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포커스] 각자의 역사 해석과 각국의 북한 비핵화 입장

북미정상회담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진행한 단독회담과 만찬 소식을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2월 27일 만찬 장소인 메트로폴 호텔 ‘라 베란다’에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모여 앉은 모습. /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인류 역사에서 끔찍한 사건들은 한 민족 전체가 능동적 혹은 수동적으로 협력한 탓에 벌어진 일이다. 예컨대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은 <<전쟁 회고록>>에서 1945년 5월 8일까지 전 독일 민족이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에게 “그 어떤 민족이 그 어떤 지도자에게도 바치지 않았던 대단한 정성”을 바쳤다고 서술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독일이 “폐허가 된 자국에서 조용히” 연합국 군대를 기다렸으며, ‘집단최면’ 현상을 12년이 넘도록 경험했던 것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과연 ‘유대-볼셰비즘’에 대한 독일의 증오가 정신 나간 수뇌부의 편집증적 망상에 불과했던 것일까?

식민주의, 스탈린주의(Stalinism),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매카시즘(McCarthyism), 피노체트 장군(Augusto José Ramón Pinochet Ugarte),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총리의 등장 역시 정도는 다르지만 같은 문제에 속한다. 이 역시 탄탄한 사회적 토대와 헌신적인 군대가 밑바탕이 되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을까?

현재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시간의 흐름은 ‘또 다른 각자의 역사’로 남아 전해질 것이다. 혹자는 ‘동아시아’의 범위에 대해서도 설왕설래는 한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동아시아인지, 그들이 공유할 수 있는 범위와 다름을 인정해야 할 범위에 대해 각자의 시각과 입장으로 해석하기에 갈등하며, 때로는 양보하거나 때로는 굴복한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입장, 그리고 그 해법은 각각의 국익을 기초로 기획되어 이제는 방법론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무엇인가, 그에 대한 국익의 변화에는 어떠한지에 대해 계산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만큼 ‘역사’가 많이 흘렀다. 이 또한 어떻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을까?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한목소리로 읽을 수 있는 보편적인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아무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날짜나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조약 체결 날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해도, 문제는 그 다음이다. 미국이 전쟁에서 이미 이긴 셈이나 다름없었는데도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미국 대통령이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것은 단지 일본을 겁주기 위해서였을까?

그리고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Ioseb Besarionis dze Jughashvili)은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었을 때 폴란드의 절반을 빼앗고자 했던 것일까, 아니면 1년 전 뮌헨에서 히틀러에게 체코슬로바키아를 넘겼던 프랑스와 영국에 보복하려 했던 것일까?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지도자들 중 그 누구도 도덕적으로 세심하게 고민한 끝에 그러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승자의 기록,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까. 역사의 근본 원칙은 어떠한 독단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금지도, 터부도 존중하지 않으며, 통념을 깨뜨릴 수도 있다.

역사는 도덕이 아니다. 역사는 찬양이나 비난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다. 역사는 현재에 종속되지 않는 것이며, 오늘날의 이념적 도식에 과거를 끼워 맞추지 않으며, 오늘날의 감수성으로 과거의 사건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역사의 자유”를 위한 공동 선언_Appel collectif ‘Liberté pour l’histoire_리베라시옹Liberaration_2005년 12월 12일자.)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