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없는 세상, 첫걸음 내디뎠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주재하에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가 4월 12~13일 워싱턴에서 성공리에 개최되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프라하 연설에서 제안한 핵안보 강화와 핵테러 공동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개최된 최초의 정상급 회의이다.


여기에는 공인 핵보유국인 미국, 영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등 핵클럽 5개국은 물론이고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비공인 핵보유국을 포함해 현재 원자로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 등 47개국이 참석했다. 거기에 더해 유엔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그리고 유럽연합(EU) 대표가 추가로 참석해, 한마디로 핵무기를 갖고 있거나 원자력을 이용하는 모든 나라와 단체가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회의라 할 수 있다.


정상회의 후 47개국 정상들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첫 걸음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코뮤니케를 발표했다. 정상들은 4년 내 모든 취약 핵물질을 방호(secure)하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요청을 환영하며, 이에 동참한다고 선언했다.


구체적으로 동 선언은 각국이 국제적 의무에 따라 핵무기에 사용된 핵물질을 포함해 자국 관할권 내 모든 핵물질 및 핵시설에 대한 효과적인 방호를 유지하고, 비국가행위자가 핵물질을 악의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데 필요한 정보 및 기술을 획득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국가의 근본적인 책임임을 재확인하고, 핵안보를 위한 확고한 국내법 및 규제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각국이 필요에 따라 지원을 요청하고 또 제공하며, 핵안보 증진을 위해 하나의 국제사회로서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현재 전 세계에는 약 10만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이 있으며 전 세계 관련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 골치 아픈 물질을 어떻게 통제할지를 함께 고민해 보자는 것이 핵안보정상회의의 근본 취지이다. 특히 국가가 아닌 테러단체나 정식 국가가 아닌 교전단체 등이 핵을 보유할 경우 미국은 물론이고 지구촌이 핵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다.

이번 핵안보정상회의는 오바마 정부가 최근에 발표한 『핵태세검토(NPR)』 보고서와 함께 앞으로 전개될 국제 비확산 논의의 흐름을 짐작케 해준다. NPR은 미국의 정책수단에서 핵무기의 숫자와 역할 축소를 천명하는 한편, 핵비확산 의무 준수 국가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을 선언했다.

이른 바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을 공식화한 것으로, 이는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NPR에서 생화학무기나 테러기지에 대해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제시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면서도 이란이나 북한처럼 NPT를 탈퇴했거나 위반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유사시 핵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핵정책의 최우선순위를 핵 테러리즘 예방에 두는 한편, 동맹국에 대한 확장억지력 제공을 재확인했다.
 
새 NPR의 기본 방향은 대체로 지난 3월 5일 오바마 대통령이 핵확산금지조약(NPT) 발효 4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앞으로 미국이 핵무기의 숫자와 역할을 모두 줄여나가게 될 것이라며 핵무기 감축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밝힌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에서 미국이 안전하고 확고하며 효과적인 핵 억지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국가안보 전략상 핵무기 수와 역할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핵군축과 비확산, 그리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 세 가지가 프라하 연설에서 언급한 비전의 핵심 요소라고 언급했다.
 
핵안보정상회의 출범으로 ‘핵 없는 세상’을 향한 첫발은 잘 내디뎠지만 오바마의 비전이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지는 결국 국제사회 전체의 호응에 달렸다. 핵확산 자체가 초국가적 문제이듯이 비확산 또한 미국 혼자의 힘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오바마 시대 핵정책의 큰 원칙은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확실한 핵억지력을 유지함으로써 핵공격의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핵군축과 비확산을 위한 국제프로그램을 강화함으로써 핵확산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핵 보유고 축소와 동시에 강화를 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두 가지 원칙이 실현가능하다는 것을 오바마는 국제사회에 설명해야 한다.
 
핵태세검토(NPR), 핵안보정상회의, 그리고 오는 5월에 열릴 NPT 검토회의까지 3종 세트로 전개될 오바마 정부의 핵비확산 정책에서 이란과 북한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다. 이란은 NPT 조약을 유지하면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내세우며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만일 시아파 국가인 이란이 핵을 갖게 되면 소위 ‘시아벨트’에 속하는 이라크와 시리아 등의 테러조직과 연결될 가능성이 커지고, 중동정세가 매우 불안해지면서 이스라엘이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NPT 조약 탈퇴를 선언하고 핵개발을 지속하고 있어 동북아 안보에 불안요인이 될뿐 아니라 만일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화되면 동북아에 핵도미노 현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미 국무부 크롤리 차관보는 북한은 상습적인 확산자(proliferator)이며,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는 근본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는 초청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핵안보 정상회의가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의미는 한국이 제2차 회의의 주최국이 된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한국 유치 결정 직후 가진 특별 기자회견에서 ‘핵 없는 한반도’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제사회는 ‘핵 없는 세상’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 한국에 지금 더욱 중요한 것은 ‘핵 없는 한반도’를 이루는 일”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하며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주최했다면, 이 대통령은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유치 이유로 ‘핵 없는 한반도’를 내세운 셈이다. 우리나라가 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유치함으로써 비확산 분야에서 한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한편, 북핵문제 해결을 향한 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G20정상회의 유치와 함께 핵안보정상회의를 유치한 것은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핵 없는 한반도’ 실현에 최대의 장애는 물론 북한이다. 북한은 대북 핵공격 가능성을 열어 둔 오바마 행정부의 NPR에 대해 “미국의 핵 위협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앞으로 각종 핵무기를 필요한 만큼 늘리고 현대화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4월 9일 루이빌대학 연설에서 북한이 1~6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뒤이어 ABC방송에 출연한 자리에서는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로,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추구하는 국가로 분명히 구별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북한을 공식적 핵보유국으로 간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를 핵도발이나 확산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가진 1~6개의 핵무기가 미국에게는 당장 위협이 아닐지 몰라도 한국에게는 치명적 위협이다.

핵무기 보유가 기정사실화되면 북한은 한반도의 핵참화를 앞세워 남측을 협박할 것이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오바마 정부가 북핵 폐기 아닌 동결로 후퇴하는 것을 경계하는 한편, 북핵의 ‘완전한 폐기’라는 전략목표 공유에 한 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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