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독일발언 끝내 알맹이 없었다

▲ 독일 연방하원 만찬에서 노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독일 방문에서 ‘북한’과 ‘통일’에 초점을 맞췄다. 방문 이틀 동안 북한 핵문제와 남북관계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경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일부에서는 변화 조짐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노 대통령 특유의 ‘개인기’가 발동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 대통령이 보여준 대북 강경발언은 정책 전환의 시그널인가. 아니면 북한이 남한을 홀대한 것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한 것에 불과한 것인가. 대통령의 독일 발언이 주목되는 이유이다.

노 대통령은 11일 재독 동포 간담회에서 “남북 관계에서도 얼굴 붉힐 때는 붉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독일의 통일 과정을 보면 남북 간에 갈 길이 멀고 거칠 과정도 많은데 남북관계도 상호 존중하고 약속을 지키는 데서 이뤄져야지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대로 한쪽이 끌려가는 상황이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관계자는 이날 “우리는 남북 대화 복원을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온 우려가 아닐까 본다”고 말했다.

또한 12일 드 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 등 독일 통일과정에 참여한 고위 인사들과의 접견에서 노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 경제가 일어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려는 정책을 갖고 있고, 이것에 대해서는 국민의 지지가 높은 편”이라며 “그러나 이것(지원)을 위해서는 북핵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본격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새로운 신호로 해석할 필요는 없어

비료지원 문제에서도 노 대통령은 당국자 간 대화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북한을 겨냥한 이번 발언들은 북한의 초강경 행보와 남한 배제가 계속되자 여기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북한에 성의를 보일 만큼 보였는데도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준비된 원고도 없이 진행된 이번 발언은 ‘할 말은 한다’는 이미지를 구축해온 노 대통령이 이제는 북한에도 얼굴을 붉힐 필요가 있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도 보인다. 따라서 이번 발언에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신호를 찾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발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존 정부가 반복해서 언급해온 ‘핵 포기’ 시 대규모 대북지원 메시지를 담은 당근 전략에 가깝다는 평가이다.

노 대통령은 11일 “정상회담, 평화선언도 하고 싶지만 서로의 대화 원칙, 일반적 원칙을 지키면서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국제사회와 맺은 약속을 번번이 깨버린 것에 대해서도 “대외적으로 북한이 어떤 판단을 하더라도 합의를 했으면 지켜야 하는데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두둔에서 미국 공감으로 입장 선회

노 대통령은 8일 독일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시점에서는 미국 측에 무슨 새로운 양보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좀 무리라고 생각한다”며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필요한 것은 북한의 전략적 결단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12일 베를린의 한 호텔에서 가진 양국 경제인 초청 간담회에서 “북핵문제는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해 평화적 해결에 대한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일단 노 대통령은 계속되는 북한의 반칙행위에는 ‘엘로우 카드’를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반복되는 북한의 규칙 위반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과 공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도 눈에 띈다.

노 대통령이 “미국이 북한에 보이고 있는 태도는 결코 적대적이지 않다”고 한 것도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 주요 사안마다 혼란스러운 신호 보내

독일 방문에서 노 대통령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내재적 핵 접근’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이 전략적 배경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에서도 남북관계와 핵문제에서 입장 변화는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12일 독일 통일 관련 인사들과의 접견에서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 방식의 개혁, 개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이런 개혁과 개방 과정에서 북한의 안정을 흔들지 않으면서 계속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기본 인식이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이 발언은 잘 보여준다. 결국, 북핵 정책에 대한 큰 줄기는 바뀌지 않으면서 가지만 흔들어대고 있는 모양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마다 개인의 소회를 피력하듯이 발언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큰 혼란만을 던져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