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국기법 또 손봤다…국기 존재감 확대로 ‘애국주의’ 강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월 9일 정권수립일 78주년을 맞아 “국경절을 맞는 온 나라에 경축의 환희가 넘친다”라고 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데일리NK가 2025년 개정된 북한 국기법을 입수했다. 북한은 현재 공개돼 있는 2022년 국기법 이후 2023년과 2025년 잇달아 법을 수정·보충하면서 국기의 규격과 상시 게양 기관, 선박에서의 사용법, 국기게양식 시간 등을 세분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기를 주민 생활과 국가 행사 전반에서 폭넓게 사용하도록 한 기존 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2025년 개정법에서는 대형 국기의 제작·게양을 명시적으로 허용하고 최고검찰소와 최고재판소를 상시 게양 대상에 포함했다. 또한 선박에서 사용하는 국기의 규격을 달리 정할 경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규정도 추가됐다.

이 같은 개정은 북한이 국기의 활용 범위를 단순히 넓히는 차원을 넘어 국가 상징을 보다 눈에 띄게 만들고, 주요 국가기관의 일상 공간에까지 상시적으로 배치하려는 흐름으로도 해석된다.

‘더 큰 국기’ 명문화…최고재판소·최고검찰소도 상시 게양

2022년 국기법 제6조는 국기의 크기를 용도에 따라 10개 규격으로 정하면서, 세로와 가로의 비율을 기본 비율인 1대 2와 다르게 할 때에는 부록 2에 규정된 규격도 이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2025년 개정법에서는 이 문장이 삭제됐다. 대신 ‘특별한 경우’ 부록 2에서 정한 규격보다 더 크게 제작해 게양할 수 있다는 내용이 새롭게 들어갔다.

기존 규정이 정해진 규격 안에서 국기의 ‘비율’을 조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개정법은 아예 법정 규격을 넘어서 대형 국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대규모 광장이나 기념행사 등에서 기존 최대 규격인 가로 6m·세로 3m를 넘어서는 국기를 사용하는 데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는 단순한 규격 변경 이상의 의미도 갖는다. 국가 행사나 대규모 정치행사에서 국기의 크기를 확대할 경우 국가 상징의 시각적 존재감이 커지고, 군중이 국가 상징을 집단적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효과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북한이 최근 국기를 주민들의 일상과 국가 행사 곳곳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 온 흐름과 연결해서 볼 필요가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2023년에도 국기법을 국가와 국기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법적 수단’으로 설명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이 매주 국기를 게양하는 모습 등을 소개하면서 국기에 대한 애착과 존중을 사회 전반의 분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개정법은 ‘특별한 경우’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가 대형 국기 사용 여부를 판단하는지, 크기의 상한선이 어디까지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실제 적용 범위와 승인 절차가 별도의 시행 규정이나 내부 지침으로 정해지는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상시 국기 게양 기관이 확대된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2022년 국기법 제16조는 금수산태양궁전과 국무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위원회·성, 만수대의사당 등을 상시 국기 게양 대상으로 열거했다. 2025년 개정법은 여기에 최고검찰소와 최고재판소를 추가했다. 단순히 두 기관을 명단에 추가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국기 상시 게양의 범위가 중앙 정치·행정기관에서 최고 검찰·재판기관으로까지 확대됐다는 점에서는 상징성이 있다.

특히 입법·행정기관뿐만 아니라 법 집행과 재판을 담당하는 최고기관에서도 국가 상징을 일상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도록 했다는 점에서 주요 국가권력기관 전체를 하나의 국가 상징 체계 아래 시각적으로 묶으려는 성격이 한층 뚜렷해졌다고 볼 여지가 있다. 다만 이 조항만으로 최고검찰소나 최고재판소의 지위나 권한 자체가 달라졌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제도 변화라기보다 국가기관 전반에서 국기의 존재감을 확대하는 ‘상징 정치’의 연장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김태원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대형 국기의 예외적 제작·게양 허용과 최고검찰소·최고재판소의 상시 게양 대상 명시는 국기의 시각적 현시를 확대하고, 핵심 국가기관을 포함한 공권력의 상징적 표상을 강화하려는 조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챗GPT, 정리=데일리NK AND센터

사용은 탄력적으로, 규격 통제는 중앙으로…처벌 규정은 여전히 모호

선박에서의 국기 사용을 규정한 제23조도 보다 구체화됐다. 2022년 국기법은 북한 국적 선박과 북한 영해에 들어오는 외국 선박에 북한 국기를 달도록 하고 구체적인 사용 질서는 중앙 해운지도기관이 정하도록 했다.

