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 남북관계 ‘뚫자’…“급할 것 없는 北, 매뉴얼대로”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남북대화의 전면적 재개를 제안한 지 이틀만인 13일 “가소로운 잔꾀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며 사실상 남측의 제안을 거부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이날 “괴뢰역도가 이번에 ‘전면적인 대화재개’를 운운하였지만 그것은 속에 없는 빈말”이라며 “지금까지 아래 것들이 떠들어오던 것을 되풀이 한 것으로 논할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경색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국회 연설을 통해 직접 남북대화를 제안하는 전략을 썼지만 북한이 받아들이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었던 셈이다.

이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통해 남북 간의 기존 합의들과 6·15,10·4 선언을 같은 선상에서 언급하며 기존 입장에서는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입장을 명백히 밝히지 않고, 그것을 과거의 북남합의들과 뒤섞어 어물쩍하여 넘겨버린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두 선언에 대한 존중과 이행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 “北, 南 6·15,10·4선언 존중해야 대화 나설 것”=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나서려면 형식적으로라도 6·15, 10·4선언에 대한 존중의 의사를 밝히거나, 그렇지 않다면 원칙적 입장을 분명히 고수하는 등 분명한 대북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나머지 (합의들은) 밑에 사람들이 한 것이라고 해도 6·15와 10·4 선언의 경우 장군님이 사인한 것이기 때문에 남쪽 정부가 이를 존중한다는 적극적인 입장을 표현하지 않는 한 남북대화에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부가 대화를 재개할 의사가 있었다면 지난 정부의 연속성 차원에서 양 선언을 존중한다고 립서비스 차원에서 말할 수도 있는 문제”라며 “실제 협상을 통해 할 것은 하고 안 할 것은 안할 수도 있는 문제다. 정부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남북관계를 풀겠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든지, 그 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 원칙적 면을 강조하든지 두 가지 입장 중 선택을 해야 한다”며, 그러나 “지금은 그 중간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도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6·15, 10·4 선언에 대한 입장 표명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이라며 “과거 남북합의들과 같이 얘기한 부분은 있지만 명백한 존중과 이행 의지가 담겨 있지 않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북한으로서는 북핵 문제의 진전과 북미관계의 개선에 따른 대외 지원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지원에 과거처럼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남북관계 개선에 급할 것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 “금강산 관광 北주요 수입원…타협점 찾을 것”=김성배 연구위원은 “현재로서는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않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북한의 요구사항을 100%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이 납득할만한 상황 진전이 이뤄지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식량 50만t이 지원되고 있는 등 북미관계가 잘 되고 있고, 북중관계 또한 잘 돌아가고 있다”며 “6자회담 합의에 따른 중유와 에너지 지원도 이뤄질 것이고, 북핵 문제가 잘 풀리면 내년에도 미국과 6자 관련국으로부터의 지원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남쪽의 대북지원이 과거만큼 요구되는 조건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또한 “우리 쪽에서는 북한이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하고 있지만, 북한은 급할 것이 없어 보인다”며 “북한은 5년 이후를 내다보며 남쪽 정부의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도가 강해보인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한 “북한은 남북관계와 관련해 매뉴얼에 따른 대응이 바로 바로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 이러한 양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북한의 대남부서들이 현재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정비가 되고 분위기가 잡히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지난 11일 발생한 금강산 여성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인한 남북관계의 전망에 대해 금강산 관광이 북한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수입원이라는 점에서 시간은 걸리더라도 해결 국면을 맞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조동호 교수는 아직까지 “북한은 남북교역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며 북한도 이 사건을 통해 남북교류를 중단하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으니까 강하게 나오는 것”이라며 “기싸움의 한 국면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자체가 최근의 남북관계를 반영하기 보다는 돌발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며, 향후 남북관계에 “계속 영향을 줄 수 있는 면도 있지만 타협을 볼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은 북한에게 연간 대체적으로 수천만 불의 소득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도 굳이 상황을 악화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며, “북한도 남북 간 교류협력을 전면 중단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