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께 보내는 림일의 편지] <51> 청년들 험지 자원진출의 내막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어렵고 힘든 부문에 탄원 진출한 청년들을 만나 이들을 격려해줬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1일 보도했다. 신문은 김 위원장이 이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이들의 선행과 정신 세계를 높이 평가해 줬다고 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위원장! 8월 30당신이 사회주의건설의 어렵고 힘든 부문(험지)에 탄원(자원)진출하여 인생의 새 출발을 한 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밝은 앞날을 축복해줬다며 당사자 9명과 찍은 사진을 노동신문이 다음날 보도했습니다.

파격적인 당신의 모습에 다소 놀랐습니다공화국역사에 수령이 과거 일련의 범법행위 등을 저질러 법적처벌을 받은바(전과이력있는 청년들을 만나 기념사진까지 찍어준 사례를 언론에서 대서특필로 보도한 전례가 없었으니 말이죠.

문제는 다른데 있습니다한갓 정치선전에 불과한 그 사진을 보며 세상 사람들은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험지로 자원하는 자유는 있는가보다고 착각할 수 있겠죠허나 천만에평양에 그런 자유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실지 모르지만 공화국에서 전체 인민들에 대한 직업배치는 정부의 행정기관이 합니다고등학교 및 대학졸업생이직자제대군인들의 사회직장 배치를 모두 해당 인민위원회 노동행정과당위원회 간부지도과 등에서 전담하지요.

자기 마음에 들든안 들든 당(수령)의 결정이니 무조건 따르는 인민들입니다안 그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처형되지요엄밀히 말해 천만 인민이 현대판 노예로 강제노역장서 일하는 공화국인데 무슨 험지자원 청년들이 있다는 겁니까.

김 위원장당신은 그 9명의 청년이 정말 험지로 자원을 했는지아닌지는 전혀 모를 겁니다물론 알 필요도 없고요다소 흥미롭고 미스터리한 그 내막을 내가 25년 전 평양서 체험했던 농촌탄원 궐기모임을 회고하며 설명 드리죠.

때는 1996년 1내가 소속된 평양대외건설기업소에서 농촌탄원모임이 있었죠먼저 당위원회서 전체 노동자에게 우리가 농촌 탄원으로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의 심려를 덜어드리고 기쁨과 만족을 드리자는 내용의 강연을 줍니다.

한 달간 모든 노동자에게서 자필 탄원서’(지원서)를 받고 심의기간 2개월 후 탄원자를 발표했는데 무척 놀랐지요각 부서·직장서 한 명씩 선출된 14명 탄원자는 평상시 지각출근불평불만이 잦고 학습 및 조직생활의 낙오자들이었죠.

참고로 지난 1970년대 평양시에서 소개사업’(전쟁피해 방지목적으로 일부 시민들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것)이 자주 있었습니다해방 전 지주·자본가 친척들전쟁 때 치안대연관 친척 일부를 선별해 농촌으로 이주시켰습니다.

노동당 체제 유지를 위해 사회낙오자들을 선별하여 전쟁대피 핑계로 하던 추방사업이 1990년대 들어 농촌지원 핑계로 바뀌었습니다그래서 평양시민들은 혁명의 수도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당신에게 충성하고 또 충성하는 것이지요.

김정은 위원장조상의 뒤를 이어 당신이 이끌어가는 조선노동당과 공화국정부가 바로 이렇습니다사회주의건설의 소수 불평분자들을 적극 찾아내어 탄원자의 감투를 씌워 험지로 이주시키는 기막힌 그 통치수법에 소름이 끼칩니다.

지난 8월 30당신과 기념사진을 찍은 9명의 험지자원 청년을 다시금 잘 보십시오그 어두운 얼굴에 무슨 밝은 희망이 어렸는가 말이죠근심과 걱정피곤함이 상기된 표정인 그들의 속마음을 제가 대신하여 아뢰면 이렇겠지요.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비정한 사회에서 태어났을까세상이 어떤지도 모르고거주와 유동의 자유도 없고수령을 비판하면 총살되고남조선 방송을 들으면 사상(정치)범이 되니 이게 과연 사람 사는 세상이 맞을까?” 

2021년 9월 15일 – 서울에서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