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화되는 한미 양국의 엇박자
최근 한미관계가 매우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 북한군이 동부전선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전술도로 공사, 지뢰매설, 장애물 설치 등 ‘MDL 요새화’ 작업을 강행하자, 우리 정부는 정전 협정상 완충지대를 무력화하는 명백한 위법행위로 규정하며 강력히 규탄했다. 정전협정은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자 MDL 기준 남북 2㎞를 완충지대로 설정했으나, 북한군은 MDL 턱밑까지 진격하며 평화틀을 깨뜨리고 있다.
그러나 유엔사는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이미 비무장지대(DMZ) 내 남북한 감시초소(GP) 설치로 중화기가 들어와 있는 현실을 들며, 북한의 요새화 조치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소극적 태도를 취해 한국 정부와 엇박자를 내는 모습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 역시 간극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현지시간 16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미연합군사훈련이 북한에 ‘부적절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국방장관에게 훈련의 대폭 축소를 직접 지시했음을 밝혔다. 동시에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이는 연합훈련(UFS)을 앞두고 단거리 탄도미사일(사거리 300-1000㎞)을 연달아 발사한 북한의 도발에 대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반면 우리 국가안보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규탄하며 즉각 중단을 촉구해 한미 간 시각차를 다시금 드러냈다.
17일에 이어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동맹국보다 북한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우려 섞인 질문이 나오자, 트럼프는 “상황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조치”라고 맞섰다. 이는 집권 1기 때와 마찬가지로 김정은에게 유화적 제스처를 보내 북미 대화의 물꼬를 터보려는 정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란전쟁 장기화 등으로 떨어진 지지율을 반전시키기 위해 북미 대화를 반전 카드로 활용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정부의 비협조에 대한 일침과 압박
문제는 트럼프가 한미연합군사훈련 축소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이란 문제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지원 거부를 직접 들추어냈다는 점이다. 기자회견 내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그는, 주한미군을 주둔시켜 수십억 달러를 들여 지켜주고 있음에도 한국이 정작 자국 석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지키는 일에는 협조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공개해 버렸다. 이는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과 연합훈련 축소를 담보로 이란 문제에 대한 한국의 군사적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노골적인 압박이다.
트럼프를 더욱 조급하게 만드는 것은 이란 사태뿐만 아니라 장기화하는 러-우 전쟁이다. 당초 전쟁을 조기에 끝내겠다던 장담과 달리 상황은 악화하고 있으며, 역설적이게도 전쟁의 향방을 김정은이 쥐고 있는 모양새다.
북한의 대러시아 추가 파병설(최대 5만 명 규모)이 현실화될 경우, 북한은 연간 무역 규모의 38%에 달하는 최대 12억 달러의 현금을 챙기게 된다. 나아가, 러시아로부터 정유 지원과 핵잠수함 등 첨단무기 기술을 이전받고, 드론전 중심의 현대전 실전경험까지 축적하게 된다. 지속적인 미사일 지원에 이어 북한이 동해상으로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700㎞를 날아 극동 러시아 나홋카 부근에 떨어진 사건 역시, 러시아와의 사전 협의 없이는 불가능한 ‘수출용 탄도탄 검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북러 군사협력을 안보 직결 문제이자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엄중히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 역시 상당한 부담과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트럼프의 정치적 생존전략과 한반도 안보의 엄중한 경고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대러시아 추가 파병과 탄도미사일 지원을 차단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이를 해결할 가장 유용한 수단으로 김정은과의 직접 담판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외신은 트럼프가 올 가을에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원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트럼프는 ‘1석 3조’의 이득을 얻는다. 11월 중간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러-우 전쟁의 조기 종료 명분을 마련하며, 한국 정부를 압박해 이란 사태 지원까지 끌어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렇다고 이를 동맹국의 안보를 담보삼아 자신의 정치적 생존만을 모색하는 저급한 정치 행위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국제정세의 거시적 맥락에서 보면 이는 트럼프 입장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전략적 고육책’에 가깝다. 동맹국인 한국으로부터 최소한의 군사적 협력을 받아 이란 문제를 수습하는 동시에, 북·러 밀착으로 인한 러-우 전쟁의 확전을 막고, 나아가 북미 대화를 통해 동북아 안보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종합적 구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도리어 트럼프가 지적했듯, 호르무즈 해협과 중동 정세의 직접적인 이해당사국인 우리 정부가 동맹의 요청을 일면 거부한 것은 한미동맹의 기본 틀을 흔드는 아쉬운 대응이라 볼 수밖에 없다.
정작 두려운 시나리오는 만약, 트럼프의 구상대로 김정은이 호응하여 북미 직접 대화의 물꼬가 터진다면, 이 과정에서 이재명 정부의 설 자리는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앞에서 장담했던 ‘페이스메이커’ 역할마저 철저히 배제된 채,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의 핵심 당사국이 순식간 ‘구경꾼’, ‘주변인’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반면, 김정은은 자신의 입맛대로 트럼프를 움직일 수 있는 카드가 너무나 많다. 이는 결국 대한민국 안보를 더욱 위태로운 국면으로 몰아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미동맹의 조속한 복원만이 살길이다
트럼프의 연합훈련 축소 지시에 미국 국방부는 현지시간 18일 훈련을 대폭 축소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도 보도자료를 내고 미측의 제안에 따라 UFS 연습 기간과 규모 등을 일부 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초 27일까지 시행될 예정이었던 이번 훈련은 일주일 앞당겨 오는 21일 종료될 예정이라고 한다. 북한의 도발을 막는 억제력 구조의 핵심인 한미연합훈련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한미 군사공조의 큰 균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도달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 이제 이재명 정부는 명분 없는 홀로서기나 관망에서 벗어나, 한미동맹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한반도 및 지역 안보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북미대화 국면이 본격화되기 전에 동맹의 균열을 메우지 못한다면, 우리 정부는 전략적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다. 다가올 거센 외교안보의 풍랑 속에서 동맹과의 신뢰 회복과 철저한 공조만이 우리의 국익과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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