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비핵화 진정성, 하노이 때보다 오히려 후퇴”

北, 결렬 책임 미국에 전가...전문가 “최대한의 양보 확보하겠다는 전술"

김명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현지시간) 저녁 6시30분쯤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 앞에서 이날 열린 북-미 실무협상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혔다. /사진=연합

북미 비핵화 협상이 또다시 결렬됐다. 양측은 비핵화 개념 정의에서부터 로드맵 방안, 안전보장 및 제재해제 등에 대한 입장차만 확인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톨홈름에서 실무협상을 시작했다. 북미가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것은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처음으로 그동안 양측이 비핵화 협상에 대한 긍정적인 발언을 내놓으면서 기대감이 높았었다.

그러나 5일(현지시간) 오후 6시쯤 북측 대표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협상장에서 돌아온 후 북한 대사관 앞에서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김 대사는 “이번 협상이 아무런 결과물도 도출해 내지 못하고 결렬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이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버리지 못한 데 있다”며 “미국은 그동안 유연한 접근과 새로운 방법, 창발적인 해결책을 시사하며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했으나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대사의 성명이 발표된지 3시간 후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가져갔으며 북한 카운터파트들과 좋은 논의를 가졌다”며 “북한 대표단에서 나온 앞선 논평은 오늘 8시간 반 동안 이뤄진 논의의 내용이나 정신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결렬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김 대사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

이어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미국과 북한은 70년간 걸쳐 온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적대의 유산을 단 한 차례의 만남을 통해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것들은 중대한 현안들이며 양국 모두의 강력한 의지를 필요로 하고 미국은 그러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여러 차례의 논의를 통한 면밀한 비핵화 로드맵과 상응조치를 원한 미국과 한번의 논의에서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려한 북측의 입장이 상충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학교 국제지역학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상응조치의) 최대치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하노이에서는 최소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얘기를 했고 그 이후 상응조치를 요구했는데 이번에는 비핵화 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없이 체제 안전보장과 제재 해제까지 망라해서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이어 “지난 2차 북미 정상회담 때 미국은 전부 아니면 전무 즉 노딜을 얘기했는데 이번에 북한이 그와 같은 모습으로 최대치를 요구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의지는 하노이 회담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은 하노이 회담 때보다 더 진보된 보습이 전혀 없다”며 “북한은 영변 폐기만을 얘기하고 제재 해제는 더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미 양측은 이번 실무협상에서 비핵화에 대한 개념 정의에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사는 협상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조선반도(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제거될 때라야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의 비핵화’를 강조한 셈이다. 즉 전략자산 확대 중단 및 한미연합훈련 중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등 모든 적대 정책이 다 사라져야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북한이 체제안전보장 문제에 경제적 제재 해제와 모든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포함시키고 있다”며 “북한이 가지고 나온 협상안이 이전보다 더 모호하고 애매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결렬’을 먼저 선언한 것은 다음 회담에서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협상 전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 연구위원은 “미국은 북측과 충분한 대화를 나눴고 좋은 논의를 했다고 하는데 북측이 미국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을 보면 충분한 대화는 있었지만 북측이 원하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향후 만남에서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제재 해제 목표를 달성하려는 북한의 협상전략”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도 “되든 안되든 일단 최대치를 던지고 보는 게 북한의 협상 전술 중 하나”라며 “다음 번 협상에서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김 대사는 “조선반도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우리의 입장은 불변하다”면서 “(미국 측에) 협상을 중단하고 연말까지 좀 더 숙고해볼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대한 여지를 남긴 셈이다.

아울러 결렬 책임을 미국에 넘긴 행보엔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한국 내 남남갈등을 유도하려는 전략도 내포되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편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2주 이내에 북측 대표단이 스톡홀름으로 돌아와 다시 만나자는 스웨덴 주최 측의 초청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사가 시한을 또 다시 ‘연말’로 밝힘으로써 2주 안에 북미가 협상테이블에 다시 앉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