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2.13 北비핵화 합의’ 유지 위해 北달래기 `도박’

미 행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합의한 `2.13 합의’의 틀을 살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2.13 합의의 1차 관문인 `60일 시한’을 4일 앞둔 가운데 북한이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자금이 전달될 때까지 북한의 1차 이행사항을 지킬 수 없다고 버티기 작전을 펼치자 급기야 10일 BDA자금을 동결이전 상태로 회귀시키는 `비상조치’를 북한측에 마지막 카드로 제시했다.

미국은 BDA 북한자금을 불법.합법계좌 가리지 않고 전액 또는 일부를 `개별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자유거래를 허용함으로써 달러화 위조 및 대량살상무기(WMD) 거래자금 돈세탁 등 불법행위를 근거로 BDA 북한자금을 동결했던 명분조차 스스로 거둬들인 셈이 됐다.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BDA 북한자금 문제는 미국의 화폐.금융체계를 위협하는 불법행위로 묵인할 수 없다는 입장과는 천양지차의 태도다.

미국은 BDA 북한 자금 전액 해제를 약속한 뒤에도 북한측이 자금이체 지연을 이유로 6자회담 재개를 거부하자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를 베이징에 파견, 마카오 , 중국 및 북한 당국자들과 2주동안 이례적으로 `마라톤협의’를 벌이도록 했다.

또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김명길 북한유엔대표부 차석대사간 뉴욕채널을 통해 BDA 문제의 정치적 해법을 찾는 등 노력도 모색, 북한측의 요구를 과감하게 수용해 BDA 북한자금 거래자유화라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측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처럼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는 다 취한 듯하다.

부시 행정부가 이처럼 과거에는 좀처럼 상상할 수 없었던 `파격적이고 자기모순적인듯한 결정’을 내린 것은 한편으로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으로선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선 `2.13합의’의 틀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는 전략적 판단하에 BDA 북한 자금 문제 등 6자회담 장애물들을 대승적 관점에서 다뤄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2.13합의’ 1단계 이행사항으로 북한이 약속한 영변 핵시설 가동중단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방북 허용이라는 첫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못하면 외교를 통한 북한 비핵화 달성은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임기 2년을 채 남겨놓지 않은 부시 행정부로선 역대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낮은 지지도, 혼미가 계속되는 이라크 사태, 이란의 핵개발 문제 등 내세울만한 아무런 외교적 성과가 없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쉬운 북핵문제에서 만회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북핵문제를 풀려는 미국의 접근태도는 BDA 문제에서만 감지되는 게 아니다.

미국은 작년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실험과 핵실험에 대한 제재조치로 북한의 무기거래를 전면금지하는 결의 채택을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북한에서 에티오피아로 무기가 수출되는 것을 묵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소말리아의 이슬람 무장세력과 싸우고 있는 에티오피아가 이 지역에서 종교적 극단주의자들과 싸우는 미국의 정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지만 이런 대의(大義)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유엔 결의 준수 의무를 스스로 어긴 게 됐다.

특히 이번 무기거래를 통해서 작년 유엔 결의 통과 및 BDA 자금 동결 이후 극심한 외화부족에 시달렸던 북한은 상당한 이득을 얻는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북한봐주기’가 된 셈이다.

미국의 이 같은 태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영변 핵시설 동결 및 IAEA 사찰단 방북 허용을 이행할 지 여부는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다.

미국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계속 벼랑끝 전술을 고집하면서 더많은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측이 이번에 BDA 해법을 제시하면서 이제 공이 북한쪽에 넘어가 있음을 강조한 것도 북한의 벼랑끝 전술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북한이 이번에도 어떤 구실을 내세워 ` 2.13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당장 부시 행정부는 국내에서부터 `무원칙한 대북협상’이라는 강한 비난의 후폭풍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존 볼턴 전 유엔주재미국대사 등 미국내 네오콘들은 `2.13 합의’에 대해서도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 상황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부시 행정부의 이 같은 대북양보카드가 대북강공책을 위한 서곡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군이 작년에 이어 올 여름에도 태평양 괌 주변해역에서 이례적으로 항공모함 3척을 동원,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돼 그 배경이 주목된다.

이번 훈련이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견제하기 위한 것일 수 있지만 북한의 비핵화 약속 이행을 압박하기 위한 `채찍카드’이거나 실제 북핵시설 공격을 염두에 둔 훈련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는 것.

지난 8일부터 북한을 방문중인 미국 민간대표단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빅터 차 아시아 담당국장도 동행하고 있어 북한이 그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보낼 지 관심의 대상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