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나이로 중공군과 맞섰던 미국계 일본인 3세






▲ 세이지 코시미즈 씨가 한국전쟁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봉섭


한국전에 참가한, 특이하다면 조금은 특이한 이력의 세이지 코시미즈 씨는 일본계 미국인 3세로 1953년 한국전에 참전한 해외참전용사다.


그는 17살이란 어린나이에 군에 들어갔다. 너무 어려서 입대한 특별한 생각도 없었다. 단지 삼촌도 그의 두 형제도 군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가 군에 들어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군대에서는 18세 미만이면 해외참전자격이 없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어떤 이유에선지 그는 입대하자마자 한국전에 참전하게 됐다.  
 
갑작스러운 한국 행이였지만 그에게 한국전쟁은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삼촌 쿨리지 오자키(Coolidge Ozaki)는 세 번이나 한국전 참전을 자원해 해병 정보국의 포로 심사관, 미 육군 정보국 포로 심사관, 판문점 휴전회담 통역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삼촌 오자키 씨는 미군이 압록강까지 진출했다가 중공군 공세로 후퇴했을 때, 후퇴하는 탱크부대를 호위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정부로부터 은성무공훈장(silver star) 훈장을 받았다.


이 훈장은 세 번째로 높은 것으로 오자키 씨는 지원병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훈장을 받은 영예로운 참전영웅이다. 코시미즈 씨의 집은 해외참전용사를 둘씩이나 배출한 전쟁영웅명문가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1953년 2월 코시미즈 씨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최전선에 배치되어 중공군과 맞서 싸웠다고 한다. 후에 그가 싸우던 곳은 38선이 형성되었고 휴전 후에 북한 땅이 되어버려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고.
 
그에게 재방한 소감을 묻자 “한국의 발전상은 ‘놀랍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며 ” 한국의 변화상을 보게 되니 흥분을 가라 앉힐 수가 없다. 이 같은 한국의 발전상을 당시의 전우들과 함께 보게 돼서 더욱 자랑스럽고 참전의 보람을 느끼게 한다”고 감격스럽게 말했다.
 
코시미즈 씨는 잊혀진 전쟁이라고도 평가받는 한국전에 대해 “우리 참전용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며 “당시 많은 전우들이 전사했지만,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 전우들의 희생과 숭고한 죽음을 잊어버렸다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분개했다.
 
한편 그는 천안함 북한 폭격에 관해서 ‘매우 끔찍한 일’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그는 미국에서 처음 북한이 어뢰를 사용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이는 매우 정치적인 일로 실제로 그렇게 될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은 오래 살 것 같지 않다”고 덧붙였다.
 
지난 24일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한국보훈처의 초청으로 미국과 프랑스에서 재방한 해외참전용사 및 가족 약 190명은 5박 6일의 일정을 소화하고 29일 귀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