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주주의의 후퇴?…사실(fact)부터 틀린 것 아십니까?

I.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거(死去)이후, 비록 전체 교수들의 일부이지만 서울대학교 교수 124명을 시작으로 전국의 대학교수들과 멀리 북미 대학교수들, 그리고 종교인과 예술인들이 시국선언을 하였다.

시국선언의 내용들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여 한국의 시민적 자유, 언론의 자유 그리고 경제적 자유를 이명박 정부가 심각하게 훼손하여 1987년 6월 시민이 쟁취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증거로 시국선언문에 열거된 예들의 목록은 길다. 용산참사, 2008년 촛불시위 참가자의 사법처리, MBC-TV PD 등 언론인들의 사법처리 및 집시법의 개정 시도, 그리고 신자유주의 혹은 ‘비즈니스 프렌드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 거론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 실은 이명박 정부의 정치보복이라는 점도 빠지지 않았다.

여기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가세하여 이명박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하고, 한국의 ‘행동하는 양심들’은 ‘지난 50년간 쟁취해온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궐기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호응하듯 좌파 시민단체 및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및 민주노총 등도 시청 앞 광장에서 야간시위를 개최하였고, 국가인권위원회는 한나라당의 집시법 개정안에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고 판단, 국회에 재고를 요청하였다. 나아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예수’에 비유하고, 불교계의 일부 승려들은 ‘국민이 부처’라는 표현으로 노전대통령에 죽음에 대한 국민들의 대대적인 조문물결과 현 정부에 대한 분노를 종교적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거나, “이명박 대통령이 독재를 하고 있다”라는 주장은 정부의 몇몇 정책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정권의 존재의미와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명백한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어떤 시국선언에서도 앞에서 열거한 일련의 사건들이 ‘왜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민주주의 후퇴론’ 혹은 ‘이명박 독재론’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눈에 이런 사건들이 바로 한국민주주의의 후퇴로 비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관적 추측이나 믿음과 객관적 사실과의 괴리는 하늘과 땅의 차이일 수도 있다. 즉 한국민주주의가 정말로 후퇴하고 있는지, 객관적인 시각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앞의 모든 사건들을 다루기보다 지난 몇 년간의 언론의 자유와 관련하여 ‘프리덤하우스(http://www.fremedia.at)’, ‘국경 없는 기자회(http://www.rsf.org)’ 그리고 ‘국제언론인협회(http://www.ipi.org)’ 등의 견해를 살펴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후퇴론’은 과거 정권과 현재 정권의 비교이기 때문이다.

II.

우선 프리덤하우스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자료에 의하면, 현재 한국의 언론자유는 ‘자유로움(free)’, ‘부분적 자유로움(partly free)’, ‘자유롭지 않음(not free)’의 세 등급에서 ‘자유로움’에 해당한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지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전혀 변화가 없으며, 점수는 29점 혹은 30점으로(많을수록 자유롭지 못함),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 중에서 최하위권에 속한다. 등급으로는 66위 전후에서 맴돌고 있다.

다른 한편 국경 없는 기자회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 단체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이명박 정부하에서 언론자유의 침해로 간주된 사건은 3가지로서 (1) MBC PD수첩 명예훼손건과 관련하여 이춘근 PD의 체포 및 그와의 인터뷰(2009.3.25), (2) YTN 노조와 사측과의 합의에 대한 환영의 글(2009.4.2), (3) 아고라의 미네르바 구속(2009.4.20)이 올라와 있다. 주목할 점은 PD수첩과 관련하여 나중에 체포된 다른 PD와 작가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다는 사실이다. 국경없는 기자회처럼 기자들의 연행, 체포, 인신구속에 민감한 단체도 이들의 체포는 더 이상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장기간의 소환불응으로 체포는 되었지만, 검찰 조사 후 곧 석방되었다.

다른 한편 노무현 정부하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한 사건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청주에서 받은 향응과 관련, 검찰이 SBS-TV에 자료를 강제로 수색하려던 시도(2003.8.12), (2) 북한에 풍선을 보내려던 독일의사 폴러첸박사가 북한에 풍선을 보내려던 시도를 강제로 무산시킨 사건(2003.8.26), (3) 자유북한방송을 북한이 비난한 지 3일 만에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북한연구소 건물에서 쫓아낸 것(2004.5.27) (4)시위중 한 대학생이 경찰을 조롱한 죄로 벌금형을 선고 받은 사건(2004.7.23) (5)법원의 판결 없는 정정보도 요구와 보수계열 신문의 시장점유율을 제한한 2005년 언론중재법(2004.11.4, 2005.7.27), (6) 중국 TV 방송이 APEC회의 취재를 금지당한 것(2005.11.17), (7) 삼성비자금 관련 녹취를 공개한 MBC의 이상훈 기자를 사법처리한 사건(2005.12.16), (8) 언론중재법 일부 위헌판결을 환영한다는 글(2006.6.30) 등이다.

