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역사에서 6월만큼 잔인하고 아픈 기억의 달이 또 있을까? 호국보훈의 달인 6월하면 먼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 떠올린다. 또한 전쟁을 넘어 평화로 가자며 남북한 두 정상이 만났던 6·15 남북공동선언도 있다. 분단시대를 사는 내내 6월은 전쟁과 평화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6·15공동선언 20주년을 불과 이틀 앞두고 김여정은 “남조선(한국)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며 군사적 도발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지난 6월 4일 김여정의 담화 하나로 시작된 남북 간 대결구도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평양을 비롯한 전국단위에서 벌어지는 항의군중집회에는 <총폭탄> 구호가 많이 등장한다. <천만이 총폭탄 되리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결사옹위, 정면돌파를 외치고 있다는 조선중앙방송 보도도 전해진다. 이 노래는 “그 어떤 압력도 봉쇄도 우리를 놀래지 못하리 강철의 령장이 계시어 배심 든든하다. 우리는 빈말 안 한다. 천만이 총폭탄 되리라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이다.
한쪽에서는 아직도 나 홀로 평화를 외치며 6·15 공동선언 20주년 기념행사나 개최하고 있지만, 북한당국은 전혀 다른 길을 모색 중이다. 현재 북한 내부 상황을 보면 정말 빈말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16일 인민군 총참모부 공개보도처럼 반드시 군사적 행동을 취하고 정권의 결연한 의지를 주민들에게 보여주려 할 것이다. 그들이 이미 언급했듯이 현 정부와의 합의 성과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9·19 군사합의 폐기를 위해 서해5도 지역에 대한 군사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군사력을 동원한 개성공단 철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남북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만약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경우 우리 정부는 그 책임을 대북 전단 단체에게 돌릴 것이다. 지금도 저렇게 북한이 강경책을 펴는 게 우리의 책임이 크다느니,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현재 상황은 단순히 대북 전단이 아니라 북한 내부 정세상 공공의 적(敵)이 필요한 데서 기인한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대북 전단 단체 죽이기에만 혈안이다.
북한의 눈치나 보는 굴종의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전환할 시점이다. 국내에 팬클럽이 만들어졌다며 평화의 메신저로 추켜세우던 바로 그 인물이, 이제 군사도발을 경고하는 전장의 선봉장이 되어 나타났다.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평화도 대결도 마음대로 조장하는 가면 뒤 모습을 제대로 인식할 때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시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북한 정권을 보며 북중 국경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자강도 만포시에 위치한 어느 공장에는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라는 큼직한 구호와 함께 “군자리로동계급의 정신으로 살며 싸우자!”라는 선전·선동 문구가 눈에 띄었다.
군자리는 평안남도 성천군에 있는 산골마을로, 6·25전쟁 시기 무기생산을 위한 지하병기공장이 있었다. 김일성은 평양 평천구역에 있었던 지상병기공장을 그곳으로 옮겨 전시 지하병기공장을 건설하도록 지시했다. 당시 미군의 공습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지만, 군자리로 이전된 지하병기공장은 중단 없이 무기생산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6·25전쟁 당시 초인적인 힘으로 무기증산을 이룬 노동자들의 정신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군자리노동자정신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70년이 지났지만 한쪽에서는 아직도 전쟁 시기를 살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쟁을 절대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 정권의 이득과 돈벌이를 위해 분단을 악용하는 건 언제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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