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고 싶다” 자수한 탈북 모녀, 타지서 쓸쓸히 눈 감아

[북한 비화] 인신매매 위협에 제발로 북송 요청…보위부 "공민 확인 안 된다"며 인도 거부

투먼 양강도 지린성 국경 마을 북한 풍서 밀수 금지
중국 지린성 투먼시 국경 근처 마을. 맞은편에는 북한 양강도 풍서군이 보인다. /사진=데일리NK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 공민으로 확인이 불가해 받을 수 없다.”

2020년 초 탈북 사실을 자수하며 북송을 요청한 모녀를 데리고 있던 중국 공안에 북한 보위부가 보낸 통지 내용이다.

칼바람이 쌩쌩 불던 2019년 11월 초겨울, 중국 지린(吉林)성 창바이(長白)현의 어느 마을 파출소에 20대 후반의 한 여성이 7살 딸과 함께 들어왔다. 자신을 ‘조선(북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그는 탈북을 자수하겠으니 조국으로 돌려보달라고 요청했다.

이 여성은 2013년 한 살배기 딸을 업고 탈북해 중국에 숨어 살고 있던 탈북민 김모 씨였다. 북송 위험에 공안을 피해 다녀야 했던 김 씨가 제 발로 공안을 찾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김 씨는 몇 년 전 동거 중인 중국인 남편에게 북한에서 낳아 함께 중국에 온 딸이 학교에 입학할 방법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중국인 남편은 중국에서 출생등록이 안 돼 호적이 없으면 학교에 갈 수 없다면서 자신의 아이를 낳아주면 사망신고 안 한 비슷한 연령대의 죽은 아이 호적을 돈 주고 사 북한에서 데려온 딸을 학교에 보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 씨는 몇 년째 임신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9년 10월 초 김 씨는 자신과 동거하는 중국인 남편과 친척들이 모여앉아 술 마시며 하는 소리를 엿듣게 됐다.

중국인 남편의 친척들은 주방에 있던 김 씨가 듣지 못할 줄 알고 “몇 년간 아이도 안 생기는데 계속 이렇게 남의 아비 노릇을 하다 말겠냐. 자기 새끼가 있어 아이를 안 낳는 것이다. 조선 아이가 생리만 시작하면 팔아치우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김 씨는 탈북 이후 오갈 데 없던 한 살배기 딸아이와 자신을 돈 주고 데려온 중국인 남편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긴장하며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중국인 남편이 내놓은 답은 충격적이었다. “아들이라면 내가 돈을 주고 안 데려왔다. 딸이니 잘 키워서 내가 두 명 살 때 들인 본전의 10배는 뽑을 생각하고 샀다”는 것이었다.

김 씨는 몰려드는 공포감에 더는 그 집에 있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딸이 돈벌이 수단으로 중국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끔찍했다. 이에 김 씨는 한국행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한국행을 시도하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되기라도 하면 햇빛도 못 보고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앞을 가렸다.

/그래픽=데일리NK

결국 그는 북한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파출소로 향했다. 중국인 남편의 집보다는 파출소가 더 안전할 것이고, 자수하면 공안이 알아서 북한으로 보낼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공안은 김 씨의 진술을 토대로 조서를 작성했고, 김 씨와 그의 딸을 절차에 따라 집결 감옥으로 보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해가 바뀌고 음력설을 앞둔 어느 날 김 씨를 조사실로 불러낸 공안은 북한 보위부로부터 ‘공민으로 확인되지 않으니 받지 않겠다’는 통지를 받았다고 전해줬다. 김 씨가 진술한 내용대로 북한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는지 등 신상을 전달했는데, ‘그런 사람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실제 북한에는 김 씨의 신상을 확인해 줄 가족도, 친지도, 국가적인 증명 문건도 없었다. 그는 어려서 일찍 부모를 여의고 늙은 조모의 집에 맡겨졌다. 생활에 쪼들려 조모와 함께 거주지 없이 이곳저곳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조모가 사망한 뒤에는 꽃제비 무리에 합류하게 됐다. 그러다 임신과 출산까지 하게 된 그는 아이를 낳은 후 살길을 찾아 북한을 탈출했다.

북한이 김 씨 모녀의 인도를 거부한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2019년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가 바로 그것이었다. 당시는 북한도 바이러스 확산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확인된 탈북민의 신병 인도조차 신중하게 고려하는 상황이었다.

북측이 인도를 거부한 이상 중국 공안도 김 씨 모녀를 더 데리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이들은 원래 살던 중국인 남편의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새벽 모녀는 그 집 창고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출동한 공안의 현장 조사 결과 농약을 마시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태를 묻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영원히 떠돌이로 살아야만 했던 탈북 모녀는 그렇게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중국에는 김 씨 모녀가 겪었던 것처럼 북송, 인신매매의 불안감 속에 하루하루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는 탈북민들이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