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곡 대신 가치하락 북한 화폐로 분배 단행…北농장원 ‘충격’

시장가격 절반 수준인 쌀 1kg당 4500원으로 계산...심지어 돈표 5만원권 섞어 주기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황해북도 은파군 강안농장과 금천군 월암농장에서 결산 분배를 진행하였다”며 “애국의 열정과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알곡 생산의 발전을 이룩하였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최근 북한 당국이 농장원들에게 현물이 아닌 가치가 떨어진 내화로 분배를 단행하는 황당한 조치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원래 받아야 할 곡물이 아닌 북한 화폐를 받아든 농장원들은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평안북도 소식통은 20일 데일리NK에 “용천군과 염주군을 비롯한 많은 농장에서 농장원들에게 알곡 대신 현금으로 ‘분배돈(분배금)’을 줬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평안남도 숙천군에서도 이 같은 사례가 나온 바 있다는 점에서 곳곳에서 유사한 행위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환율·물가 계속 뛰자 北 주민들 사이에 ‘화폐개혁설’ 솔솔)

집단농장에 소속된 농민들의 경우 1년간 총 노동량에 따라 생산물을 분배받는다. 수확을 마친 후 우선 국가와 군에 바친 것을 공제한 다음 이뤄지기 때문에 실제 규정량에 40~60% 정도만 받는 경우가 많았다. 농장원들은 항상 빈곤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만 그래도 알곡으로 분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급한 식량난은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갑작스러운 현금 지불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심지어 쌀 1kg당 4500원에 계산하는 통에 울분을 토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원래 쌀 300kg을 받아야 하는 농장원의 경우 북한 내화 135만 원을 줬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시장 논리를 아예 무시한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월 7일 기준 평양 시장에서는 쌀(1kg) 9000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어 실제 분배량의 절반을 당국이 빼앗았다는 논리다.

소식통은 “농장원 3~4명이 있는 집은 400~500만 원이 넘는 큰돈을 받았다”며 “여기(북한)에서 살면서 일반 주민들이 이렇게 큰돈을 만져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정작 시장에 나가 곡물을 사면 분배량보다 더 적을 걸 알기에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장원들의 불안을 부추기는 요소는 이뿐만이 아니다. 당국이 지급한 화폐에는 가치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5만원권 돈표가 섞여 있다는 후문이다.

질이 떨어진 돈표를 액면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환전하는 일이 성행하고, 구매할 때 이용하는 경우 액면가보다 할인해서 계산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농장원들은 돈표가 화폐로서의 가치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소식통은 “농장원들은 정부(당국)가 결국 가치 없는 화폐를 선심 쓰듯 분배했다고 보고 있다”면서 “‘노동신문을 통해서 ‘만풍년’을 자랑할 때는 언제고 그 많은 곡물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농장원들도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소개했다.

아울러 가치가 떨어진 북한 화폐와 ‘돈표’를 수령한 농장원들 사이에서 그나마 가격이 비싸지 않은 강냉이(옥수수, 대체로 쌀의 절반 가격) 구입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언제 또 휴지 조각이 될지 모르는 국돈은 가지고 있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주민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면서 “가격이 조금이라도 눅은(싼) 강냉이를 사겠다고 몰리니 조만간 강냉이 가격도 오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많은 농장원들은 가치가 불분명한 현금보다는 알곡으로 받는 분배를 원하고 있다”면서 ”마음속으로는 ‘우리 돈 말고 딸라(달러)로 달라’라고 외치고 있지만, 이조차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현실에 울분을 삼키고 있는 농장원들도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