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판 ‘자열서’ 쓸 사람들

▲ 좌로부터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인천시장 안상수

“태평양전쟁은 예기보담 일찍 끝나고 우리의 소기(所期)는 죽도 밥도 다 되지 않고 말았음에 남은 것은 나의 시세에 암우(暗愚)함이요 학생 청년들에게 무의무신(無義無信)하였음이요 또 반민지탄의 일조 첨가뿐으로 되었다. 이에 대한 책임은 가장 통절하게 느끼지 않지 못하는 바이다.”

이 글은 육당(六堂) 최남선이 자신의 친일(親日)행적을 해명하면서 쓴 ‘자열서(自列書)’의 한 대목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육당은 1943년 11월 20일자 <매일신보>에 ‘가라! 청년 학도여’, 같은 해 12월 <조광(朝光)>에 ‘보람 있게 죽자’를 발표하는 등 일제 말 조선청년들의 징병을 촉구한 바 있다.

이에 육당은 끌려가든 제 발로 가든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숙명이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참전하여 “임박해오는 신운명(新運命)에 대비”하려고 그런 운동을 하였다는 취지의 해명을 하였다. 위 글에 나오듯 육당은 태평양전쟁이 그렇게 일찍 끝나리라 예상치 못했다며, 그것은 자신이 “시세에 암우”(세상 돌아가는 형편에 깜깜)했던 탓이라고 자책한다.

역사 흐름에 무지, 순간의 오류가 영원으로

안상수(安相洙) 인천시장이 북한을 방문, 2014년 아시안게임의 개최지가 인천으로 결정되면 평양과 공동 주최하기로 합의하고, 짓다만 105층 류경호텔의 공사비 지원을 비롯해 평양 소재 주요 체육시설의 개보수를 약속해주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육당 최남선이 떠오른 건 너무 지나친 상상이었을까?

육당은 기미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한 인물로, 육당 말고도 독립운동을 하다 친일의 길로 돌아선 사람들이 많다.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上海)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까지 역임했던 춘원(春園) 이광수는 일제 말기인 1939년에야 창씨개명을 하고 친일파로 돌아섰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모진 고생을 했으면 끝까지 그 길을 갈 것이지, 왜 마지막 5년을 참지 못하고 춘원은 대표적인 친일파로 낙인찍혀 지난날의 모든 공을 잃어버린 것일까?

후대의 우리는 역사의 ‘결과’를 알고 있으니 그들을 지탄한다. 그러나 육당이나 춘원은 역사의 결과를 알지 못했다. 스스로 솔직히 고백한대로 태평양전쟁이 그렇게 일찍 끝나리라 예상치 못했고, 일제가 반세기 이상은 승승장구할 것이라 생각했으며, 식민지의 현실을 순응하는 것이 조선민족에게 차라리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해방 이후에도 그들은 지난날의 친일을 ‘억울해’ 한다. 무지(無知)하긴 했으되 배족(背族)은 아니었으며, 무지는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육당의 ‘자열서’에는 그러한 심정이 절절히 묻어있다.

지금 북한에 대한 무지는 ‘대죄’

머지 않은 훗날 ‘21세기판 자열서’를 써야할 사람들이 눈앞에 보인다.

김정일 정권이 그렇게 순식간에 무너질지 예상치 못했다고, 아들까지 정권을 승계해 반세기 이상은 승승장구할 것으로 보였다고, 그렇다면 차라리 사탕 반쪽이라도 주민들에게 건너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민족적인 선택으로 보였노라고 변명할 사람들 말이다.

북한의 인권상황이 그렇게 끔찍한지 몰랐다고, 또는 ‘반공교육’ 탓을 하며 “반공교육의 역편향으로 북한의 진실을 보기 어려웠다”는 변명과 함께 자신이 “시세에 암우”했다고 탄식할 사람들 말이다.

그들도 훗날에 억울해할지 모른다. 북한에 대해 무지하긴 했으되 그것이 죄는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일제의 패망을 예측하지 못했던 무지와 지금처럼 온갖 정보에 대한 접근과 활용이 자유로운 시대의 무지를 동격으로 취급할 수 있을까. 일제시대의 무지가 죄라면, 지금 북한에 대한 무지는 죄악 중 대(大)죄악이다.

우리 후손들은 역사의 결과를 알게 될 것이다. 결과를 알고 있는 후손들은 조상의 우둔함을 손가락질 할 것이다. 세상에 그런 악랄한 정권이 연착륙(軟着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지원을 해줬느냐고. 그 정권이 지원금을 온통 군사력 확장에만 투입하고 그것이 인민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지 못할 수 있었느냐고.

지금 친북좌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필자는 그때가 되면 오히려 친북좌파를 변호해주면서 “역사의 결과를 직접 목격한 너희(후손)들이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진땀 흘리며 설득해야 할지 모른다.

지금은 역사 전환기, 분명히 인식해야

역사의 결과는 인간성에 반하는 불의(不義)는 반드시 패배하고 자유와 민주를 옹호하는 정의(正義)는 기필코 승리한다는 원칙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안타깝게도 중요한 전환국면 직전에 변절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 또한 보여주고 있다. 새벽녘에 한기(寒氣)가 몰아치자 일출(日出)은 없을 것이라며 하산(下山)한 사람들이다. 너도나도 북한 정권을 돕고 퍼주니까 그것이 죄악인지 모르고, 그 대열에 끼지 않으면 시대흐름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평가받을까봐 지옥으로 가는 막차에 올라탄 백치들이다.

20여년의 독립운동이 단 5년의 친일로 인해 전혀 평가받지 못한 춘원은 오히려 독립운동의 기간마저 밀정(密偵)으로 활동한 것이 아니었나 의심 받았다.

앞으로도 그처럼 기나긴 민주화운동의 경력이 단 몇 년의 친(親)김정일 행위로 인해 전혀 평가받지 못할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산업화와 번영에 두 팔 걷어 부치고 앞장섰으나 단 한번 대세를 잘못 판단하고 반역의 행렬에 편승하는 바람에 두고두고 오점을 남기고 갈 사람도 생겨날 것이다.

안상수 시장을 비롯해 요즘 몇몇 방북인사들을 보면서 드는 안타까움이다. 느닷없는 변절의 기운이 하나 둘 눈에 띄는 것은 그만큼 역사 전환기의 순간이 멀지 않은 징후이기도 하다.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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