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바람맞은 인생 2부] 초고속 결혼 후 돌아오지 않는 남편

[어느 필사원의 사건일지] 10여년이 넘게 이어지는 출장…홀로 남겨져 세 아이를 키우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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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그리고 그다음 날 이틀 동안에 초고속으로 결혼식이 치러졌다. 친척들이나 동네 주민, 직장 동료들도 없이 부모님과 집에 있는 형제들만 모인 채 조용히 치러졌다. 그 청년 쪽도 가족 없이 상급이라고 하는 군관 한 명과 부모를 대신한다는 조직부장이 참가했다.

결혼식 예물과 상차림은 남자 쪽에서 전부 준비했다.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했는지 모른다. 군관이 차에 싣고 온 예물들은 일반적인 결혼식에서 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것들이었다. 여자 쪽에서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남자 쪽에서는 되도록 여자 쪽에 부담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남편은 날파람 있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나이가 10년이나 위였다.

정심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동네에서는 아무도 몰랐다. 이렇게 정심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인연도 없었던 한 남자를 만나 벼락 치듯 결혼식을 치렀다.

며칠 후 정심의 입당 문건이 초급당 위원회에서 결정되고 입당을 심의하는 당 세포모임이 있었다. 그는 정신을 차릴 새 없는 결혼식에 입당 심의까지 거쳤다. 그해 가을 당 창건 기념일을 계기로 정심은 조선노동당 당원증을 수여 받았다.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그날 골목길에서의 운명은 정심의 인생을 혼란스럽게 한 첫 시작이었고, 그녀가 두고두고 후회할 인생의 찌그러진 작품이었다.

평양 창전거리 선경종합식당 결혼식장에서 열린 결혼식 장면. /사진=연합

남편은 먼 거리 출장꾼


시간이 지나서야 정심은 모든 것을 알았다. 그날 남편을 골목길에서 만난 것은 이미 준비된 각본이었다. 정심의 남편 철명은 부대에서 당장 결혼하라는 임무를 받고 내려왔다. 부대에서는 일주일이라는 적은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임무는 이미 경로를 따라 정해져 있었다. 그날 골목길에서의 사고는 잘 짜여진 연극이었다. 정심만 감쪽같이 몰랐을 뿐이었다.

정심과의 결혼은 부대에서 도당을 통해 시당 당위원회와 공장 당위원회를 통해 이미 준비된 것이었다. 그는 이미 부대와의 담화에서 북쪽 여자를 만나겠다고 미리 점찍어놓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북쪽 사람이어서 정심이가 선택된 것이었다. 남편은 일반 주민들은 전혀 알 수 없는 특수직종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정심은 훗날 알게 되었다. 비밀이 철저히 보장되는 곳이었다.

초고속 결혼식에 살림집도 초고속으로 마련되었다. 당에서는 좋은 집을 마련해 주었다. 당장 살림을 시작했다. 당에서는 정심에게 입당도 했으니 집에서 쉬면서 천천히 일을 다시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때부터 정심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그 남자의 아내로만 살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에게는 직급이 내려졌다. 당위원회에 출근하지는 않지만 당위원회 부원이라는 직책이었다. 당위원회 사람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명예직급이나 다름없었다.

꿈에 부풀고 애정에 부푼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시작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좋은 성품에 인품도 남다른 사람이지만 티격태격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는 남편과의 생활은 정심을 집지기로 만들어버렸다. 남편은 결혼 후 두 달 정도 아예 직업을 버린 사람처럼 집에 붙어 있었다. 두 달이 지나자 정심의 뱃속에는 아기가 생겼다. 그때부터 남편은 출장의 연속이었다. 한번 집을 나서면 1~2년 정도는 밖에서 살았다.

신혼생활의 달콤한 꿈은 사그라지고 불안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맏아들이 어떻게 태어난 지도 모른다. 출장을 떠난 남편은 아내의 배 속에 아기가 있다는 것만 알 뿐, 맏아들이 태어난 날도 집에 없었다. 아기가 태어나는 날 정심과 친정집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남편에게 아이가 태어난 소식조차 전할 수 없었다.

