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화되고 있는 ‘김정은조선’
12월 21일에 실린 노동신문 1면기사(위대한 김정은조선은 끝없이 승승장구할 것이다)를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처음으로 기사 제목 안에 ‘김정은조선’이라고 표기했기 때문이다. 물론, ‘김정은조선’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이고 올해는 3월 26일 정론을 시작으로 10여 차례 나왔었다. 하지만, 기사 제목 안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 노동신문에서 최근 가장 많이 나오는 용어 중 하나가 ‘주체조선’인데, 이것이 ‘김정은조선’으로 공식화되는 추세이다. ‘김정은시대’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도 이를 입증해준다. 지난 10월 당창건 기념일을 기점으로 인터넷판 노동신문이 개편되면서 ‘전진하는 조선’이라는 코너도 생겼는데, 이것도 ‘김정은 조선’에 연동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정일조선’이었다. 여전히, ‘김정일조선’이 익숙한 북한주민들에게는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20일 노동신문 1면 기사 내용에는 ‘5천년 민족사’라는 표현도 있었다(4.27일 정론에도 표기됨). 김일성 생일을 역사의 시작으로 간주하여 주체연호를 내세우며 올해를 주체 111년으로 표기하는 북한인데, 당 기관지 노동신문에서 버젓이 ‘5천년 민족’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 작금이다. 이런 양상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해야 하는가.
유훈통치 탈피의 대표적인 최근 근거들
올해 조선인민혁명군창건 90주년(4.25) 열병식에서의 김정은 연설에 대해 노동신문이 정론(4.27)을 실었는데, 이러한 내용이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김일성민족, 김정일조선이 나아갈 백년대계의 전략을 밝혀주시고…”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은 김일성민족, 김정일조선으로 상징되었다. 또 이 정론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 인민들과 오늘의 이 기쁨을 함께 나눌실 것이라는 생각에 끓어오르는 격정을 금할 수 없었다”라고 기술하며 북한을 김일성, 김정일이 다스리고 있음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북한이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처음 발사(3.24)한 후 성공적 발사라고 평하며 나온 3월 26일자 정론(‘위대한 인민의 긍지 하늘땅에 차넘친다’)에서도 다음과 같은 문장이 실렸다.
“재더미를 털고 일어나 이제야 한창 허리를 펴기 시작한 인민에게 병진로선을 제시하시자니 너무 가슴이 아프시여 우리 수령님 눈굽을 적시시던 그 나날의 사연, 그 누가 내 마음 몰라 줘도 몰라준대도 희망안고 이길을 가고가리라는 노래를 마음속으로 부르시며 우리 장군님 강행군 길에서 그토록 그려보시던 강국의 모습을 재웠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념원, 강국념원과 민족만대에 길이 빛날 강국건설 업적을 정히 담아 위대한 조선로동당 과 위대한 조선인민은 이 강위력한 주체탄을 우주만리에로 용감히 쏘아올렸다.”
이 문장을 보면, <화성-17형> 발사가 김일성과 김정일의 염원과 숙원이 담긴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치적으로 돌리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다. 뒤에 나오는 문장들도 보면 김일성과 김정은의 영도에 의해서 비롯되었다고 하면서 선대들의 업적으로 돌렸었다. 그런데, 북한이 11월 18일 두 번째 <화성-17형>을 발사(성공함) 하고 난 후 관련해서실린 기사(11.19)을 보면,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다. 또 <화성-17형>과 관련해서 실린 20일자 정론(‘조선로동당의 엄숙한 선언’)에서도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기술하지 않았다. 엄청난 분량의 글임에도 오직 김정은에게만 모든 찬사를 돌리고 있다.
“바로 인민의 이 행복, 이 웃음, 밝은 미래를 지켜주시려 자위적 핵억제력 강화의 멀고 험한 길을 굴함없이 이어오시고 우리 공화국의 국위를 최상의 경지에 올려세우는 민족사적사변들을 련이어 이룩해가시는 절세의 애국자, 만고의 영웅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
“절세의 위인을 모시여 강국이 있다! 이는 선견지명의 예지와 출중한 령도력, 드센 공격력과 강인담대한 배짱으로 력사의 온갖 도전을 단호히 쳐갈기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높이 모시여 강국의 새시대를 긍지높이 맞이한 우리 조국의 현실, 우리 인민의 실체험이 확증하는 진리이다.”
“백승의 슬기와 용맹이 빛발치는 원수복을 입으시고 최정예혁명강군을 사열하신 우리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 령장의 담력과 배짱, 자신감에 넘치시여 지금 우리 무력은 그 어떤 싸움에도 자신있게 준비되여있다고, 어떤 세력이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군사적대결을 기도한다면 그들은 소멸될 것이라고 하시는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누구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이시야말로 강대한 우리 조국의 힘이시고 불패성의 상징이시라는 한없는 격정에 눈굽적시지 않았던가.”
