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청년들의 사랑이 ‘성분’이라는 벽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사회가 변화하고 출신 성분이나 계급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이 보다 유연해지고 있지만, 체제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기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소식통의 말이다.
17일 데일리NK 함경북도 소식통은 “최근 청진시 청년들이 한쪽 부모의 극렬한 반대로 헤어진 한 연인의 사연으로 떠들썩하다”며 “남자 쪽 부모가 여자 쪽 집이 돈이 좀 있어도 토대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했고, 결국 출신 성분을 뛰어넘지 못해 헤어지게 된 것이라 뒷이야기가 무성하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청진시 청년들 사이에 화두로 떠오른 두 남녀의 인연은 청진공업기술대학에서 시작됐다. 고향이 모두 청진인 두 사람은 청진공업기술대학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왔고, 함께 미래를 그리며 서로를 의지했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남자는 군에 입대했고, 여자는 배치지에 가지 않고 청진에서 큰돈을 움직여 사업하는 엄마의 일을 거들어주며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가게 된 두 사람이었지만,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며 계속 사랑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출신 성분이라는 장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지난 9일 호송장교와 함께 고향인 청진에 온 남자가 일방적으로 여자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
남자의 친구를 통해 전해진 이별의 이유는 단 하나, “너희 집안 토대 때문에 아버지가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에서 간부가 되려면 노동당 입당(入黨)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쳐야 한다는 몇 가지 기준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입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출신 성분이다.
남자의 아버지는 함경북도 당위원회 간부로, 집안 자체가 북한에서 정치적으로 토대 좋은 집안에 든다. 이 때문에 남자의 아버지에게 자식의 결혼 상대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기준은 출신 성분이었다. 자식이 권력층의 삶을 계속 유지하고 사회적으로도 발전하려면 결혼할 여자의 집안이 정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여자의 집안은 토대가 좋지 않다. 가족 중 1명이 과거 의용군 출신이었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오빠 모두 노동당 입당이 좌절될 정도였다. 이 여자의 집안은 어머니의 사업 성공으로 돈은 좀 있지만, 근본적으로 북한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집안인 것이다.
소식통은 “이 두 사람이 성분 때문에 헤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청진시의 청년들은 ‘애초에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 세상이지만 돈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사랑이 자유로워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허울 좋은 말뿐이다’라는 등의 말을 주고받았다”며 “성분이 사랑을 갈라놓는 일은 지금도 여기(북한)서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