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기획] ‘코로나 청정국’ 北… ‘총살·화장’ 비상식적 조치 지속

민간시설 격리자 8만명 초과 등 상황 악화...전문가 "향후에도 명확한 현황 공개 못할 듯"

청진시 수남구역에서 방역소독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 당국의 심상치 않은 방역 조치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 북한 당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단계를 최고 수위인 ‘초특급’으로 격상해 국경과 지상, 해상 및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을 봉쇄했고 각종 모임도 중단시켰다.

뿐만 아니라 사상 유례없이 학생들의 방학을 수차례 연장하고 상점과 음식점 등 집합시설의 영업을 금지했다. 국경봉쇄 조치에도 밀수에 가담하거나 방역조치를 지키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선 총살도 불사하고 있다. 공포 정치에 가까운 방역 조치들을 보면 북한 내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론 북한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0명’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주간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일까지 북한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주민은 9373명이었지만 북한 당국은 확진사례가 없다고 보고했다.

당국의 주장대로 북한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면 1월 말 북중 국경봉쇄조치부터 시작된 일련의 방역 조치들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격리병동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격리병동. /사진=붉은별tv 유뷰브 캡처
북, 평양서 코로나 의심 사망자 나오자 국가비상체계 선포하고 비상방역지휘부 조직

데일리NK 내부 취재 결과 북한에서 코로나19 관련 사망자가 처음으로 발생한 것은 지난 1월 말이다. 중국 방문자가 많은 평양시와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발열과 기침증세를 보이던 주민들이 항생제와 해열제 투여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사망한 것이다.

사망자 모두 코로나 관련 증상이 나타나기 직전 중국을 다녀왔거나 중국 방문자와 접촉한 사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이들의 사인(死因)을 급성 폐렴으로 결론짓고 서둘러 장례 절차를 밟았다. 시신을 유가족 동의도 없이 화장 처리하고 유골만 전달하자 내부에서도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북한에서 폐렴으로 인한 사망자를 당국이 직접 화장 처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북한 내부에서 코로나19 관련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당국은 국경 봉쇄조치를 단행했으며, 1월 28일에는 국가비상체계를 선포하고 평양을 비롯한 각 지역에 비상방역지휘부를 조직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2월 25일 기준으로 코로나19 관련 증상자와 사망자를 비밀리에 집계했는데 조사 결과 시설에 격리 조치된 의심환자는 82명, 사망자는 23명이었다. 하지만 비상방역지휘부는 이들을 모두 ‘급성 폐렴’이나 호흡기 기저질환자로 보고 코로나19 감염자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정은, 코로나19 확산 우려 상황에도 선제 방역자화자찬

당국은 코로나 관련 내부 집계 사흘 뒤인 2월 28일 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전염병이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경우 초래될 후과는 심각할 것”이라며 코로나 바이러스 차단을 위한 ‘초특급 방역 조치’를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비루스(바이러스) 감염증의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르고 잠복기도 불확정적이며 정확한 전파경로에 대한 과학적 해명이 부족한 조건에서 우리 당과 정부가 초기부터 강력히 시행한 조치들은 가장 확고하고 믿음성이 높은 선제적이며 결정적인 방어 대책들이었다”며 업적 선전에 나섰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과 달리 북한 내 코로나 관련 증상자는 빠르게 확산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취재 결과 북한 당국은 지난 5월 30일 철저한 보안 조치하에 고열, 기침, 호흡곤란 등의 증세로 국가시설에 격리된 주민 수를 집계했는데 조사 결과 865명이 격리 시설에 수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2월 말 북한 당국의 내부 집계와 비교할 때 3개월 사이에서 코로나 증상으로 인한 시설 격리자가 1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지난 9월 25일 오전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인근 해상에 정박한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서 해경선으로 보이는 선박 관계자들이 조사를 벌인 뒤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
북한 당국의 계속되는 비상식적 방역 조치의심자 1명 유입에 도시 전체 봉쇄

국경 봉쇄, 지역 간 이동 금지, 모임 및 등교 금지 등 강력한 방역 조치에도 불구하고 발열 등 코로나 관련 증상자가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양상이 나타나자 당국의 방역조치는 점점 비상식적 양상을 보였다.

또한 7월 말 탈북민이 개성을 통해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당국은 개성시 전체를 완전 봉쇄하더니 8월에는 중국에 체류하던 북한 여성 한 명이 양강도 삼지연으로 넘어오자 삼지연시와 혜산시를 전면 봉쇄 조치했다.

급기야 지난 9월 북한 군당국은 해상을 표류하던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해양수산서기 이모 씨에게 총격을 가하고 해상에서 시신을 소각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이에 코로나19 유입에 대한 당국의 두려움이 상당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또한 북한에서 코로나19가 당국의 통제를 벗어날 정도로 상당히 확산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로 북한 내부 소식통이 전한 코로나19 관련 집계는 이 같은 심증을 뒷받침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당국은 11월 1일 기준으로 국가 지정시설 누적 격리 인원이 총 8만 1000명이라고 조사했다. 이 같은 수치는 당국이 WHO에 보고한 코로나 현황보다 5만 명 이상 많은 수다.

이와 관련해 소식통은 “국제기구 인사라 할지라도 철저하게 우(위)에서 허가한 부분만 확인할 수 있다”며 “얼마든지 허위 보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3일 전국 각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비상 방역사업을 점검했다. 사진은 평양시 중구역에서 소독사업을 진행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사진 오른쪽에는 ’37℃ 이상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코로나 방역 조치 당의 업적으로 선전한 北…감염 상황 공개하지 못하는 자충수로 작용

당국이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극단적인 방역 조치를 실시하면서 경제난이 가중되고 주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지만 북한은 코로나 방역 수준을 강화하면서도 자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0명’이라는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

일각에선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북한 당국이 대응 조치를 정치적 선전으로 이용한 것이 감염 실태를 명확하게 밝힐 수 없도록 스스로 발목을 잡은 꼴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은 경제를 희생시키더라도 인민 안전을 위해 최대 조치를 취한다는 명목으로 극단적인 방역 조치를 감행한 측면이 있다”며 “방역 조치를 당의 업적으로 강조하다보니 코로나19 현황을 명확히 공개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까지 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연구위원은 “당의 존립에 위협을 주는 정도로 코로나가 확산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당국이 코로나 현황을 명확히 공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