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김정일 전격 면담 성사까지

정동영(鄭東泳) 통일부장관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면담 성사여부는 지난 14일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 공식일정이 시작되기 전부터 초미의 관심사였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바람을 김 위원장에게 분명히 전달하고 북한의 의도를 나름대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 장관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은 그러나 그동안 김 위원장과의 면담 추진여부 및 가능성에 대해 애매한 답변이나 사실상 부인으로 일관, 궁금증을 더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12일 “실무선에서 논의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며 (북한에) 가서 우리가 요청해서 될 사안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그는 비공식 면담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럴 시간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통일대축전에 당국 대표단이 참가하는 단순한 구도이며 당국도 참여하는 공동행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정 장관도 지난 14일 출발에 앞서 “이번 행사는 회담이나 협상이 아니라 6.15를 기념하는 행사 그 자체이며 그것이 방북 목적”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정부 대표단의 한 관계자도 행사 이틀째인 15일 “김 위원장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 같이 14일 정부 대표단이 평양에 도착, 공식 일정에 돌입한 이후에도 김 위원장과의 면담은 여전히 가능성 차원에 머물렀다.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것은 정 장관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난 16일 밤이었다.

이튿날인 17일에는 방북일정이 끝남에 따라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되면 16일 밤이나 17일 새벽이 되지않겠느냐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관측이었다.

이에 따라 대표단과 함께 평양에 머물고 있던 국내 취재진은 물론, 서울 삼청동 회담사무국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도 16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깜짝 면담’ 가능성 때문에 긴장감이 가시지 않았다.

17일 날이 밝으면서까지 아무런 낭보가 없자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더 이상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다.

그러나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된 평양 출발을 앞두고 정부 대표단 숙소인 백화원초대소 정문에 8시께부터 갑자기 검색대가 설치되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백화원초대소 경내에서 조깅을 하고 있던 정 장관이 수행비서로부터 ‘긴급 보고’를 받고 숙소인 백화원 2각으로 긴급히 돌아가는 모습도 목격됐다.

이어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위 비서가 숙소로 향하는 정 장관과 현관에서 만나 30초간 선 채로 대화를 나눈 뒤 검은색 벤츠 승용차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부대표단도 이때부터 긴급회의를 여는 등 움직임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이어 오전 9시15분께 정부 대표단 대변인인 김홍재 통일부 홍보관리관이 백화원 3층 프레스센터를 찾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이 있을 예정”이라고 밝혀 면담성사를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다.

정부 대표단은 16일 밤 북측으로부터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던 것으로 17일 뒤늦게 확인됐다.

통일부는 면담 성사가 알려진 후인 17일 오후 “정부는 당국 대표단의 평양방문을 계기로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추진해왔다”며 “북측은 어젯밤 면담동의 의사를 전달해왔다”고 공식 확인했다.

정부 대표단은 16일밤 면담동의 의사를 통보받았지만 면담 장소와 시간은 17일 오전 통보받았을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 대표단이 김 위원장과의 면담 추진 사실을 끝까지 숨긴 것은 막판까지도 성사 가능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에 따라 면담을 추진하면서도 불발시 되돌아올 ‘역풍’을 우려해 이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는 한편, 성사 직전까지 ‘연막’을 피웠던 것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