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도 인민의 배고픔보다 제 입맛 앞세워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임금의 수라상 음식을 담당하는 기관은 주원(廚院), 즉 사옹원이다. 식기와 식자자재 등 음식에 관계된 전체를 관장했다. 임금에게 직접 올리는 것은 내시부의 내관과 내명부의 궁녀들이 책임을 진다.


섬니내관(薛里內官)은 음식을 올리는데 진상한 음식재료를 검사하거나 요리를 직접 맛보는 역할을 담당하고, 내의원제조는 음식의 모양을 검사했다. 내의원관원은 임금과 거의 매일 일상식사에 대해 무엇을 먹을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를 대화를 나누어 임금의 건강을 챙기는 대단한 권력을 누렸다고 한다.


이렇게 임금의 식사는 내의원, 사옹원, 내관 궁녀들이 차례로 관여 했다. 최근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66·사진)가 김정은의 초청으로 북한을 다시방북하고 귀환해 화제가 되고 있다. 북한 왕조와 조선시대를 비교한다면 후지모토는 조선시대 주원의 수랏상 요리담당자다. 김정일은 그의 입맛을 위해 그네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본인에게 생명을 담보하는 수랏간에 요리사로 두면서 무척이나 신경 썼을 것이다.


김정일은 조선시대의 왕들보다도 더 고급스러운 미각을 생전에 과시했다.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공관원이나 무역 요원을 통해 자신의 미각에 맞는 음식을 가져다 먹었다. 김정일은 이러한 자신의 미식 습관을 맞춰줄 후지모토를 13년이나 자신의 곁에 두고 그가 만들어낸 맛을 즐겼다. 이란 철갑상어알, 덴마크 돼지고기, 체코 생맥주, 태국 과일, 위구르 포도 등 서민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음식을 먹었다.


특히 김정일은 외국 요리 중에서도 상어지느러미, 다랑어회(참치회)를 좋아했는데 이 때문에 주치의가 “다랑어는 콜레스테롤과 기름기가 많기 때문에 피하라”고 하자  한동안은 잘 지키다가도 “죽을 때 죽어도 먹어야 겠다”면서 다랑어회를 실컷 먹었다고 한다. 1990년대 북한주민이 200만-300만의 아사자가 발생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미각을 즐긴 파렴치한 모습을 보였다. 조선시대의 왕들은 가뭄이 들면 수랏상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는데 말이다.
 
후지모토는 김정일의 식탁은 보통 20-30가지 음식이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일국의 통치자가 이정도로 차려 먹는 것은 흉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후지모토는 김정일 생전에 그의 일식 음식을 담당하며 제한된 활동 반경에도 김정일이 누리는 취미활동을 같이 즐기기도 했다.
 
김정은이 후지모토를 이번에 초청한 이유는 어린 시절 향수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폐쇄적인 왕자 생활에 친구가 돼준 후지모토가 그리웠고, 김정일 생전에는 불가능했겠지만 그가 부재하면 불러서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후지모토는 이번 방북 과정에서 ‘혼마구로(참다랑어)’를 선물로 가지고가 김정은에게 대접했다. 김정은은 방북한 후지모토 를 포옹까지 하면서“오랜만이다”라며 “언제라도 (다시) 오면 환영하겠다”는 데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잘 읽을 수 있다.


김정은은 후지모토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선전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했다. 김정은이 부인 이설주, 동생 여정과 함께 후지모토를 위해 손님들을 초청하여 파티를 열어주고 북한인 처 엄정녀와 자녀도 만나게 해주는 등 통큰 배려를 한 것은 자신이 후지모토의 입을 통해 어떻게 그려질지 충분히 감안한 것이다.


북한은 향후 후지모토를 대일관계 이면 창구로 활용할 가능성이다. 후지모토는 김정일 시절 요리재료를 구하러 간다는 명목으로 2001년 일본으로 갔다가 돌아가지 않고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까지 펴내 제2의 이한영(김정일전처 성혜림 조카)과 같이 북한의 보복 테러까지 우려된 사람이었다. 여러 반대에도 무릅쓰고 불러들인 만큼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외부에서는 후지모토의 역할을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방송에 나와 하는 행동은 북한 측과 사전에 합의된 측면이 작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은 후지모토를 통해 어린 시절 입맛을 살리고 김정은의 이미지 메이커로 활용했지만 정작 그가 아버지처럼 인민의 배고픔과 무관하게 다랑어회를 즐기는 지도자라는 점도 확인시켜 줬다. 김정은이 자신의 미각(味覺)에 대한 향수보다 북한 주민의 배고픔을 달래주지 않는 이상 어떠한 이미지 메이킹 시도도 결국 성공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