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구원과 ‘법대로’ 무엇이 먼저냐?

▲ 외교공관 진입 탈북자

탈북자와 브로커 사이의 남한입국을 담보로 한 계약이 무효라는 법원판결이 나옴에 따라 탈북자 입국에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8일 서울서부지법 민사1부(김건수 부장판사)는 브로커 홍모씨가 탈북자 A(45.여)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해 약자의 폭리를 취하는 행위이므로 A씨와 홍씨 사이의 약정은 불공정 법률행위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에 앞서 홍모씨는 “입국비용으로 500만원을 주겠다는 약정을 이행하라”며 탈북자 A씨가 중국에서 맺은 계약에 대해 대여금 청구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탈북자 A씨는 이에 항소하였고, 이번에 재판부가 1심을 깨고 탈북자 A씨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이같은 브로커-재중 탈북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오래 전부터 있어온 일이다. 또 중국체류 탈북자들과 브로커 사이에 입국알선을 담보로 체결한 ‘계약서’가 ‘불공정 법률행위’로 무효라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판결은 민법 제104조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조항에 따라 무효로 처리되었다. 법적인 근거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탈북 브로커 행위 자체가 ‘상대방의 궁박, 무경험을 악용해 폭리를 취하는 행위’로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브로커’ 중에서도 높은 가격을 책정해서 돈을 뜯어 내는 ‘악덕 브로커’가 있는 반면, 실제로 약간의 이익만 남기고 탈북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뛰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돈을 챙기려는 브로커가 아니라 실제 ‘탈북 도우미’로 볼 수 있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탈북을 돕는 게 목적인 사람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탈북-입국과정에 들어가는 실비도 채 받지 못하고 자기 돈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이번 판결이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출시킬 수 있다. 우선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무사히 입국한 이후에 ‘계약서’의 전면 무효화를 들고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브로커들이 탈북자를 입국시키는 데 들어간 실제 비용을 회수하기 어렵다. 또 이는 브로커들의 활동력을 떨어뜨려 탈북자들의 입국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브로커 활동 이제 어려워져

문제의 논점은 브로커가 탈북자의 ‘궁박과 경솔함을 악용한 죄’에 속하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 등 제3국을 떠돌고 있는 탈북자들의 입국은 대부분 브로커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정보에 취약한 탈북자들은 스스로 한국 정부의 보호구역 내에 들어가거나 제3국으로 탈출하기 어렵다. 이들이 보호구역 내에 들어갈 때까지는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들을 인도하는 일을 대부분 브로커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정부 요원들이 탈북자들을 보호구역 내로 인도할 수 있다면 브로커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브로커의 활동이 정부가 할일을 대신해 주는 측면이 있다. 요즘 정부가 하는 일은 탈북자들이 중국내 한국공관이나 제3국 해외공관, 종교단체 보호구역 안에 진입한 후에야 그들의 입국을 처리해준다.

중국과 해외 탈북자들은 대부분 돈이 없어 남한 입국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 때문에 입국 후 받게 될 정착지원금을 담보로 해서 브로커에게 탈북-입국에 따른 비용을 상환해준다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들어오는 실정이다.

인천거주 브로커 한정수(가명)씨는 “브로커들도 ‘계약서’ 하나를 담보로 해서 무일푼인 탈북자 한 명을 데려오는 데 비용이 많이 들 뿐더러 위험부담도 크다”고 털어 놓는다.