남편은 맏아들이 두 돌이 되는 날에 집에 들어섰다. 만 2년 6개월만의 장기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었다. 남편은 자기도 없이 태어난 아이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여보, 왜 이리도 늦었어요?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정심은 울먹이며 말했다. 남편은 수심에 쌓인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아이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남편은 출장에 대해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 없었다. 어떤 일을 하느니, 왜 늦었다느니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철저히 비밀을 지켰다. 정심도 물을 수 없었다. 이미 남편과 결혼하면서 국가비밀엄수 규정에 지장을 찍은 상태였다. 서운하기만 했다.

결혼하고 떠난 출장에 오랜 시간을 보내고 왔으니 이제 더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정심은 다시금 신혼의 분위기에 들떴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한두 달 정도 집에서 휴식을 보내고 쫓기듯 떠났다. 평양 출장이요, 원산 출장이요 하면서 좀처럼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도 얼마 없었다. 그래도 정심은 먼 곳으로 훌쩍 떠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럭저럭 또 몇 개월을 남편과 함께 보내는 사이에 두 번째 아기가 뱃속에서 태동 쳤다. 그녀는 기쁨에 겨워 남편에게 두 번째 임신을 알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자고 있는 맏아들을 말없이 들여다보더니 또 떠난다는 소리를 했다.

“여보, 또 떠나야 할 것 같소. 이번에도 먼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소. 큰애 때처럼 둘째가 태어나는 것을 못 볼지도 모르오. 한동안 돌아오지 못할 것 같소.”

결혼하고 첫 출장을 떠날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정심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둘째가 태어나는 것을 당신이 볼 수 없다는 건가요?”

정심은 화를 냈다. 남편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자고 있는 아이와 아내의 배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들 어쩌고 저런들 어쩌랴. 정심의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정심이 가지 말라고 애원한다 해서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나라에서 만들어놓은 사람이고 나라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할 사람이었다. 남편은 끝내 다음날 떠나고 말았다.

남편이 없는 모든 시간 당에서는 최선을 다해주었다. 배급, 생활비는 물론이고 아이가 태어날 때도 남편을 대신해 당에서 모든 것을 챙겼다. 평일엔 아이들의 간식을 명절엔 명절 물자를 내려보냈다. 주요명절 때는 도당 책임 간부들이 직접 선물들을 가득 싣고 집을 찾아와 남편을 대신해 아이들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고 떠나갔다. 그럴 때면 동네 사람들이 구경거리라도 난 듯이 앞마당에 한가득 모여 흥성거렸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정심의 생활이 동네 사람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정심의 남편을 대남공작대 아니면 일본, 미국, 캐나다 같은 외국에 나가 나랏일을 하는 어마어마한 사람으로 예측했다. 정심도 잘 모르는 일을 밖에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정심은 남편이 하는 일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런 계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떠나간 남편은 또 한 번의 긴 출장을 마치고 2년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지없이 야속하고 미웠던 남편이지만 정작 다시 돌아오니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동안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남편. 아이들은 서먹서먹한 얼굴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길 가던 나그네가 들어선 것처럼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아빠의 얼굴을 모르는 두 아이는 남편이 어루만지려 하자 놀라서 고함을 치며 울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이 행복이 더는 사라지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정심은 남편을 꽉 붙잡았다.

생활은 다시 평화로움을 타고 흘러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4살, 2살 된 아이들의 응석을 들어주며 아이들의 마음을 잡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아빠를 거부하더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웃음소리가 창밖으로 터져나갔다. 사람 사는 집 같았다.

남편이 집에 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갔다. 남편이 또 훌쩍 떠나갈까 두려웠던 정심은 뜬금없이 물었다.

“여보, 또 가야 해요?”

금방까지 아이들과 껄껄거리며 웃던 남편은 말을 못 하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정심은 침묵이 두려웠다. 또 떠난다면 아예 희망을 잃을 것 같았다. 목이 마르는 두 번의 기다림에 얼마나 가슴이 탔던가. 또 떠난다면 머리를 풀어 헤치고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리며 막아 나서고 싶었다.