“세상에서 제일 강하신 분,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주체강국의 위대한 수호자이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과연 무엇으로 하여 그리도 강하신가. 국력강화의 초행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그이의 불굴의 의지는 과연 어디에 원천을 두고있어 그리도 억척불변인 것인가.”
위 문장들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이 정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김정은만 칭송하기에 바쁘다.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면서 김정은의 위대성을 노래하고 있다. 제목은 분명 ‘조선노동당의 선언’이라고 해놓고 당을 일구고 발전시킨 김일성, 김정일은 쏙 빼놓고 오직 김정은만 드높이고 있다. 11월 27일 김정은이 <화성-17형> 발사 성공 기념사진을 촬영할 당시에 대한 기사의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존귀하신 자제분과 함께 촬영장에 나오시자 전체 참가자들은 가 장 현명한 결심과 탁월한 령도력으로 우리식 국방발전의 완벽한 지름길을 몸소 개척하시고 강력히 인도해주시며 세계최강의 전략무기완성이라는 거대한 사변으로 우리 공화국의 빛나 는 존엄을 억세게 지켜주신 우리 당과 국가, 인민의 걸출한 수령이신 김정은동지를 우러러 최대의 영광과 열렬한 흠모심을 뜨겁게 분출하며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를 힘껏 터쳐올리였다.”
김정은을 절대존엄과 절대권위의 상징인 ‘수령’으로 지칭하면서 모든 영광을 김정은에게 돌리고 있다. 물론‘ 노동신문은 김정일 사망일(12.17) 앞뒤로 김정일에 대해 추억하며 김정일의 사상과 업적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것은 그냥 하나의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만일 이때도 김정일에 대해 일언반구 하나도 없다면 그야 말로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서두에서 기술한 ‘김정은조선’을 기사 타이틀로 잡은 12월 21일자 노동신문 1면 기사에서도 ‘반만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공화국의 력사에 특기할 2022년의 빛나는 승리에 대하여’라는 소제목과 함께 ‘우리 국가의 70여 년 발전행로에서 분수령을 이룬 해’, ‘위대한 강국의 새 전기’, ‘수천만 인민의 생명을 지켜낸 방역대승’, ‘전면적발전의 훌륭한 첫 실체’, ‘인민의 새문명, 새생활’ 등 5개 테마로 나눠서 장문의 기사를 실었는데, 여기서도 김일성, 김정일 이름이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김정은 이름만 도배되어 있다.
“올해의 대승리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천재적인 예지와 특출한 령도력으로 이룩하신 전 화위복의 기념비적승리이고 조국과 인민을 위한 초인간적인 로고를 바쳐 안아오신 가장 희 생적인 헌신의 결정체이며 후손만대가 영원토록 칭송할 불멸의 업적이다.”
“올해는 세인이 침략과 략탈의 원흉 미국의 전횡을 실제적으로, 압도적으로 제압분쇄하며 자 기의 존엄과 자주권을 건드리는 그 어떤 행위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려는 강대한 김정은조 선의 결행력이 어떤 것인가를 페부로 절감한 해이다.”
“태양의 존함으로 빛나는 성스러운 우리 국가의 영광과 존엄을 하늘 끝에 떠받들어올리신 것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이룩하신 거대한 민족사적 업적이다.”
“위대한 백전백승의 해, 혁명적대전환의 해, 인민의 새 문명의 해 2022년이여, 영광스러 운 김정은시대와 더불어 끝없이 빛나라.”
이 기사는 2022년이 ‘김정은조선’이요 ‘김정은시대’였음을 드러내놓고 공표하고 있다.
2023년,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 도래
북한은 지난 11월 30일에 개최된 당중앙위 제8기 제11차 정치국회의에서 12월 연말에 전원회의(제8기 제6차)를 열 것을 결정하였다. 그 후 부랴부랴 서해위성발사장에서 140tf 추진력 대출력고체연료발동기 지상분출시험을 진행(12.15)한 후 실험이 성공적이었다고 하면서 “제8차 당대회가 제시한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의 전략무기부문 최우선 5대과업실현을 위한 또 하나의 중대문제를 훌륭히 해결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국방부문에서의 모든 성과를 김정은의 치적, 업적으로 돌렸다.
이달 연말에 개최되는 전원회의에서도 김정은의 탁월한 영도력에 의해 북한이 주체 핵무력강국으로 우뚝서고 만방에 위용을 떨쳤다고 침이 마르도록 김정은을 칭송할 것이다. 만일, 이때도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오직 김정은에 대한 찬사만 난무한다면 유훈통치 시대는 사그러졌다고 평할 수 있겠다. 2023년은 명실공히 ‘김정은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김일성의 그림자가 사라질 때 북한체제가 제대로 유지될 것인가. 김정은의 과도한 권력욕이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2023년에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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