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삭제와 인공기 제정을 통해 본 북한의 역사왜곡

중세시대엔 ‘국가는 무조건 국기가 있어야 한다’는 개념은 없었다. 유럽에서 국가에 국기가 있던 시대는 18세기부터였는데, 동아시아 경우엔 19세기 중기까지 국기는 없었다. 한국의 국기인 ‘태극기’는 1883년에 공식적으로 채택됐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태극기를 폐지, 조선총독부 문장이나 경성부 상징을 사용했지만, 전체 조선을 위한 새로운 것을 만들지는 않았다. 즉, 반일 세력은 구(舊) 대한제국의 국기였던 태극기를 사용했고, 친일 세력은 일본 국기인 일장기만 사용할 수 있었다.


소련이 한반도 북쪽을 점령하고 새로운 공산주의 국가 건설을 준비한 것 자체가 태극기 폐지 운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권에서 폴란드, 쿠바, 체코슬로바키아와 같이 전통국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국가도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공산주의 상징인 낫과 망치를 붙이곤 했다. 반면 러시아의 전통적인 삼색기를 폐지시킨 소련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국기를 제정한 나라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과 북베트남이었다.


어쨌든 광복 이후 남북은 갈라졌지만 한반도에서는 태극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한반도에 2개의 국가가 건국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소련은 북한 국기 상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고려인 출신 소련 제25군의 통역가이었던 박일의 이야기다.


“1947년 여름에 어느 날 레베데프 소장은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 김두봉을 불렀고 오래지 않아 북조선에서도 국가를 세워야 할 테니 국기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김두봉에게 태극기의 내력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고, 조선이 새 국기가 필요한지 김두봉의 의견을 물어봤다. 전통적인 교육을 받은 김두봉은 구체적으로 음양의 상징인 태극 그리고 사괘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며 공산주의 조선의 국기로 태극기를 그대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런데 소련 장군 입장에서 ‘태극’ ‘음양’ ‘사괘’ 등의 개념은 ‘동아시아 봉건주의 사상’에 불과하였다. 레베데프는 ‘그만’이라고 했고, 옆에 있던 소련군 대령은 ‘이건 전설과 같은 이야기’라고 하고 코웃음을 쳤다. 바로 이날에 태극기가 폐지될 운명이 결정된 것 같다.”


몇 달이 지나 소련 제25군 제7호부에 모스크바에서 전화가 왔다. 박일은 전화를 받아 상대방이 러시아말로 설명하는 인공기(人共旗, 즉 인민공화국 깃발) 도안을 썼고 조선말로 번역했다. 유감스럽게도, 인공기의 제작자는 누구였는지 알 수 없다.


태극기는 이후에도 북쪽에서 몇 달 동안 사용했다. 1948년 4월 김구가 김일성을 만나러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태극기 아래서 연설했다. 그러나 1948년 여름,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건국 준비가 급속화돼, 결국에는 1948년 7월 10일 북조선인민회의는 태극기를 폐지시키면서 새로운 국기로 인공기를 제정했다. 김두봉은 연단 뒤에 있던 태극기를 끌어내릴 것을 지시했고 대신 인공기를 게양시켰다. 김일성을 비롯한 모든 참가자들은 박수를 쳤다.


태극기가 폐지된 후 열흘이 지나 김두봉은 ‘신국기의 제정과 태극기의 폐지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하고 같은 해 8월 같은 제목으로 책을 발표했다.


이 책은 7개의 목차로 되어 있다. 


1. 신국기는 전도양양한 신흥국가의 상징
2. 신국기는 부강화평한 민주일가의 상징
3. 신국기는 광명발전할 행복한 국가의 상징
4. 태극기는 새 민주국가의 성질에 위반된다
5. 태극기는 그 근거되는 주환의 ‘학설’이 비과학적이며 미신적이다
6. 태극기는 처음부터 일정한 의의와 표준이 없이 제정된 것이다
7. 태극기는 무용한 난해로 인한 각양각색의 불통일된 폐가 있다.


책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첫째, 김일성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둘째, 책은 태극기의 비난을 위해 썼지만, 태극기의 기원 및 구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서술하고 있다. 필자는 책을 읽어본 후 혹시 원래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하는 것을 지지했던 김두봉이 내면의 고통을 겪은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됐다.


어쨌든 1948년 7월 이후 북한에서 태극기가 사라졌고, 원래 사용했던 것에 대한 언급도 줄어들었다. 또한 1967년 유일사상체제 도입 이후 북한에서 발급된 책에서 태극기에 대한 역사 왜곡이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됐다. 이때부터 일본을 물리친 세력은 연합국이 아닌 김일성의 ‘조선인민혁명군’이었다는 주장과 함께, 깃발을 제정한 사람도 김일성이었다고 책에서 서술하게 된 것이다.


다음은 2013년 8월 8일 ‘노동신문’에 실린 관련 내용.


공화국깃발!
바로 여기에 우리 조국의 영광스러운 투쟁력사와 승리와 번영의 한길로만 줄달음칠 아름다운 미래가 다 비껴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건국의 그 나날 우리의 국기에 담아야 할 사상적 내용과 그 표현방도까지 가르쳐주시며 공화국 국기를 훌륭히 완성시켜주시던 어버이 수령님의 위대한 모습을.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국기의 붉은색은 항일 선열들과 조선의 애국자들이 흘린 피와 공화국의 주위에 굳게 뭉친 우리 인민의 불패의 위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된다. 국기의 흰색은 우리나라가 한강토에서 하나의 혈통과 언어, 문화를 가지고 결백하게 살아온 단일민족 국가라는 것을 상징하며 푸른색은 민주주의 새 사회건설을 위하여 투쟁하는 우리 인민의 씩씩한 모습과 세계의 평화와 진보를 위하여 투쟁하는 조선인민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김일성 어버이 수령님’은 그런 언급을 하지 않았고 소련 당국도 그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볼 때 북한의 역사 왜곡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또한 북한은 서적과 신문 등에서 사진을 통한 역사 왜곡도 심각한 수준이다. 왜곡의 형태는 다음 3가지 유형으로 구별할 수 있다:


1) 박헌영, 리승엽 등 숙청된 인사의 모습 삭제
2) 스탈린이나 말렌코프 등 장교들의 초상화 등을 삭제하면서 소련 주둔의 증거 삭제
3) 태극기 삭제


이 3가지 유형 중 북한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아무래도 정통성 확보를 위한 태극기 삭제가 아닐까 싶다. 사진에서 숙청된 간부가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면 “당시 우리 당은 놈의 정체를 몰랐다”라고 할 수 있고, 소련 장교가 나와도 “당시 조선인민혁명군을 돕기 위해 항일전쟁에 참전한 소련 군대의 모습”이라고 둘러댈 수 있지만 태극기 밑에 연설을 하는 김일성의 모습은 북한에서 주민들에게 선전하는 역사관으론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이 때문에 현대 북한 책에서 태극기를 볼 수 없다. 다음은 필자가 찾은 자료인데, 왼쪽은 실제 역사를 담은 것이고, 오른쪽은 북한 당국에 의한 왜곡된 사진이다.









▲1946년 6월 북한 노동당 창건 행사 때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자료사진(左)과 북한에서 발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8-1958) 책 자료(右)를 보면 태극기가 삭제돼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