한 씨는 “옌지(延吉)에서 태국까지 탈북자 한 사람당 숙식비용(중국 인민폐 1천원)과 안전비용(5백원), 교통비용(1천원), 국경통과비용(5천원), 현지브로커 이용비(3천원)을 지출하면 실제비용은 인민폐 1만원가량 든다”며 “거기에 방콕까지의 안전루트 확보를 위해 내가 쓴 여행 비용까지 합산하면 한 사람당 한화로 200만원 이상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 돈을 내가 먼저 은행에서 꾸어 시작하게 된다. 대출이자가 높기 때문에 당연히 ‘계약서’에는 300만원씩 하는 태국행의 경우, 400~500만원으로 작성하게 된다. 그러나 2005년부터 초기 정착금이 300만원으로 줄어들어 아무리 500만원짜리 ‘계약서’를 작성해봤자 ‘계약서’의 절반도 못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계약서’의 액수가 실제비용보다 높은 또 다른 이유로 한 씨는 “탈북자들이 중국에서는 우는 소리를 하며 응했다가 입국해서는 값을 낮추자고 하기 때문에 먼저 높게 책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나중에 받을 정착지원금 담보로 무일푼 탈북자와 계약

경기도 분당거주 탈북 브로커 김현준(가명)씨는 “계약서는 입국한 다음 돈을 갚겠다는 일종의 ‘담보서’다. 무일푼인 탈북자를 담보도 없이 한국에 입국시킬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법원이 ‘계약서’를 무효처리하면 중국내 탈북자들을 구원하기가 앞으로 어렵게 된다”고 덧붙였다.

부산거주 브로커 양수진(가명)씨도 “몽골까지 실비용은 1인당 인민폐 1만원(한화 125만원)가량 든다. 그러나 실비용도 안 주려고 숨어 다니는 탈북자들이 있어 오히려 손해 보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 놓는다. 실제 ‘계약서’에 책정된대로 돈을 받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

양씨는 “하나원을 졸업하고 전국에 퍼져간 탈북자의 행방을 찾아 신발이 닳도록 다닌 적도 있다”며 “2005년부터 정착금이 줄어들면서 실비용도 건지기 어려워 일을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양씨는 “지난해 나도 ‘계약서’를 들고 법원에 갔지만, 법원도 피고와 원고의 합의에 맡긴다”고 말했다. 법원에서도 브로커의 지출비용을 감안해 탈북자에게 “지옥에서 천당으로 인생전환 시켜주었기 때문에 실비용을 갚는 것은 도리”라고 합의하도록 조치한 바 있다고 양씨는 말했다.

정부 할일 대신…재중 탈북자 손해볼 수도

한편 탈북자들도 적당한 액수의 입국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이 많다.

브로커의 도움으로 입국한 탈북자 김경석(가명)씨는 “중국에 있을 때는 돈 천만원이 아깝지 않았다. 일단 공안에 붙들려 북송되지 않기 위해 부르는대로 적어 놓는다. 그러나 하나원을 거쳐 나오면서 다른 탈북자들과 비교해 실비용만 주겠다고 생각을 고쳐먹는다”고 말했다.

2006년 3월 입국한 서울 강서구 거주 탈북자 김모(여)씨도 “하나원을 나서자 마자 ‘계약서’를 들고 브로커가 찾아 왔다. 그러나 초기 정착금 300만원을 다 주고 나면 뭘 먹고 살겠는가, 그래서 실비용 150만원만 먼저 주고 지금은 한달에 30만원씩 벌어서 갚고 있다”고 말했다.

브로커의 필요성에 대해 김씨는 “나는 중국에서 브로커 선을 잡기 위해 무지 노력했다.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한국행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며 “어려울때 도와주었는데, 양심상 돈을 적당히 갚는 것은 옳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이번 홍모씨-A씨의 판결 경우 실비용도 지불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8일 서울서부지법 민사1부가 민법 제104조를 적용하여 계약서를 무효로 판결한 것은 ‘법대로’ 정신에는 맞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실상과 재중 탈북자의 아슬아슬한 생활, 그리고 한국정부의 탈북자에 대한 무관심 등을 감안하면 브로커는 북한주민 구원 차원에서 매우 필요한 존재다. 아울러 중국에서의 활동도 위험하다.

따라서 이 문제를 법조항의 문구에만 집착할 경우 결국 손해보는 사람은 숨어 사는 재중 탈북자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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