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어린이, 1gr 사금채취에 목숨 건다

▲ 사회노동에 동원된 어머니를 따라 나온
북한 어린이 <사진:Tom Haskhell>

남한 사람들 가운데는 ‘사금(砂金)’이라는 말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금은 말 그대로, 모래(砂) 속의 금(金)이다. 우리 주위에 흔히 굴러다니는 바위 덩어리 안에는 극히 미량이긴 하지만 금, 은, 철 등의 성분이 섞여 있다.

바위는 풍화되고 물에 씻기는 과정에서 먼저 자갈이 된다. 자갈은 깨져서 다시 모래가 된다. 자갈과 모래는 차례로 층을 이룬다. 굵직한 자갈 틈 속으로 모래가 빠져나가 위에는 자갈층, 아래에는 모래층이 형성된다. 모래의 아래층에는 진흙층이 위치한다. 그리고 모래층과 진흙층 사이에는, 모래에서 빠져나간 금속 성분이 얇은 층을 형성한다. 여기에 사금이 존재한다. 대략 강바닥에서 3~5미터 되는 깊이다.

주민 총동원 사금 채취

모래 속에 금이 있으면 과연 얼마나 있을까마는,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그것을 긁어 모으라고 지시한다. 북한 주민들은 근로자 한 명당(국가 식량공급 대상자 기준) 1년에 금 1그램씩을 ‘충성의 외화벌이’로 ‘장군님’에게 바쳐야 한다.

‘1그램’이라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모래 속에 섞여있는 성분 가운데 금만 추려내 1그램을 뽑아내자면 정말 피눈물을 다 흘려야 한다. 군인과 학생, 60세 이상의 노인, 주부, 당/보위부/안전부 등 특수기관 종사자를 제외하고 공장 근로자가 되었든 교원이나 의사, 농민이 되었든 성인이라면 누구나 사금 채취의 의무를 진다.

북한 인구가 2천만 명 정도이니, 사금 1그램씩을 바쳐야 할 대상은 어림잡아 500만~800만 명 정도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북한 전체적으로 500만~800만그램, 톤으로 따지면 5~8톤의 금이 모아진다. 순전히 모래에서 뽑아낸 5톤, 혹은 8톤의 금을 상상해보라! ‘티끌 모아 태산’이 아니라 ‘사금 모아 태금(泰金)’, 피눈물로 쌓아 올린 금덩어리가 아닐 수 없다.

사금채취 목적 주민들은 몰라

‘충성의 외화벌이’는 외형적으로 당 자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실제 무슨 용도로 사용되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당 비서들은 사금과제를 수행하도록 인민들을 볶아댄다.

사금 채취의 시간은 따로 주지 않는다. 그냥 “휴가 기간에 하라”고 한다. 그래서 모처럼 다가온 쉬는 날에 편히 쉬어보지도 못하고 강가에 나가 무작정 모래를 밀어댄다. 보통 온 가족을 다 데리고 나간다. 아빠가 금 계획을 달성 못하면 온 가족의 배급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는 어린이, 학생들은 사금생산에서 제외되지만 아버지를 위해 사금채취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고 강에 나온 남편은 모래를 쏟고, 아내는 물을 붓고, 자식은 모래를 날라오는 식으로 일을 분담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모래 속의 금을 골라낸다.

▲ 3인 가족의 사금 채취 과정

사금 채취는 굴삭기나 포크레인 같은 기계를 쓰면 빠르겠지만 개인이 장비를 동원할 수 없기 때문에 순전히 재래적인 방법에 의존해 인력으로 해결한다.

장비는 간단하다. 우선 나무막대기로 엮은 발이 있어야 한다. 50센티미터 크기의 나무막대기 수백 개를 면포(綿布) 위에 3~5밀리미터의 조밀한 간격으로 쭉 이어 붙인다. 면포의 크기는 보통 1.5미터 정도이다.

그 위에 모래를 올려놓고 물을 부으면 가벼운 모래는 그냥 씻겨 내려가고 무거운 금은 면포에 가라앉게 된다. 말이 쉽지 이런 동작을 수백 번 반복해야 한다. 대략 양동이로 3백~5백 번 정도 모래를 통과시킨 후 면포만을 분리시켜 씻는다. 한 양동이당 10킬로그램쯤 되니 3~5톤은 족히 들이 붓는 것이다.

그런 다음 면포에 앉은 앙금을 바구니에 담아 쌀을 일듯 인다. 가벼운 모래와 각종 금속은 씻겨나가고, 나중에 무거운 금싸라기만 남는데 약 0.1그램 정도의 극소량이다. 이런 작업을 또다시 열댓 번은 되풀이 해야 한다. 물론 자리를 잘 잡으면 한 번에 1그램 이상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를 “노다지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바쳐야 하는 금은 순도가 70% 이상이어야 하기 때문에 불순물을 제거해야 한다. 여기에는 수은(Hg)이 사용된다. 상온에 존재하는 유일한 액체상태의 금속인 수은은 금과 잘 결합한다. 사금 채취 과정을 통해 모은 금싸라기 위에 수은 한 방울을 굴리면, 데구루루 굴려가면서 순수한 금만이 주위에 뭉친다.