김대중 정권 하의 언론자유침해 사례는 이미 오래되어 홈페이지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프리덤 하우스에서는 김대중 정부하에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한 경우로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세무조사가 언급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언론인협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다른 무엇보다도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은 정부의 언론 자유 침해로 “요주의 대상국(watch list)”에 올라가 있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결론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위해 존재하는 국제기관의 자료를 놓고 볼 때, 한국의 언론의 자유가 이명박 정부 하에서 과거보다 더 후퇴하였다는 증거는 찾아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미디어법 개정’은 언급조차 되고 있지 않다. 만일 시국선언문들에 나와 있는 사건들이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증거라면, 김대중․노무현 정권하에서는 이명박 정부 이상으로 언론의 자유가 탄압되었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인상적인 것은 국경 없는 기자회의 홈페이지 첫 화면이다. 현재 북한에 억류되어 재판을 받고, 12년 노동교화형에 처해진 두 미국 여기자를 석방하라는 보수단체의 시위장면사진과 함께 이들을 즉각 석방하라는 구호를 볼 수 있다.

III.

비록 언론의 자유에 한정되었지만,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은 없다. 특히 앞에서 열거한 국제언론기관의 자료를 놓고 보면, 시국선언이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마디로 이념의 잣대로 이명박 정부를 볼 때, 앞에서 열거한 여러 사건들이 민주주의의 후퇴의 증거로 믿어지고, 이러한 집단적 믿음이 곧 바로 사실로 간주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 점은 작년 촛불시위에서도 거의 같은 구조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각각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냉정히 판단하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여러 개를 모아 놓으면 미국산 쇠고기를 거의 독극물 수준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상승작용을 좌파 지식인 및 시민단체는 의도적으로 반복하여 이용하였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론이 광우병 파동과 다른 점은 민주주의의 수준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나름대로 체험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광우병과는 달리 주관적 판단이 깊이 개입하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 후퇴론이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좌파 지식인 및 정치인, 시민단체와 종교인들이 희망하던 바와는 달리 지난 6월 9일 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던 야간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의 수는 작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IV.

다른 한편 한국인 특유의 조기 망각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라면, 민주주의 후퇴론 혹은 민주주의 위기론이 결코 용산참사나 언론인 체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이전에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작년의 촛불시위 초기부터 민주주의 위기론이 대두되었고 직접민주주의가 요구된다고 주장되었다. 한마디로 “촛불이 민주주의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작년 촛불시위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과 행동이다. 그는 2008년 7월 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촛불시위를 “옛날 그리스 아테네에서 있었던 직접 민주주의가 되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 한마디로 말해서 이것은 민주주의 발전의 극점이라고 할까, 최고 정점에 도달한 하나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2009년 1월 1일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의 신년하례를 받으면서, 세 가지 위기론을 내세웠다.

“작년 1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 속에서 살았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 경제, 남북관계의 3대 위기에 처해 있다. 올해 최대 화두는 민주주의이며 인터넷을 통한 지식 습득으로 통치 능력을 가진 국민을 억압으로 다스리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주주의가 큰 도전을 받고 있고 다시 20~30년 역주행하는 것 아닌가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지금 권력 잡고 휘두르는 분들은 우리가 구속되고 사형 언도되고 고문당할 때 뭐했느냐? 독재와 싸운 민주당의 근성이 나타나고 있고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를 처음부터 ‘반민주주의 정부’로 규정하고 투쟁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목표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의 극복일 리는 없다. 차라리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김정일과 합의한 ‘6․15, 10․4 선언’으로 대북정책을 되돌리기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였다. 필요하면 현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고 작년 촛불시위와 같은 대규모 시위를 통하여 식물 상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올해 4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곧이어 제2차 핵실험을 한 후, 북한은 지금까지 그 존재를 부정해왔던 우라늄 농축은 물론 미국에 핵공격을 하겠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정부는 북의 위협에 꿈쩍도 하지 않았고, 대신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하에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강경한 대북제제안이 통과하였다.

다른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미국의 지인들을 총동원하여 2008년 12월 국제 심포지움을 조직하는 등,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오바마 대망론이 김정일의 안하무인격 핵실험과 유엔제재결의안으로 풍비박산이 나자, 다시 한 번 그의 정치인생의 위기가 찾아왔음을 감지하였다. 왜냐하면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면, 그의 햇볕정책은 물론 한국 친북좌파의 국가관, 통일론 및 정체성 등이 송두리째 붕괴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영향을 미쳐 김정일의 탈출구를 뚫어줄 수 있는 곳은 한국 이외에는 없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작년의 촛불시위에서처럼 또다시 식물상태에 빠진다면 유엔의 대북압박 정책공조에 큰 구멍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났다. 가족의 뇌물수수사건과 관련하여 피의자로서 검찰의 조사를 받던 중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나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국민들에게 노 전 대통령의 자살에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 있다는 감정적 판단이 횡행하였다. 바로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등장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명박 독재론’을 들고 나와서 핵과 미사일 그리고 전쟁위협이라는 ‘망치’를 휘두르는 김정일에게 한국정부의 등판에 ‘모루’를 대어주는 것과 다름없는 일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좌파가 이런 망상에 가까운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이들이 21세기의 시대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직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각축장으로서 한반도라는 낡고 낡은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동북아시아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그것은 북한의 강제수용소에서 매일매일 죽음과 싸우고 있는, 자신의 죄명이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는 정치범들과 세습수령체제라는 시대착오적 광기로 인해 도탄에 빠진 북한의 인민을 동북아시아의 국가들이 경제적 협력과 정치적 선린관계를 통하여 하루 빨리 구하는 것이다. 만일 이 점을 통찰한다면, 한반도에서 거악(巨惡)의 존재가 어디에 있으며 시국선언문에 참여한 자들의 분노와 열정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도 분명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