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3일 캐슬린 스티븐스(Catherine Stevens) 주한 미국 대사 내정자의 상원 인준이 보류되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외국에 나가는 대사의 경우 상원의 인준을 받게 되어 있다. 상원에서 한 사람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인준 절차가 보류된다.
왜 캐슬린의 대사 인준이 보류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미 국무부, 그 중에서도 캐슬린이 속해 있는 동아시아국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직무 유기를 했다는 이유에서이다.
캐슬린의 대사 인준 보류를 주도한 사람은 미국 상원의원인 샘 브라운백이다. 브라운백 상원의원은 미 국무부 동아시아국이 2004년 통과된 북한인권법 이행과 예산 집행을 방해하고 좌절시켰다고 지적했다(our State Department, particularly its East Asia Bureau, of which the President’s current nominee as Ambassador to South Korea was Deputy Assistant Secretary, has stalled and frustrated the funding and implementation of that (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또 대사 지명자인 캐슬린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준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그렇다. 2004년에 통과된 북한인권법은 사실 말 뿐이었지 제대로 집행된 것이 거의 없다. 북한인권법은 5년 한시법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 내용은 매년 탈북자 지원 2000만$, 북한인권단체 지원 200만$, 그리고 대북 라디오 방송국 지원 200만$이다. 5년 동안 매년 2,400만$을 집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상 이 법에 입각해 집행된 예산은 단 1달러도 없다. 이 법은 껍데기만 있었지 실속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북한인권법이 표류한 결정적 이유는 바로 북핵협상을 주도한 미 국무부 동아시아국의 소극적 입장 때문이었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책임자로 있는 동아시아국은 북한 인권을 제기하면 북한을 자극하여 미-북 핵 협상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북한인권법을 사실상 휴지 조각으로 만든 것이다.
물론 미국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과거 한국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부시 정부는 대북방송을 지원했다. 원래 2시간이던 VOA(미국의 소리), RFA(자유아시아방송)의 대북방송 시간을 각각 5시간으로 늘렸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뒤 4년이 지나서야 집행된 것이다. 또 민간대북방송 지원도 이루어졌긴 했지만 이는 미 국무부를 통하지 않고 미국 의회 예산을 통한 것이었다. 북한 인권 단체에 대한 재정 지원도 일부 있기는 했지만 이 지원은 북한인권법 통과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증액된 예산은 거의 없었다.
미 국무부는 의회와 NGO들의 압력으로 마지 못해 2006년부터 탈북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007까지 37명을 받아 들였다. 이에 반해 북한과 별 이해 관계가 없는 영국은 2006년까지 60명, 독일은 135명 망명을 허가했다. 그 뿐 아니라 미 국무부는 북한인권특사를 뽑아 놓고도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다. 예산을 제대로 배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인권 특사는 파트 타임으로 근무할 수밖에 없었고 활동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미국이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한 것 중에 미 국무부가 주도한 것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브라운백 상원 의원이 동아시아국 출신인 캐슬린 주한 미 대사 지명자의 인준을 보류한 데에는 이같은 배경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덧 북한인권법 시한인 5년이 끝나가고 있다. 2008년 말이면 북한인권법이 만료된다. 이에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는 4월 30일 북한인권법을 2012년까지 연장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추가된 내용은 북한인권 단체 매년 지원금을 200만$에서 400만$로 증액하고, 인권 특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 등이다.
하지만 법안도 연장되어야겠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법을 집행하려는 의지이다. 2004년 법안처럼 통과는 시켜놓고 사실상 예산 등을 집행을 하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는 한국의 이명박 정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이전부터 줄곧 북한인권은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인류 보편 가치로서 남북 관계에 상관없이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취임한 지 두 달이 넘어가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뚜렷한 북한 인권 문제 대응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북한 인권 주무 부서인 통일부의 2008년 업무 계획에도 북한 인권 문제는 최하위 순위로 배치되어 있고 구체적 내용도 없다. 벌써부터 이명박 정부의 북한 인권 문제 발언은 단지 립 서비스뿐이지 않을까 하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북한 인권 문제 대응이 단지 말로만 끝날 조짐이 보일 경우 우리 국민은 이 정부를 준열히 심판할 것이다. 마치 미국 의회가 캐슬린 대사 지명자의 인준을 보류한 것처럼 우리 국민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를 보류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한-미 전략 동맹 추진도 심각한 장애에 봉착할 것이다. 인권 문제는 한-미 전략 동맹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