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기 사건에 긴장 고조되자 피로감 호소하는 北 주민들

정세 긴장 빌미로 주민 통제 강화하는 것에 불편 기색 드러내…."삐라 같은 것 보내지 말았으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4일 ‘한국 무인기 침범 사건’과 관련해 지난 12일 외무성이 ‘중대 성명’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한 온 나라가 ‘보복 열기’로 끓는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평양 무인기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주민들의 대남 적개심 고취에 골몰하고 있는 가운데, 국경 지역 주민들은 긴장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 피로감과 우려를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데일리NK 양강도 소식통은 “최근 혜산시에는 남조선(남한)이 무인기로 삐라(대북전단)를 보낸 일로 당장 전쟁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면서 “주민들의 얼굴에는 걱정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최근 한국이 평양 상공에 무인기를 침범시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보도와 담화 등을 연이어 내보내고 있는데, 이에 직장들에서는 조회 시간을 이용해 한국의 무인기 침투를 전쟁 도발로 규정하고 맹비난하며 주민들의 대남 적개심을 끌어올리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 지난 14일 혜산시의 한 직장에서는 오전 8시 조회에 간부들과 노동자들을 한데 모아놓고 30분이 넘도록 “무인기 침투는 명확한 한국의 전쟁 도발”이라며 “괴뢰한국 인간쓰레기들이 천추에 용납 못 할 짓거리를 했다”며 규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주민들은 북한 당국이 정세가 긴장한 상황을 이용해 사회 통제를 한층 강화할 수 있다는 데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과거에도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이 진행될 때마다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고 주민 통제를 강화하며 내부 결속을 도모해 왔는데, 주민들은 이번 사건도 그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는 게 소식통의 이야기다.

실제 주민들 사이에서는 “통제가 강화되면 우리 백성들만 피해를 본다”, “삐라 같은 것을 안 보내면 좋겠다”는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혜산시의 한 40대 여성 주민은 “이번 주부터 여맹원들을 불러내 계급 교양 강연회를 진행하고 있고, 인민반 자위 경비는 벌써 강화됐다. 정말이지 어느 하루도 사람들을 가만 두는 날이 없다”며 피로감을 호소했다.

이 주민은 “정세가 긴장하면 또 달달 볶이겠구나 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이번에는 평양에 한국 무인기가 침범해서인지 다른 때보다 정세가 더욱 긴장된 분위기”라며 “이런 속에서 사는 생활이 정말 지긋지긋해 차라리 그냥 전쟁이라도 콱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혜산시의 60대의 주민은 “어쩌지도 못하면서 맨날 으르렁거리기만 하니 너무 지겹다. 결판을 내지도 못할 거면서 맨날 정세 긴장만 부르짖으며 사람들만 괴롭힌다. 정세 긴장이라는 명목으로 생활 총화나 강연회에 사람들을 장시간 붙들어 놓고 계급의식을 강조한다. 머릿속에 가족의 생계 걱정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무슨 말이 들리겠느냐”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는 “전쟁 도발이라는 말을 노랫소리처럼 들어서인지 이제는 전쟁이 무섭지도 않다. 그런데 전쟁을 하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사람들만 고생시키니 신경질이 나는 것”이라며 “삐라든 그 무엇이든 정세 긴장을 불러오는 것은 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 같은 일반 백성들만 힘들어지고 고통만 늘어날 뿐”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