이렇게 만들어진 덩어리를 나일론으로 만든 스카프 위에 올라놓고 짜낸다. 그러면 수은만 제거된다. 그것도 부족해 다시 한번 가스불로 태워(가스토치를 사용) 수은을 완전히 날려버린다. 이렇게 해서 순도가 높은 금을 얻어낸다.

▲ 사금이 있는 강바닥 단면도

사고로 죽는 사람도 많아

사금을 캐려면 먼저 자리를 잘 보는 것이 중요하다. 강 상류에는 금광과 같은 금맥이 있어야 하고, 자갈과 모래가 많아야 한다. 강바닥에서부터 3~5m 정도를 파고 내려가면 진흙층이 나오는데, 그 위에 약 3~5cm 정도로 얇은 사금층이 있다. 이 얇은 층을 장악하여 사금을 채취한다. 사금층이 조금이라도 두터운 곳을 찾기 위해 강바닥 여기저기를 파헤쳐 놓는다. 사금이 많이 나는 ‘명당 자리’에는 사람들이 까마득하게 모인다.

식량난이 있기 전에는 시간 있고 나이든 사람들이 혼자 강에 나가 사금생산을 했다. 대체로 노인들이 이런 일을 많이 했다. 국가에서 개인 간 금 매매를 통제했기 때문에 노인들은 1그램을 국가에 바치고 나머지는 암시장에 몰래 팔아서 돈을 모았다. 한때 사금을 채취하여 돈을 모았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국가에 금 1그램을 바치면 설탕 2킬로그램 정도를 다른 사람보다 먼저 구매할 수 있는 ‘우대권’을 준다. 하지만 금 1그램을 암시장에 팔면 설탕 10킬로그램을 살 수 있는 목돈이 생기기 때문에 사람들은 국가에 바치지 않고 개인매매를 하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식량난이 닥쳐오자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강에 나갔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돈’이 되는 사금을 채취하기 위해서다. 그때 사금이 많이 나는 평남 회창군과 평북 운산군의 구룡강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사금채취를 하는데 마치 개미군단을 방불케 했다. 수만 입방미터의 토양을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걷어내고 사금을 캤는데, 강기슭 전체의 5미터 깊이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사금 채취는 보통 봄, 여름, 가을에 집중적으로 하는데 겨울에도 한다. 겨울에는 땅이 얼기 때문에 위층의 박토 역시 얼어서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5미터 깊이의 금맥을 찾아 오소리굴 같은 구멍을 파고 그 속에 들어가 흙을 파내 온다. 동발 같은 것도 세우지만 그것으로 붕괴를 막을 수 없다. 이렇게 금을 캐던 사람들 가운데 굴 입구가 무너져 영원히 나오지 못한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특히 힘이 약한 어린이와 노인들이 많이 죽는다.

▲ 농작물이 있는 밭 아래를 뚫고 들어가며 사금을 캐는 모습

사금채취 연간 5천만~8천만 달러

사금은 주력외화벌이 상품이기 때문에 북한 정권이나 주민들이 탐내는 물건이다. 노동당에서는 전국의 금을 김정일에게만 집중시키려고 개인의 금 매매를 통제하고 있다. 국가에 바치는 금은 거의 무료나 마찬가지다. 설탕 2킬로그램을 살 수 있는 우대권을 주지만 국영상점에 물건이 없으니 그냥 종이조각으로 굴러다니는 경우가 많다.

하여간 이렇게 해서 모이는 금이 연간 5톤~8톤 정도로 추정된다. 이것을 팔면 얼마나 될까? 사금채취로 만들어진 금은 순도가 70% 정도이니 18K 금에 가깝다. 현재 국제사회의 18K 금값은 1그램에 대략 10달러 정도이다. 따라서 ‘5톤 = 5천만 달러’의 가치를 갖는다. 김정일은 인민들의 피땀으로 5천만~8천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금 생산은 사금채취뿐 아니라 주로 군대에서 운영하는 금광에서 정상 채취되는 금도 있으니 실제 금 수출로 김정일이 벌어들이는 외화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그만 어린애들이 손톱에 피가 나도록 모래를 옮기고, 손주들 재롱을 보면서 여생을 보낼 늙은이들이 허리가 완전히 휘도록 모래를 짓이기면서 만들어낸 금덩어리! 그 금덩어리를 팔아서 번 돈으로 오늘 밤도 김정일은 꼬냑 ‘헤네시 XO’를 마시면서 ‘황제의 밤’을 즐기는 것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