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제분소에 등장한 국정가격표…김정은 신년사 때문?

북한 농촌지역에서 형성되고 있는 걸거리 시장 모습. /사진=데일리NK 사진자료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가격이 확고히 자리 잡은 북한에서 최근 국정가격이 다시 등장해 그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양강도 혜산의 제분소(정미소)에 2002년 7.1 조치 당시 고시한 쌀과 옥수수 등의 국정가격을 적어 놓은 표를 걸어놓았다고 내부 소식통이 3일 알려왔다.

제분소에 걸려있는 쌀 가격은 44원, 강냉이는 24원이다.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쌀은 5200원, 강냉이는 2100원으로 국정가격과 100배 가량 차이가 난다.

양강도 소식통은 이날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말부터 혜산시에 있는 기계 방앗간들에 난데 없이 국정가격표가 나붙었다”며 “국정가격을 붙여놔도 그대로 거래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다. 주민들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1990년대 중반 쌀 공급이 중단되면서 가격이 치솟았고 당국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하면서 쌀의 국정가격을 7전에서 44원으로 인상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국정가격 고시는 시장에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9년 화폐개혁 당시에도 국정가격으로 쌀을 판매하도록 강제했지만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에 완패했다.

일부 주민들은 ‘국정가격으로 물건을 살 때가 좋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배급제가 유지된 30년 전의 추억일뿐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국정가격이 통용되던 시기는 배급제가 유지됐던 1990년대 초반까지이다.

1990년대 이전 북한에서의 모든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은 내각 국가계획위원회 산하 중앙가격제정위원회에서 일방적으로 제정하였다. 현재 국정가격은 국가계획을 다루는 인민위원회 계획부서와 상업부서에서 생산과 지출을 계산할 때만 의미를 갖는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내각과 국가경제지도기관들은 사회주의 경제법칙에 맞게 계획화와 가격사업, 재정 및 금융관리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국정가격 고시가 ‘계획화와 가격사업 제시’ 방침과 관련된 것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시장에 대한 물리적인 통제나 가격 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시장을 적극 활용해왔다. 이러한 정책 기조에 역행하고 극단적인 시장 왜곡을 가져올 수 있는 국정가격 제도를 재도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제분소에 고시된 국정가격은 쌀과 강냉이 이외에도 밀(1kg) 26원, 콩 44원, 영양가루 70원, 빵가루 95원, 벼 33원, 농마 109원, 감자 9원이다. 이 품목들의 시장가격은 밀 2000원, 콩 4000원, 영양가루 5400원, 빵가루 3500원, 벼 3800원, 농마 5200원, 감자 900원 수준이다.

또 소식통은 “주민들은 ‘위(중앙)에서 국정가격을 공지하는 것은 시장에서 야매가격(시장가격)을 치르면서 먹고 사는 현시점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 “중국에서 들여오는 물품 가격이 있는데 손해를 보고 국정가격에 팔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말했다.

이어 “지금 시장이 돌아가고 상품이 유통되기 때문에 주민들이 먹고 산다”면서 “가격을 많이 올리면 장사가 제대로 안 되기 때문에 당연히 내려간다. 반대로 국가가 가격을 싸게 한다고 해도 시장에서 듣질 않는다”고 말했다.

경제학 전공 mjkang@uni-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