남편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여보, 내가 없어도 당신이랑 아이들이랑 앓지 말고 늘 행복했으면 좋겠소. 오늘처럼 웃고 떠들며 늘 이렇게 살아줬으면 좋겠소. 출장길 멀리에서라도 당신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소.”

그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떠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 하는 말이었다.

정심은 자기도 모르게 버럭 화를 냈다.

“더는 당신 없이 못 살아요. 나랏일은 나랏일이고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요. 우리에게 모든 안전한 생활이 다 담보되어도 당신 없인 아무 소용이 없어요. 당신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에요. 아이들은 나에게 위안은 되겠지만 행복은 아니에요. 난 지금 당신이란 껍데기만 안고 있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요? 당신은 남편이 없는 여자의 설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요?”

정심은 마구 퍼부었다. 남편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대꾸도 못 했다.

운명은 참으로 야속했다. 남편은 끝내 또 집을 나섰다. 남편은 아내의 뱃속에서 세 번째 아기가 태동하고 있음을 알자 또다시 떠나가 버렸다. 남편은 매번 아내의 임신만 지켜본 채 떠나가 버리곤 했다.

정심은 셋째 아기를 낳은 날 대성통곡했다.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하늘을 보며 한탄했다. 셋째를 낳는 날 병원 산부인과에는 남편 대신 당 간부들의 전화가 계속 울렸다. 아기가 집에 돌아오자 당 간부들은 선물을 들고 문안을 왔다. 정심은 하염없이 울었다. 간부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게 서 있다가 돌아갔다.

평양산원
평양산원. /사진=조선의오늘 홈페이지 캡처

내 인생을 살고 싶다


남편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정심은 늘 고독에 잠겼다. 우울감에 지쳐 죽고 싶은 날도 많았다. 그녀는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한 날이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 셋이 태어날 동안 남편과 함께 한 날을 모두 합하면 고작 6개월에 불과했다. 마치 아이 셋을 만들기 위해 남편이 가끔씩 다녀간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는 남편이 영원히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외국에 공작대로 나가 활동하는 사람들은 또 그곳에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우울하기 그지없는 날들이 흘렀다.

시내에는 대남공작대 가족이 많았다. 나라에서는 설날이나 국가적인 명절에 대남공작대 가족들만 특별히 모여 놓고 큰 연회를 베풀곤 했다. 그때마다 모여드는 대남공작대 가족들은 서로 만나 얼굴도 익히게 되고 홀로 남겨진 여인들은 서로의 가슴에 맺힌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몰래 토로하기도 했다.

대남공작대 가족들은 누구보다도 비밀엄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내뱉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었다. 대남공작 활동에 나선 남편들이 외국에서 또 다른 가족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었다.

보지는 못했지만, 그 그림을 상상만 해도 가슴 속에 불이 붙는 것처럼 증오가 이글거렸다. 국가에서 정치적으로 걸고 들지 않는다면 남편이고 뭐고 무조건 배신하고 싶은 생각이 백번도 더 들었다. 아내를 버려두고 어디 가서 새살림을 또 꾸렸을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그것이 설사 국가가 준 임무의 한 부분이라고 해도 개인적으로 용서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었다.

정심은 지쳐버렸다. 10여 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허망하게 기다리기도 싫었다. 야속하게 지나온 수년 세월 동안 속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에 목마르고 갈증이 난 그녀에게 한 남자가 나타났다. 믿음직한 남자였다. 정심은 남편처럼 허울이 좋은 잘생긴 남자가 싫었다. 특이한 직업을 가지고 나랏일을 한다는 남자들은 무조건 싫었다. 이제 더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으리라, 남편이 날 배신한 것처럼 나도 배신하리라 마음먹었다. (계속)

*편집자주
북한 안전서(경찰서) 등지에는 ‘필사원’이 있다. 이들은 사건을 기록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때문에 이들은 북한 당국이 어떻게 사건사고를 처리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데일리NK는 필사원으로 일했던 한 탈북민의 증언을 통해 북한 체제의 속성을 파헤치고자 한다.
다만 일반적 기사체를 고집하기보다 소설적 기법을 사용해 독자들이 사건의 흐름과 북한 주민들의 심경을 보다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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