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포기 않을 것이라는 판단, 北 능력 과대평가하는 것”

[2018 남북정상회담 D-1] 정성장 “北 김정은, 경제발전 기대…기회 뿌리치지 못할 것”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한반도에 평화의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남북 정상 간 만남에 이어 5월 말 또는 6월 초 북미정상회담도 예정돼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한반도 비핵화 목표 달성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반도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수 있을까.

통일·외교·안보분야 민간 싱크탱크인 세종연구소의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지난 23일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데일리NK와 만나 “북한이 기존 냉전구조에서 벗어나 미국과 수교할 수 있는 길을 한국이 제공하고 있고, 북한은 이로써 경제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은은 지금 주어진 기회를 쉽게 뿌리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정 실장은 “북한이 핵을 계속 보유하는 한, 그리고 동결 수준에서 타협하려고 하는 한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정상회담이 북미수교와 대북제재의 전면적인 해제로 이어질 수 있다면 김정은으로서는 ‘한 번 해볼 만한 시도’라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과 3차례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통해 핵무력 완성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지만,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전무후무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도 갖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김정은은 지금까지 만든 핵을 보유하면서 경제적 파탄을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핵을 포기하고 경제를 발전시킬 것인지의 기로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결국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 수용으로 국제사회와의 전면적인 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체제 안전을 보장 받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됐다는 것이다.

정 실장은 일각에서 여전히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에 의구심을 내비치고 있는 것과 관련,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핵동결 수준에서 멈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북한이 버틸 수 있는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핵은 하나의 생존 유지 수단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며 “북한이 다른 방식으로 체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그것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고, 지금은 미국과의 빅딜을 통해 새로운 안전 보장과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정 실장과의 일문일답.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사진=데일리NK

-올해 들어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진전되는 모습이다. 이렇게 변화하게 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일까.

“작년에 북한이 제3차 ICBM 시험발사 그리고 그 이전에 제6차 핵실험을 통해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이유로 국제사회의 초고강도 제재에 직면하게 돼 더 이상 병진노선을 지속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 북한은 수소폭탄 실험도 성공했고 백악관까지 타격할 수 있는 ICBM 사거리 능력을 과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의 주요 외화 수입원이 거의 다 끊기게 됐고, 정유제품 수입조차도 90%까지 차단되는 전무후무한 준 봉쇄상태에 직면하게 됐다. 북한은 한편으로는 핵무력 완성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됐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가지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은 북한이 대화로 나서는, 국제사회와 관계개선에 나서는 주요한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북한은 올림픽 참가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지속적인 설득이 있었고, 북한은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계기로 이를 활용하고자 했던 것 같다.”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에서 마침 평창올림픽이 열렸고, 이를 하나의 기회로 삼았다는 것인가.

“그렇다. 우연적 요소가 필연적 요소와 같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북한의 3차 ICBM 시험발사를 계기로 북한이 치명적인 경제봉쇄 상태에 들어가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은 북한이 대화로 나서는 좋은 명분을 제공했다.”

-한국 정부의 역할도 컸다고 보나.

“기본적으로 북한이 비핵화 대화로 나온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압박과 관여 정책 그리고 중국의 적극적 협조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준 봉쇄상태로 몰고 가지 않았다면 북한이 입장을 바꿔 비핵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목을 조르는 상태에까지 도달했기 때문에 결국 북한이 대화에 나선 것이다.

또 한국 정부가 만약 북한에 대해 계속 강경한 정책을 추구하고 일방적 핵 폐기만을 요구했다면 김정은은 김정일처럼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어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이야기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평화협정 체결, 북미수교 등을 통해 북한이 새로운 형태의 안전보장을 받을 수 있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뿐만 아니라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통해서 북한이 더욱 잘살 수 있는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인 플랜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다.

정상회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북미수교,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교체, 대북제재의 전면 해제로 이어질 수 있다면 김정은으로서는 한 번 해볼 만한 시도라고 봤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북한이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지만, 지금의 상황이 지속되면 경제 파탄은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북한 간부들과 주민들의 김정은에 대한 지지도와 충성심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핵을 부둥켜안고 경제 파탄을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키워 놓은 핵과 미사일 카드를 가지고 미국과 빅딜을 추구할 것인지 그야말로 기로에 서 있다. 이 가운데 한국 정부가 김정은에게 빅딜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혹자들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북한으로서는 당연히 그동안 많은 제재를 받으며 만들어온 핵무기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계속 보유하는 한, 동결 수준에서 타협하려고 하는 한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북한이 핵동결 수준에서 멈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북한의 버틸 수 있는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라고 본다. 더욱이 국제사회는 핵동결 선에서 타협할 의사가 전혀 없다. 현재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북한에 CVID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은으로서는 핵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그대로 유지하면서 봉쇄상태를 감내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설사 핵무기를 포기한다 하더라도 검증의 문제가 남아있다. 북한이 충분히 은닉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핵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면 핵무기 몇 개를 만들었는지 대략적으로 계산이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는 한 숨길 수 있는 핵무기는 극히 제한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북한은 전원회의를 통해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고, 핵시설을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밝힌 입장은 그 이전에 북한이 보였던 입장보다 더 진전된 것이다. 북한 간부들이 참여하는 공식 회의석상에서 모라토리엄(유예)을 선언하고 핵실험장 폐기까지 선언함으로써 북한이 더 멀리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인 것이다. 북한이 동결 정도의 수준에서 타협하려고 했다면 모라토리엄만 가지고 협상하려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존 병진노선에서 양대 축의 하나인 핵무력 건설을 삭제하고 경제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노선을 밝힌 것은 핵무력도 경제발전을 위한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사진=데일리NK

-비핵화 문제에서 이전과는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 일단 북한의 태도가 달라졌다. 기본적으로는 북한이 기존의 냉전구조에서 벗어나 미국, 더 나아가 일본과도 수교할 수 있는 길을 한국이 제공하고 있다. 북한은 이로써 경제 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은은 지금 주어진 기회를 쉽게 뿌리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본다.”

-북미정상회담도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나.

“김정은이 완전한 비핵화 결단을 내린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이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다. 만약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해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면 북한도 미국의 군사적 옵션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수 있지만, 미국도 북한의 ICBM 완성이라는 원치 않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도 북한과 협상할 의지가 있다고 본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일까.

“체제 생존과 유지다. 과거에는 핵과 미사일 그리고 경제발전을 통해 체제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런데 ICBM 시험발사 이후에는 북한이 감내하기 어려운 정도로 제재 수위가 높아졌다. 지금 핵이라는 것은 하나의 생존 유지 수단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핵을 포기하고 다른 방식으로 체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그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지금은) 북한이 미국과의 ‘빅딜’을 통해서 새로운 안전 보장과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다고 본다.”

-남북·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를 전망한다면.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제재 완화에 대해 포괄적인 합의가 이뤄지면 한반도에 데탕트(긴장완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다만 북한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사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인 마찰은 있을 수 있다. 조정 과정을 통해 핵 폐기 진전이 상당 부분 이뤄지고 나면 내년 여름이나 가을쯤 남북관계에서도 개성공단이 재가동되거나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거나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을 모색하거나 하는 구체적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는 북미정상회담 이후 1년 정도는 북한의 비핵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긴밀한 협의와 협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