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Out NK] ‘김정은, 선당정치로 전환’ 평가의 문제점

금수산태양궁전
금수산태양궁전 내부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이 아버지로부터 절대 권력을 이어받은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집권 10년 동안 가장 눈에 띄는 김정은의 업적(?)은 무엇보다 핵과 미사일 능력을 대폭 강화한 것이다. 김정은은 2013년 4월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라는 총 10개 항의 법령(일명 ‘4.1 핵 보유 법령’)을 채택하여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이후 4차에 걸친 핵실험과 함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2017.11)하면서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한때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 호응하여 비핵화 협상에 관심을 보이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기만으로 드러났다. ‘군사는 속이는 것이다(兵者詭道)’라는 손자의 말을 철저히 실천한 것이다.

한편 상당수의 북한 전문가는 핵·미사일 능력 강화와 함께 김정일 시대의 통치이념이었던 선군정치를 선당(先黨)정치로 전환한 것을 김정은 통치 특징의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이런 판단의 근거로 △ 1980년 이후 35년간 열지 않았던 당대회를 2016년 제7차 대회부터 5년마다 한 차례씩 개최, △ 김정일의 ‘선군정치’ 시절, 군에 과도하게 부여했던 권력을 당정에 고루 분산하는 동시에 당을 중심으로 각급 회의와 정책 방향 결정, △ 7차 당대회(2016년)에서 신설했던 정무국을 폐지하고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5년 만에 비서제로 회귀한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평가는 김정은이 노동당 기능을 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일면 타당하지만, 「선당정치」를「선군정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등장시킨 것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다소 무리한 평가라고 여겨진다.

첫째, 북한 권력 구조의 특징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정상적인 국가들은 독립된 입법·사법·행정 기관이 국가권력의 작용을 분담하여 상호 간에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북한은 수령(1인 독재)→노동당(1당 독재)→국가(피지배 대상)라는 계층적·수직적인 권력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의 계층적 권력 구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북한 헌법 제11조)라는 조항과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 사상으로 하는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다. 조선로동당은 수령의 혁명 사상과 영도 방식을 당 건설과 당 활동 전반에 철저히 구현하며 …’라는 당규약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즉, 노동당의 기능과 역할은 수령에 절대 충성하는 한편 그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국가 활동을 지도하고 간섭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모든 국가 활동’이라는 용어로서, 여기에는 민간 분야(인민 경제)뿐 아니라 군사력 강화 등 군사 부문까지 포함되고 있다. 즉, 군부가 당보다 우위에 올라설 여지가 없는 것이다. 군부의 주요 인물 모두가 노동당 소속이라는 사실 또한, 당의 지도적 기능이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단 한 번이라도 군부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가장 쉽고도 명백한 증거이다. 김정일의 선군정치 시대에도 이런 원칙에는 예외가 없었다. 오히려 선군시대 들어 당의 통제 아래에 있는 총정치국장의 군부 서열이 인민무력부장보다 앞섰다는 점에서, 군에 대한 당적 지도가 더욱 강화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냉전체제의 붕괴와 심각한 경제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북한 권력자가 군의 ‘손과 발’ 역할을 강조함에 따라 ‘군이 당보다 우위에 있는 것’과 같은 착시 현상을 일으켰을 뿐이다.

사소한 문제지만, 35년 만의 당대회 개최를 ‘선당정치’ 전환의 근거로 꼽은 것도 논리가 대단히 빈약하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김일성 시대인 1980년대부터 군이 당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둘째, 「선군(先軍)」을 ‘군이 당보다 앞선다는’ 식의 권력 위계(位階, hierarchy) 또는 서열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역하고 있다.

먼저 선군이라는 용어의 기원부터 살펴본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는 선군이라는 용어가 1997년 12월 12일 자 노동신문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김일성 3년 탈상 시기(1997.7.8.)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등 3개 권력기관이 발표한 공동구호에 ‘선군후로(先軍後勞)’라는 표현으로 최초 등장하였다. 풀어쓰면 ‘군사가 먼저이고 노동자(일반 주민)는 나중’이라는 뜻으로서, ‘군이 당에 앞선다’라는 권력 구조의 서열 매김이 아니라 정책 목표의 우선순위를 밝힌 것이다.

이후 북한 당국은 ‘선군’이라는 구호가 썩 마음에 들었는지, 선군정치의 기원을 앞에 언급한 일자의 노동신문에서 ‘김정일이 1995년 1월 1일 124군부대 다박솔 초소를 방문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선전하다가, 나중에는 ‘김정일이 1960년 8월 25일 근위서울류경수제105탱크사단을 방문해 「선군혁명영도」를 개시했다’라고 선군정치의 시원을 올려 버렸다. 마치 김일성이 ‘세기와 더불어’라는 회고록을 통해 자신의 혁명담을 과장하고 날조하였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북한 당국이「선군(先軍)」정치를 채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북한 정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를 전후한 시기, 북한 권력자 특히 김정일에게는 위험천만한 시기였다.

냉전체제가 종식되면서 정신적·물질적 지원 세력이었던 중국과 소련으로부터의 지원이 대폭 감소하였고, 주민들은 연이은 자연재해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었으며, 여기에 김일성 사망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그야말로 화불단행(禍不單行)이었다. 아버지로부터 절대 권력을 넘겨받았지만, 김정일은 대한민국에 흡수통일될 가능성, 즉 자신의 권력 상실을 염려해야만 할 상황이 닥친 것이다. 실제로 김정일은 한동안 DJ의 햇볕정책을 흡수통일을 위한 기만책으로 의심하고 이를 강력하게 비난했었다.

이처럼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국면에서 선택한 것이 선군정치이다. 북한 당국은 선군정치를 “한국과 미국의 전쟁 정책에 대비한다”라는 구실을 내세우면서 “군사 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며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 위업 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방식”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속내는 오롯이 김정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난의 행군으로 고통을 겪는 인민들은 철저하게 외면한 채 말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 북한의 권력 구조 특성상 군이 당보다 우위에 존재할 수 없으며, △ 이에 따라 선군정치는 정책의 우선순위(priority)를 군사력 강화에 두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의 통치 특성에 대해 ‘(선군정치의 대비 개념으로) 선당정치로 전환했다’라고 하는 견해는 다소 무리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김정은이 최근 당의 기능과 역할을 독려하면서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하는 것은, 핵을 보유함으로써 이른바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비할 태세를 갖추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여 이제부터는 경제난과 비사회주의 현상 만연 등 내부 위협 요인에 관심을 둘 수 있는 여력이 생긴데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지난 8차 당대회 시 개정(2021.1.9)한 당규약에서 선군정치를 대신하여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한 것은 북한의 이런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쌀밥에 고깃국’이라는 김일성의 60년 된 약속이 여전히 공염불 상태인 것처럼, ‘인민대중 제일주의’ 구호 또한 구두선(口頭禪)으로 끝날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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