하는 겁니다.

진행 : 이렇게 여성들에게 중요한 명절이라고 하면 학교 동창끼리 모여서 즐길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대학 동창들이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모여서 회포를 풀기도 하거든요.

기자 : 북한에도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모임 할까’ 말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같은 음식을 먹어도 그룹이라는 색채를 띠면 보위부 시야에 들게 됩니다. 시끄러운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동창모임을 조직하는 일은 많이 없고요. 3.8절이면 시장에서 가까워진 친구들이 한집에 모여 노래하고 춤추는 거죠. 부부동반은 기본이라고 하네요.

모이는 공간도 흥미로운데요. 증폭기와 마이크가 필수이기 때문에, 방음이 잘된 집이 선택된다고 합니다. 단층이나 기존 아파트는 구조상 옆집에서 냄비 소리까지 다 들리거든요. 이 말은 보통 한국 노래를 부른다는 얘기고, 춤추는 곡도 외국곡이기 때문에 안전한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진행 : 증폭기라면 소리를 크게 하는 기계장치인가요? 주민들이 마이크를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기자 : 맞습니다. 증폭기는 북한말로 울림통, 혹은 나팔통이라고도 하죠. 유선마이크를 증폭기에 연결하고 노래 한 곡 뽑으면 노래방이 따로 없습니다. 2000년대 만해도 돈주(신흥부유층)들을 중심으로 녹음기에 달린 증폭기를 소유했는데요. 지금은 일본, 중국, 한국 제품이 시장에서 판매된다고 합니다.

가정용 증폭기 가격은 최근 평안북도 신의주 시장에서 200달러 한다고 하는데요. 좀 더 큰 증폭기가 있는 세대는 3.8절날 인민반장의 요청으로 사거리 주택가 지붕 위에 설치해 분위기를 돋운다고 합니다.

‘여성은 꽃이라네’ ‘안해(아내)의 노래’를 시작으로 ‘즐거운 방목길’ ‘준마처녀’까지 경쾌한 음악이 장시간 울리는데요. 이처럼 3.8절의 밤엔 시장에서 퇴근하던 여성들도, 지나가던 주민들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리에 몰려 춤판을 벌리는 흥겨운 모습이 연출되곤 합니다.

북한 경제 IT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