2025년 개정법은 중앙 해운지도기관이 정한 ‘배에서의 국기 사용 질서’에 따라 국기를 게양하도록 문장을 정비하고, 선박의 크기에 따라 국기 규격을 서로 다르게 정하려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는 개별 선박이 국기를 게양할 때마다 승인을 받으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중앙 해운지도기관이 선박 규모별로 서로 다른 국기 규격 기준을 만들 경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승인을 거치도록 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기의 크기를 사용 장소와 대상에 맞게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규격의 결정권은 중앙이 통제하도록 한 셈이다. 제6조에서 대형 국기의 사용을 허용한 것과 함께 보면 이번 개정에는 ‘활용의 확대’와 ‘규격에 대한 중앙 통제’라는 두 흐름이 동시에 나타난다.

국기게양식 시간에도 예외 규정이 생겼다. 2022년 국기법은 국가 명절과 기념일 전날 오후 8시에 국기게양식을 진행하고 당일 자정에 국기를 내리도록 일률적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2025년 개정법은 이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평양시 중심구역에 있는 기관·기업소·단체의 경우 각 단위의 출근 시간에 맞춰 게양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표면적으로는 시간 규제를 완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국기게양 의례 자체를 축소했다기보다는 실제 집단 참여가 가능한 시간대로 조정한 성격이 강하다. 전날 밤 정해진 시각보다 구성원들이 출근해 모여 있는 시간에 행사를 진행하면 오히려 참여 인원을 확보하기 쉽고, 국기게양을 업무 시작과 결합된 일상적인 국가 의례로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또 다른 부분은 처벌 규정이다. 2025년 국기법 역시 국기 제작과 사용, 게양식, 보관 관리 질서를 위반해 ‘엄중한 결과’를 초래한 책임자와 개인에게 사안에 따라 행정적 또는 형사적 책임을 지운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행위가 처벌 대상인지, 어느 정도의 위반이 형사책임으로 이어지는지, 벌금이나 형량이 얼마인지 등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국기법 위반 행위 자체가 곧바로 정치범죄나 중범죄로 처리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처벌 대상과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은 현장 기관과 당 조직, 보안기관이 국기에 대한 태도와 행위를 정치·사상적 문제로 확대해석할 수 있는 재량을 남긴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데일리NK는 2022년 남포시에서 해어진 국기 문양 티셔츠를 걸레로 사용한 학생들이 적발돼 비판서를 쓰고 관련 사실이 부모가 소속된 공장·기업소 당위원회와 학교, 청년동맹 조직 등에 통보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학생 대부분은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처분에 불만을 나타낸 한 학생은 ‘국기에 대한 태도와 관점’이 문제시되면서 단련대에 보내지고 퇴학 처분까지 받았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해어진 ‘인공기 티셔츠’ 걸레로 쓰다 정치적 문제로 비판 받아)

이는 국기와 관련된 행위가 반드시 국기법상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해당 행위가 ‘국가에 대한 태도’나 ‘사상 문제’로 규정될 경우 당적·조직적·행정적 제재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2025년 국기법 개정은 북한이 국기를 통한 애국주의 동원을 새롭게 시작했다기보다 이미 구축해 온 국가 상징 체계를 더욱 세밀하게 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국기는 더 크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상시 게양 기관은 최고검찰소와 최고재판소까지 확대했으며, 실제 사용 방식에는 일정한 탄력성을 부여하면서도 규격 결정권은 중앙에 남겨뒀다. 즉 ‘더 크게, 더 많은 국가기관에서, 더 일상적으로’ 국기를 노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하는 한편,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처벌 기준을 두지 않은 채 포괄적인 책임 규정을 유지했다.

향후에는 대형 국기의 실제 사용 사례와 최고검찰소·최고재판소의 상시 게양 실태, 국기 훼손이나 관리 소홀을 둘러싼 내부 처벌·교양 사례를 함께 추적할 필요가 있다.

김 부연구위원은 “이번 개정은 국기 제도의 기본 구조나 국가 상징에 관한 규범적 이념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한 조치라기보다, 국기의 제작·규격·사용·게양 의례 및 관리 절차에 관한 개별 집행 규율을 보완·구체화한 부분 개정”이라며 “새로운 국가 상징 정책의 출범이라기보다는, 국가 존엄과 애국주의를 강조해 온 기존 국기 관리 체계를 구체적 운영 차원에서 정비·강화한 조치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법학 박사

※현재 공개된 북한 국기법은 2022년판이며, 데일리NK가 입수한 국기법은 2025년 개정판입니다. 2025년 법령을 통해 2023년에도 국기법이 개정된 것으로 파악되지만, 해당 2023년 개정판은 현재 확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에 이번 기사에서는 불가피하게 2022년 법과 2025년 법을 비교·분석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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