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관계를 야금야금 경색으로 몰고 가면서 끈질기게 협박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 화났어!”에서, “우리 정말 화났어!!”로, 그리고 “우리 정말 아주 화났어!!!”로 관심을 끌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혹자는 “개성공단을 걷어치우라!”는 북한의 자해성 협박에 대해서 ‘심사숙고’ 혹은 ‘개성공단을 통한 사상적 오염과 외화벌이 간에 손익관계를 나름대로 열심히 계산을 한 결과 체제유지를 선택했다’는 추측을 하고 있고, 또 그런 추측을 확인해주는 북쪽 당 간부와의 인터뷰 기사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만일 개성공단이 외화벌이보다 사상적 오염문제를 더 심각하게 야기하여 체제위협의 요소가 되었다면, 북한이 지난 몇 개월 이렇게 오랫동안 뜸을 들이며 협박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냥 걷어치우는 것이다. 북한정권이 안하무인의 행태를 보일 때 언제 이유가 모자란 적이 있었는가? 금강산에서 산책 중의 민간인 여성관광객을 조준 살해하고서도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는 집단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은 김대중-노무현 친북정권의 “우리민족끼리” 노선이 아니라, “비핵, 개방 3000”이라는 조건부 대북지원정책을 내세우고,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이 조건을 만족시킬 것을, 아니 최소한 이 조건에 대하여 논의할 자세를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이 점은 노동신문에 나온 그간의 각종 ‘론평’들만 보아도 이론(異論)의 여지없이 너무나 명백하다.
작년 대선기간 중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이 제안되었을 때부터, 북한을 오래 관찰해온 전문가들은 북한이 “비핵, 개방”을 하지 않을 경우의 대안이 무엇인지 걱정을 했다. 왜냐하면, 북한은 ‘비핵, 개방’을 ‘반민족, 친외세’로 몰아갈 것이라는 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이명박 정부가 북한과 남한의 친북세력이 합작하여 남북관계에서 불안감을 조성하며 협박공세를 할 때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을 한 것이다.
결국 민주당의 대변인이라는 자의 입에서 북한에 전단을 보내는 인권단체를 “매국단체”라고 욕하는 사변이 발생했다. 명색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는 자의 행태가 이렇다. 이런 수준이라면 일제시대 때 항일투쟁단체를 매국노라고 비난한 친일파도 무덤에서 돌아누울 정도다.
왜냐하면 무덤속의 친일파들은 적어도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그랬다”고 곡언(曲言) 할 수 있겠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면책특권을 구비한 국회의원의 발언은 “진심”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자와는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하며, 화병이 안 걸리면서도 ‘낮은 단계의’ 인격을 제압하는 방법은 우리 모두 매국노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과 남쪽의 ‘수령체제 만수무강파’들이 합동작전으로 이명박 정부를 샌드위치 신세로 몰아 부칠 때, 어찌 민주당, 민노당의 ‘낮은 단계 대변인들의 연방’에만 그치겠는가? 결국 DJ가 무대에 안 나올 수없는 것이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에 의하면 DJ는 “현재 남북문제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북한에 대해서도 알고, 북한이 신뢰하고 수용할 수 있는 인물, 국제적 신망을 가진 인물, 국제적으로도 남북문제의 최고 전문가이며 네트워크도 가장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북한전문가”(?) DJ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의도적으로 파탄내려하고 있다”면서,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북미관계가 진전되고, 그렇게 되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DJ의 머릿속에 있는 한국, 미국, 북한의 삼각관계에 의하면 아마도 북한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한국과 미국이 구애라도 하는 것이 정상인 듯 말하고 있다. 이런 수준으로 햇볕정책을 만들었으니 그 결과가 참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DJ의 처방은, 아마도 촛불시위 때처럼, “민노당과 민주당이 굳건히 손잡고 시민단체 등과 광범위한 민주연합을 결성, 역주행을 저지하는 투쟁을 한다면 성공할 것”이라는 ‘종북주의 연합 만사해결론’이다.
남남갈등은 햇볕정책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다. DJ가 햇볕정책이라는 상식 이하의 대북정책을 제안했을 때, 김정일은 2년간이나 그 진정성을 시험했다. 무엇을 시험했겠는가? 한마디로 독 발린 사과인지 아닌지를, 즉 정말로 북을 개방시킬 의향인지를 시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DJ는 햇볕정책을 통해 얻으려는 공식적인 목표가 “햇볕을 통해 북한의 외투를 벗긴다”는, 즉 개방에 있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DJ의 햇볕정책의 진정한 목적이 개방이 아니라는 결론을 분명히 내렸다. 즉 개방은 한국국민을 호도하기 위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노동신문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을 “우리민족끼리” 정책으로 바꿔 부르면서 극찬하고 있고,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을 “그 무슨 개혁, 개방이라는 망발”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한마디로 햇볕정책은 북한에 의해서 절대 ‘북한개방정책’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햇볕정책에서 남은 것은 햇볕이라는 ‘뇌물’과 ‘공물(供物)’ 이외에는 없다. 햇볕정책 비판자들이 “퍼주기”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물론 뇌물과 공물의 반대급부가 있기는 있다. 무엇인가? 김대중-김정일회담과 노벨평화상 이외에도 한국이 다른 공물을 바칠 수 있는 기회를 ‘장군님’이 하사했다. 그 중 하나가 개성공단이다. 다만 이 공물은 더 이상 북한의 개혁도 개방도 아닌, 또 북한인권개선도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도 아닌, 그냥 ‘남북화해협력의 상징’이라는 ‘정서적 만족물’과 ‘북핵 개발’로 한국국민에게 돌아왔다.
