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평양-신의주행 국제열차가 평양시 본역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열차는 10분 후 조선의 심장인 혁명의 수도 평양을 출발하게 됩니다. 관광객 여러분께서는 자리를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열차 방송원의 음성이 흘러나오던 객차 한쪽 좌석에는 한눈에 보아도 중국인인듯한 30대 초반의 남성과 그 옆에 다소곳이 앉은 한 여성이 긴급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성은 흰 적삼에 검정 치마를 입은 평양호텔 여직원 이모 씨였다. 평양관광대학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평양호텔 직원으로 배치된 새내기 호텔리어 이 씨. 그가 중국인 남성을 따라 기차에 오른 이유는 무엇이고, 이들은 무슨 긴박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일까?
관광객으로 북한에 온 중국인 남성 펑 씨는 이미 전부터 북한 국가보위성의 눈에 들어있었다. 보위성은 중국에서 큰 광석 회사를 운영하는 펑 씨가 북한에 호의적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평양호텔 여직원 이 씨를 따로 불러 ‘그를 회유해 북한에 남도록 하라’는 비밀임무를 내렸다. 돈 있는 외국인을 북한에 묶어두고 외자를 유치하려는 전략이었다.
중국어에 숙달해 적합한 공작원으로 뽑힌 이 씨는 호텔에서 중국인 남성 펑 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고, 펑 씨의 관광 코스에 늘 동행하며 옆자리에서 챙겨주는 역할을 했다. 또 하루 관광 일정을 마치면 호텔로 돌아와 일행 없이 혼자 와 있는 펑 씨의 호텔방에서 술을 접대하며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 씨는 펑 씨가 북한을 떠나기 하루 전 ‘오늘 밤은 마지막 밤이니 밤새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술이나 마시자’고 제안했고, 펑 씨도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날 밤 이 씨는 펑 씨에게 ‘당신이 보기에 내가 어떤가. 나는 며칠간 당신과 다니면서 마음에 들었다’고 먼저 대시했다.
중국인 펑 씨 역시 이 씨에 대한 호감을 표하면서 ‘나와 함께 중국에 가서 살자’고 말했다. 그러자 이 씨는 재빠르게 ‘사랑하면 어디서 살든 뭐가 중요하겠냐’며 급히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후 호텔방의 불은 꺼졌다.
호텔방에서의 이 같은 대화는 보위성에 의해 전부 도청되고 있었다. 다음날 보위성은 이 씨에게 중국인 남성 펑 씨를 기차역까지 바래다주도록 했다.
본역에서 펑 씨와 함께 열차에 오른 이 씨는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오겠냐.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 나와 여기서 살면 안 되겠냐’며 눈물을 흘렸다. 펑 씨도 눈시울을 붉히면서 ‘일단 중국에 가서 부모님 허락을 받고 다시 오겠다. 영 이별이 아니니 마음 놓으라’면서 자신의 중국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줬다.
이 씨는 끈질기게 매달렸다. 북한에 남을 것을 간절히 요청하던 이 씨는 끝내 ‘신의주까지 4시간 남짓 가니 가는 동안 마음이 달라지면 나에게 연락해라’는 말을 남기고 펑 씨를 보냈다. 그러나 기차가 신의주역에 도착한 뒤에도 펑 씨의 연락은 오지 않았고, 해를 넘겨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중국인 회유 공작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그 책임을 지게 된 평양호텔 여직원 이 씨는 보위부 관리 대상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사례는 이후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호텔 배치자들에 대한 보위성 교육에서 지속 언급됐다. 보위성은 교육에서 ‘외국인이 눈치챌 정도로 진실하지 못해 꼬리가 밟힌 것이다. 앞으로 외국인이나 적국의 주민을 조국에 남게 한다면 영웅’이라고 했다.
후에 알려진 바로 펑 씨는 실제 중국에 돌아가 부모에게 북한에서 사업을 하며 이 씨를 아내로 맞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평소 펑 씨의 부모와 가깝게 지내던 중국 안전국 간부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북한 보위성의 공작이라고 귀띔해줬고, ‘가짜 사랑’이라는 진실을 마주한 펑 씨는 대성통곡했다.
중국인 남성 펑 씨를 두 번 울린 평양호텔 여직원 이 씨의 사랑은 진짜였을까? 외국인 관광객을 회유해 북한에 남게 하면 영웅 대접을 해주겠다는 말에 나설 호텔리어들은 있을지 몰라도 ‘가짜 사랑’에 속아 북한에 남은 외국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