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북한의 궁극 안보는 좋은 대미관계”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지난 11일(이하 현지시간) 외신기자 상대 회견에 이어 17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을 통해 제4차 6자회담에 대한 설명회를 마쳤다.

두 자리는 미 국내외 여론을 향해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외관을 띠었지만, 힐 차관보가 강조한 대목들을 보면 실제론 북한 지도부를 향한 설득 메시지 성격이 강하다.

힐 차관보는 두 자리 모두에서 북한의 결정이 “단지 핵무기를 포기하느냐 여부가 아니라 북한의 장래 진로에 관한 것”이므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십분 이해한다며 역지사지의 자세를 취하고, 그럼에도 핵을 포기하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북한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그는 특히 17일 연설과 문답에서 “미국은 이 협상(deal) 타결이 미국 국익에 부합한다고 보고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것이라는 점을 모두가 알아주기 바란다”며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누구와도 얘기할 것”이라고 분명한 대북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은 평화협정 체결 등 북한의 요구를 망라한 포괄적 보상책을 뜻하는 것이겠지만, “누구와도 얘기”하겠다는 ’누구’가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는 얼마전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만날 용의를 밝힌 적이 있다.

힐 차관보는 이어 “사람들이 나보고 워싱턴의 뒷받침을 받고 있느냐고 묻는데, 내기해도 좋다”고 강조, 자신이 협상 전권을 부여받았음을 분명히 했다.

다음은 힐 차관보의 이날 연설과 문답에서 “북한의 모든 기존 핵프로그램 폐기” 원칙을 고수하는 가운데 미국의 전향적 협상 자세로 보이는 주요 포인트.

◇ 대북 안전보장 = 힐 차관보는 궁극적으로 “북한을 보호해주는 것,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은 핵무기 몇개가 아니라 이웃나라와, 그리고 미국과 좋은 관계”라고 못박았다. 북미관계 정상화가 곧 북한의 안보를 도모하는 첩경이라는 뜻이다.

그는 원칙선언문 제4차 수정안의 내용을 설명하는 가운데 “북한이 안보차원에서 핵무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핵무기가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해 북한의 안보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으며 그것이 선언문에 들어있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이 긴밀히 논의했고, 중국에도 얘기했고, 북한이 원한다면 체결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북한에 제안한 평화협정”도 이 ’다른 수단’의 하나로 보인다.

힐 차관보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평화협정 체결에 한국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지만, 평화협정은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길목이다.

그는 다만 평화협정 체결 협상은 6자회담이 아닌 다른 포럼을 통해야 한다고 말해, 북핵문제 타결 이후 후속조치가운데 1998년 열렸던 남북한과 미.중간 4자회담 의 부활도 예상된다.

힐 차관보는 이와 함께 유럽의 다층 안보구조를 설명하면서, 북핵 6자회담을 동북아에서 다자 안보 구조 구축의 시발점으로 삼고 있음도 강조했다.

동북아에서도 안보구조를 다층화해 나감으로써 북한을 포함해 역내 모든 국가의 안보를 보장하는 비전을 북한 지도부에 제시한 것이다.

◇ 대북 경제지원 = 힐 차관보는 북한의 미래가 정치.군사적 안전보장 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고, 에너지를 포함해 경제 회생에도 달려 있다는 뜻을 강하게 시사하면서 핵을 포기함으로써 국제사회의 경제지원을 받으라고 촉구했다.

경제지원과 관련, 그는 “특히 한국과 경제협력 프로그램”을 비롯해 양자간 경제 프로그램 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 자금을 지원하는 “세계은행을 비롯한 다른 개발은행들과의 다자간 경제 프로그램”이 선언문 초안에 들어있다고 밝혔다.

에너지 지원과 관련해선 한국의 전력 지원 제안을 상기시키고, “이 문제에 대해 한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우리는 북한의 에너지 문제 대처에 참여자(a participant)’가 되고 싶다”고 말한 대목.

지난해 3차 회담 때 미국의 대북 제안에 한국 등의 대북 중유 제공이 들어 있었으나 미국은 이에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반면,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포기 증좌로 미국의 참여를 요구함으로써, 핵심 쟁점의 하나가 됐던 점에 비춰 미국 입장의 변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힐 차관보는 북한의 실제 발전량이 용량의 “30% 미만”임을 지적,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하고, 선언문에 이 문제 해결 방안이 포함돼 있다고 역설했다.

◇ 고농축 우라늄(HEU) = 힐 차관보는 베이징(北京) 회담 ’초기’ 이 문제를 제기했으며, 서로 고성없이 ’실무적으로’ ’솔직한’ 견해를 교환했다고 밝혀 이 문제가 “해결됐다고는 말할 순 없지만” 그 이후 회담에 걸림돌이 되는 쟁점도 아니었음을 시사했다.

그는 또 HEU 관련 “일부 증거”도 제시했다고 밝히고, 북한이 수입한 “각종 (HEU 관련) 장비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야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예로 “알루미늄관을 수입해 운동장 시설에 썼다고 한다면, 그 운동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북한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모든 핵프로그램이 (폐기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못박았다.

북한이 HEU 프로그램 존재를 인정해야 다음 단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그동안의 입장과 달리, 원칙선언문에선 북한의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핵프로그램”에 HEU도 포함된다는 점만 분명히 한 뒤, 최종 합의문을 만들 때 검증 문제와 함께 다루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평화적 핵 이용권 = 지난 11일 회견에서 설명한 내용을 좀더 상술했다.

그는 “북한이 ’평화로운 원자로’를 2개월만에 (핵)폭탄을 만드는 기계로 바꿔버린” 상황에서 북한의 흑연감속로를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경수로에 대해선 “아무도 지어줄 생각이 없기 때문에, 건설하려면 북한 자체 자금으로 해야 할 것인데 가격표를 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비싸다”고 비현실성을 지적했다.

그는 선언문에 포함된 에너지 지원 계획을 설명한 뒤 “따라서 예견가능한 미래에선” 북한이 굳이 핵에너지를 가지려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국가 위신(prestige)” 때문이라고 한다면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는 “잘못된” 문제라고 일축했다.

그는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가입할 경우 평화적 핵 이용권을 갖게 됨을 원천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와 관련, 그는 “(정말) 큰 문제는 회담 속개에 대비해 여기서 말할 수 없다”고 말해 평화적 핵 이용 문제가 큰 문제가 아님을 시사했다./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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