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 중 1986년 11월 16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날 국내 주요 언론들을 중심으로 북한 김일성이 피살당했다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일성의 생존이 파악돼 일부 사람들은 “언론사들의 오보”로 단순 치부했다. 그러나 당시 동향을 살펴보면 이 사건을 단순한 오보로 보기가 어렵다.
먼저 당시 한국에서는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지속으로 민주화 운동이 확산됐고 88서울올림픽에 대한 기대감도 컸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올랐고,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1985년 인민군 차수로 승진하면서 ‘3인자’가 됐다.
이런 상황에 터진 그날의 김일성 사망 보도는 여러 소문 중 하나로 치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비무장지대 북한 측 확성기 방송의 내용이 나오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같은날 오후 12시 50분 비무장지대 북측 지역에서는 갑자기 침울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또한 얼마 후 북한 측 선전원은 구슬픈 목소리로 김일성의 약전(略傳)을 읽기 시작했다. 이후 100km 이상에 떨어진 지역에서도 김일성을 찬양하는 메시지를 읽는 선전원도 나오기 시작했다. 오후 8시까지 여러 곳의 초소들에서 하나씩 메시지를 전했는데, 드디어 김일성이 피살당하였고 김정일이 그를 계승하였다는 선전보도가 나왔다. 22시 45분에 북한의 판문점에서는 인공기를 반기(半旗)로 게양하기도 했다.
다음날, 김일성 사망 여부는 공식 확인되지 않았지만, 비무장 지대 북한 측의 확성기는 보도를 통해 김일성이 사망했다고 지속 주장하면서 김정일을 김일성처럼 “주석”이라고 호칭하기 시작했다.
한편 일본 교도통신은 다음날인 17일 하노이발(發) 기사에서 베트남 정부의 한 관리가 평양에 직접 전화를 걸어 김일성의 사망을 확인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비무장 지대의 인공기가 정상적인 상태로 게양됐다는 국내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었고 당시 일본 매체는 평양에서 김일성 사망에 대한 보도가 없었다고 했다.
주중 북한 대사관, 주인도 대사관 등은 김일성 사망설(設)을 조작이라며 발끈했다. 또한 주북 폴란드 대사관도 김일성이 살아있다고 전했다. 이런 주장들은 비무장 지대의 방송과는 완전한 상반된 것이었지만 북측은 18일에 3가지 상호 모순된 방송을 하기까지 했다.
1) 김일성은 사망했고, 김정일이 계승했다.
2) 김일성이 살아있고, 사망설은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
3) 북한에서 정변이 일어났고, 오진우가 권력을 잡았다.
다음은 당시 한국 국방부의 당국자 알려준 북측 비무장 지대 확성기 보도의 목록.
1) 새벽 1시 25분 – “김정일 동지,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
2) 3시 30분 – “김정일 동지는 보다 더 행복 누릴 것” “인민의 행복을 위한 위대한 지도자”
3) 6시(서부전선) – “오진우가 정권 장악” “북한 인민들이 적극 지원”
4) 8시 45분(중부전선) – “김일성 수령의 사망에 대한 유언비어에 속지 말라”
5) 10시 4분(서부전선) – 애도 음악 후 “민족의 큰 별이 떨어졌다”
6) 12시 6분(서부전선) – “김일성 퇴진, 당 간부 인사이동”
그러다가 18일 오전 10시 김일성이 몽골 평양대표단을 접견하러 평양비행장에 등장하면서 ‘김일성 사망 보도’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런데 1986년에 북한에 관한 이상한 보도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오진우가 교통사고가 나서 외국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었는데 이 사건과 김일성 사망설이 어떤 연관성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다.
김일성 사망설 보도의 실체는 무엇이었는가? 몇 가지 가설을 살펴보자.
첫째, 완전한 위조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1986년 한국은 전두환 독재 하에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위조적인 정보를 일부러 보도할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이다. 하지만 민주화된 지금 이 보도가 위조라고 폭로한 보도가 없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높다고 볼 수는 없겠다.
둘째, 단순한 오보였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내의 일반적인 의견으로, 당시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비무장 지대에서 이뤄지는 북한 선전에 따라 이뤄졌던 오보였다는 것이다.
셋째, 북한에서 실패한 쿠데타가 발생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사건 당시에 이같이 판단한 사람이 다수였지만, 북한에서 오진우 교통사건을 제외하고 숙청이나 관련 처형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없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가설은 김일성이 자신의 사망을 남한을 비롯한 대외에 거짓 보도를 하면서 대외 반응을 실험했다는 것이다. 사흘 동안 비무장 지대에서 지속했던 방송은 분명히 평양에서 나온 명령에 따라 실시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내에서는 김일성 사망에 대한 방송은 없었다는 점은 이 같은 가설을 뒷받침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김일성 사망 대형 오보’ 사건 이후 27년이 지났지만 정확한 사건의 이유와 배경을 정확하게 규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탈북자 출신 중 이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다면 기회를 봐서 스토리를 상세히 듣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