희한한 정책이었다. 비록 처음부터 허구였지만, 북한을 개혁, 개방하겠다는 것으로 시작해서, 퍼주기 자체가 한국국민에게 정서적 만족을 준다는 것으로, 그리고 퍼주지 않으면 북한이 진노하며, 북한이 화를 내면 한국국민에게 정서적 불안을 가져오기 때문에 계속 북한에 퍼주는 것이 애국이요, 이것을 반대하는 자는 매국노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할수록 더욱 공물상납의 애국적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햇볕정책의 논리다.
이런 점에서 햇볕정책 지지자들이 북한의 핵보유를 “이유 있다”고 이해할 만한 논리적 구조가 있다. 왜냐하면 퍼주기라는 ‘애국적 행동’을 하지 않으면 ‘핵보유국’ 북한이 화를 내고, 그것이 한국국민의 정서불안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퍼주기를 비판하면 “전쟁하자는 것이냐?”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 도대체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DJ는 민주당과 민노당과 시민단체가 연합하여 촛불시위처럼 ‘광범위한’ 대정부 투쟁에 나서라는 독전(督戰)을 시작했다. 그 목표는 이명박 정부의 “개혁,개방”요구를 철회시켜 북한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퍼갈 수 있는 ‘정서적 구조’를 한국에 재건하는 데에 있다.
개성공단 철수협박은 바로 이 대어잡기의 미끼에 해당할 뿐이다. 참치 잡기 위해서 꽁치를 미끼로 쓰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북한은 2012년 김일성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를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로 공언하고 있다. 그 핵심은 “남조선을 뜯어서 잘 살아보세!”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전선을 정리해야 한다. 우선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불안을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요체는 세력규합에 있다. 당 안이건 당 밖이건 자유민주주의를 공동의 믿음으로 갖고 있는 세력의 힘을 하나로 뭉쳐야 한다. 왜냐하면 북과 남은 모루와 망치식 동시 공격으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두들겨 패겠다는 것이고, 이럴 때의 전략은 북과 남의 ‘수령주의 만수무강파’를 역으로 엮어서 주저앉히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신념의 공동전선이 필수적이다. 자질구레한 구원(舊怨)은 잊어야 한다.
다행히 시간은 자유민주주의 전선에 있다. 김정일의 시간은 이미 기울기 시작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북한당국에게 한 마디: 이제 수령의 건강한 사진은 충분히 보았으니, ‘유엔특사 DJ’를 받아들여 수령과 직접 면담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옛 정을 생각해 병문안이라도 주선하도록).
또 이럴 때 통일부는 통일정책을 담당하는 부처인지 아니면 ‘고압가스관리공단’인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북한에 합법적으로 전단을 보내는 힘없는 북한인권단체를 고압가스관리규정 위반으로 걸고 넘어지려면, 통일부 간판을 떼는 것이 옳다.
지금 통일부가 해야 할 일은 그런 소소한 일이 아니다. 이번에 이 대통령이 통일한국의 체제를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확인 했을 때, 북한은 발작적으로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북한정권은 조평통의 “자유민주주의통일이 최후목표” 발언 비난이라는 성명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정의했다:
“까마귀 열 두번 울어도 까욱 소리 뿐이라고 리명박 역도가 제 집안이든 밖에 나가서든 동족을 모해하는 소리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리명박 역도가 떠벌인 ‘자유민주주의체제’라는 것은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식민지파쑈 통치체제이고 그 ‘체제하에서 통일’이란 다름 아닌 망상적인 ‘흡수통일’이며 ‘최후목표’란 바로 북침전쟁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조평통의 비난을 북한이 의례하는 습관성 발작으로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북한정권은 6.15와 10.4 선언에 의한 통일이 “우리민족끼리”의 통일이지, 결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통일부는 통일정책의 담당부처로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통일부는 헌법도 대통령도 분명하게 밝힌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의 당위성을 천명함과 동시에, DJ, 민주당, 민노당과 이들과 연합하겠다는 시민단체들에게도 이 점을 분명히 밝힐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야 할 체제가 자유민주주의인지, 아니면 전체주의인지를 밝히는 진실로 중대한 일이다.
또 중요한 점은 6.15와 10.4선언에 들어있는 통일방안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인지 아닌지를 통일부가 확실히 유권해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북한의 주장과는 반대로 양 선언에 의해서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 가능하다면 북한의 주장을 조목조목 논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북한이 주장하는 바가 실제로 옳다면 이 두 선언에 의한 통일을 한국정부로서는 당연히 부정해야 한다. 이 점은 논리적 당위로서 회색과 중간색은 있을 수 없으며, 통일정책 담당부처 통일부 역시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