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데일리NK는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보도하고자 합니다. 현재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파견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이를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데일리NK는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수단이 된 주민들이 해외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억압된 채 인권을 유린 당하는 사례들을 수집·취재해 국제사회에 전함으로써 그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상황이 변화되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

북한 당국이 러시아에 파견한 자국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를 대폭 강화하면서, 외부 콘텐츠 접촉 시 즉각적인 본국 송환 사례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화벌이를 위한 대규모 추가 송출 전 공포 분위기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데일리NK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올해 7월 초까지 러시아 현지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한국 드라마 외부 콘텐츠가 담긴 휴대용 저장장치를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돼 본국으로 송환된 사례만 최소 3건이다.
지난해 12월 모스크바에서 일하던 한 남성 노동자가 단속돼 조사를 받은 뒤 올해 초 북한으로 송환됐고, 올해 초에도 같은 지역에서 또 다른 유사 사례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달 초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하던 30대 남성 노동자가 한국 드라마가 저장된 USB를 보관하다 적발돼 현지 주재 보위원에게 조사를 받았고, 이달 말 송환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보위원 최성철의 비리 문제가 현지 노동자의 폭로와 제보로 외부에 알려진 사건은 북한에도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이후 북한은 ‘재발 방지’를 명분으로 노동자 통제와 감시 체계 재설계에 착수했다. 이는 대규모 노동자 송출 앞둔 사전 정비의 일환으로도 분석된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그물에 갇힌 인권] 노동자 대거 파견 준비…인권 지적 눈가림)
현재 러시아 등 각국에 배치된 보위원들은 단순한 사상 감독자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생활 패턴과 언행, 대외 접촉 이력까지 종합적으로 파악해 보고하는 전방위적인 감시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실제로 노동자 숙소에서는 매일 야간 점호 이후 개인 소지품 검열이 이뤄지고, 불시에 사물함이나 짐가방, 침구 아래까지 뒤져보는 ‘선택 수색’도 일상화돼 있는 상황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보위부의 자의적인 통제 조치가 아니라 국가에서 명확히 지시한 체계적인 관리 작업”이라면서 “러시아 노동자 파견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에 앞서 현지에서 불순분자 차단, 통제 불능 사태 방지 체계를 먼저 구축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은 휴대전화 사용은 물론 외부와 최소한의 소통조차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일부 간부급 인원만 제한적으로 통신 기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이 역시 보위원의 사전 승인 하에만 허용되고, 인터넷 접속이나 공공 와이파이 사용 역시 감시망에 의해 탐지되면 처벌 대상이 된다고 한다.
노트북이나 MP3 같은 전자기기나 USB나 SD카드 등 휴대용 저장장치 소지도 철저히 금지돼 적발 시에는 사상 변질 혐의로 엄중 처벌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외부 콘텐츠 공유는커녕, 혼자 몰래 감상하는 일조차 극도로 조심하는 상황이다.
외부인과의 접촉 역시 전면 차단돼 있다. 현지 러시아인뿐만 아니라 함께 작업하는 다른 국적의 노동자들과의 사적인 대화 등은 조직 승인 없는 단독 행동으로 간주돼 즉시 보위부로부터 조사를 받는다는 설명이다.
소식통은 “일부 현장에서는 숙소와 작업장 복도에 CCTV가 설치돼 있으며, 노동자들의 야간 외출은 일절 금지돼 있다”며 “출입 시간이 맞지 않거나 외출 동선이 불분명할 경우 그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고 경우에 따라서는 징계 처분이 내려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자유로운 사고 금지…北, 파견 노동자 ‘완전 통제’ 체계 구축 중
이에 파견 북한 노동자들의 정신적 압박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작업 현장에서는 물론 숙소 안에서 말 한마디하는 것조차 조심해야 해 위축된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상호 감시를 강화한 상황에서 서로 누가 신고자인지 몰라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며 “노동자들은 일기 쓰기나 책 읽기 같은 사적인 활동마저 주저하고 있다”고 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잠꼬대하다가 말실수로 의심받을 수 있다”는 말도 공공연히 오가고 있다. 잠자는 시간에도 경계심을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 감시가 대폭 강화된 탓에 동료 간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모든 관계가 침묵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소식통은 이를 북한 당국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정신 통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히 외부 콘텐츠나 외부 문화 유입을 차단하는 것을 넘어, 노동자 스스로 다른 생각이나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심리적 억압 체계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외부 세계와 단절시키고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길들이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정신적 자유의 박탈이라는 심각한 인권 침해로 지적된다.
소식통은 “지금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적발되지 않는 것’”이라면서 “자유로운 사고가 억제된 사람만이 가장 안전한 외화벌이 수단이라는 북한식 통제 철학이 현장에서 그대로 구현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이미 수년 전부터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인권 침해에 관해 지속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통제와 감시를 정당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외부 접촉을 ‘정치적 위협’으로 규정해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구조가 유지될 경우, 북한 파견 노동자들은 ‘완전히 통제된 외화벌이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들이 처한 상황을 더 세밀하게 주시하고, 북한 당국 차원의 조직적인 인권 침해에 묵과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본보에 “(북한의 통제 강화는) 외부 정보가 북한 노동자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체제 내구력과 충성도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면서 “이에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게 북한 노동자들과 접촉면을 확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법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