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망 23주기, 北주민 “돌맹이(영생탑)에 왜 고운꽃을…”

진행 : 북한은 지금 김일성사망 23돌 추모행사 준비에 한창입니다. 최근 북한당국의 주도로 각 공장기업소와 조직마다 꽃바구니 증정사업 준비가 이뤄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설송아 기자와 김일성 사망 추모행사를 준비하는 북한 사회의 모습 살펴보겠습니다. 설 기자, 관련 소식 전해주시죠.

기자 : 네, 올해는 김일성이 사망한 지 23년째 되는 해입니다. 해마다 7월 8일이면 연례적인 행사가 반복되는데요. 대북제재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올해 추모행사는 주민들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간부와 무역일꾼, 돈주(신흥부유층)와 일반주민들이 김일성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번 시간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진행 : 김일성 사망 추모행사에 대해 주민들이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은 지난해에도 포착되기도 했었죠.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기자 : 네, 김일성이 사망한 지 벌써 23년이 흘렀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한 94년 이후 애도기간 3년 동안에는 결혼식은 물론이고 돌잔치, 생일 등 웃고 기뻐하는 사적인 행동은 철저히 금지됐었는데요. 이후 김정일 정권이 정면으로 나선 2000년대에 들어서도 7월만 되면 숙연한 분위기는 지속돼 왔습니다. 주민들의 행사 참여 역시 비교적 자발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일반 상인들조차 장사 유동(流動)에 신경을 쓸 정도였습니다. 또한 그 기간에 부득이하게 멀리 출장을 가서 7월 8일 헌화를 하지 못한 간부들이 죄의식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김일성이 독재정치를 펼치기는 했지만 주민들에게 자발적인 충성심을 갖게 했다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일률적인 충정분위기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눈에 띄게 달라진 변화는 없지만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7월 8일은 삼복(三伏)이 시작되기 전 하루 정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추모행사 역시 관행으로 인식하고 우러나오는 감정은 없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으고 있는 건데요. 이마저도 계층별로 다르게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진행 : 김정은 시대 들어 김일성에 대한 추모의 마음이 전반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말씀이신데요. 간부들도 이런 흐름에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건가요?

기자: 네. 우선 뼈대가 흔들리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권력층 내에서 인식변화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원래 간부들은 정책을 집행하면서 무엇이 잘못되고 잘 된 것인지 일반 주민들보다는 빨리 깨닫습니다. 내가 보는 사회와 사회가 보는 내가 다를 때 생기는 회의감이랄까요. 그렇기 때문에 간부들이 원래 정책에 대한 불만은 더 깊은 겁니다.

실제로 간부들부터 7월 8일 추모행사 불참을 큰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간부 자녀의 경우 집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경우도 있다는 소식이 몇 년 전부터 들려오고 있습니다. 혹시 이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당기관은 물론, 사법기관조차 암묵적으로 덮곤 한다는 것인데요. 김정은 체제에서 경제적 이권을 쥐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간부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사상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긴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대북제재가 강화될수록 김정은 체제로써는 이권세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추모행사에 빠졌다고 이들을 모두 철직하거나 숙청해버린다면 이들과 얽혀있는 국내경제가 흔들리게 되고, 이는 결국 체제안정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시장확장과 더불어 충정문화 역시 변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진행 : 그리고 김일성 추모행사 참여도 계층별 다르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소개 좀 해주시죠?

기자: 네, 7월이 시작되면 당(黨) 조직에서는 각 정권 기관을 비롯한 공장기업소, 그리고 학교마다 추모행사를 조직합니다. 특히 무역일꾼들에게도 헌화가 강요되기도 하죠.

지난 5일 평안북도 소식통은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중국 단동(丹東)에서 판매하는 최상의 생화 꽃바구니를 500달러에 구매해 귀국하는 길이라면서 간부들은 추모행사에 좋다 나쁘다 표현을 함부로 하지 않지만 무역일꾼들은 “하는 척 해야 한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소식통은 이번엔 7일과 8일 이틀만 특별경비이며, 당일(8일) 날 꽃 증정만 하고 나면 장사를 떠나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꽃 증정에도 빠지는 주민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단체로 헌화를 조직하는 공장기업소도 있지만, 개별 헌화를 하는 기업소 노동자들의 경우는 “돌맹이에 고운 꽃을 사서 놓는 게 머저리”라며 무시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돌맹이는 북한 곳곳에 세워진 영생탑을 의미합니다.

진행 : 북한 주민들이 우상화 상징물인 영생탑을 돌맹이에 비유한다고 하니 지도부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김정은의 경우는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기자 : 네. 김정은에 대한 충정은 애당초 형성부터 되지 않았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장마당 세대가 특히 그렇습니다. 이들은 일단 ‘초상화를 목숨처럼 사수해야 한다’에 대한 개념조차 없습니다. 기존 세대는 그래도 비가 오는 날이면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젖을까봐 신경을 써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초상화가 주택정면에 걸려있기는 해도 관심조차 없는 겁니다. 7월에 들어서 장마가 시작되면 단층집은 비가 새는 집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비가 담벽으로 스며들어 초상화가 누렇게 변질되기도 하는데요. 젖거나 말거나 관심도 두지 않다가 보기에도 한심하다 싶으면 당 위원장에게 초상화 교체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장마철 비 때문에 초상화가 훼손되었다면서 시 당에 보고하면 새로운 초상화가 나오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시 당 간부들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합니다. 수십 년을 절세의 영웅으로 떠받들도록 세뇌시킨 김일성, 김정일도 이 정도인데 김정은은 말할 것도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진행 : 그렇다면 시장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충하고 있는 돈주들은 어떤가요?

기자 : 그들은 우선, 간부나 일반 주민들하고는 다릅니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대놓고 이야기 하죠. 하지만 사실 정치와 분리될 수 없는 계층인데요. 7월 8일 추모행사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돈주도 상, 중, 하로 나뉘는데, 하급 돈주들의 경우는 정치행사에 별로 참여하지 않습니다. 돈을 주고 빠지곤 하는 거죠.

그러나 상급에 속하는 돈주들은 오히려 이런 기회를 자신의 시장영역을 확충하는 데 적극 활용합니다. 김정은이 려명거리에 관심있다는 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외화를 기부한다면 무역와크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시장활동에서 걸림돌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7월 8일 즈음 꽃바구니를 단독으로 사서 헌화하곤 합니다. 이처럼 북한에서는 정경유착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로 인한 부정부패는 이미 사회 전반적으로 구조화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행 :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설송아 기자와 김일성 추모행사를 준비 중인 북한 사회 풍경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북한 경제 IT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