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순은 진실 바꾸려 유족까지 이용하는가?

1986년 7월, MBC 한 기자가 속울음을 삼켰습니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취재했던 최문순 기자는 그 취재결과를 국민에게 전하지 못했습니다. 서슬퍼런 5공 군사독재의 보도지침을 넘어서기에는 한 청년기자의 펜은 너무도 갸날펐습니다.


‘오늘 오후 4시 검찰이 발표한 조사결과 내용만 보도할 것’ ‘발표 외에 독자적인 취재보도 내용 불가’ 등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진 보도지침에 의해 최문순을 포함한 기자들의 양심은 능욕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나는 기자가 아니었다’며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삭였을 최문순. 그는 속울음과 부끄러움을 안은 채 언론민주화의 책무를 스스로에게 부여했습니다.
 
그런 최문순을 한 때 나는 평가했고, 북한인권 실현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로도 나는 그의 초심 자체를 의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MBC 사장 임기를 마치자 마자 특정 정당으로 운신했을 때에도, 그리고 사장 시절 했던 이야기와 의원이 된 이후 미디어 법에 대한 발언이 180도 달라졌을 때에도 그의 초심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갈구하던 기자 최문순은 2010년 5월 27일 죽었습니다. 피눈물로 응어리진 진실에 최문순 스스로 테러를 가했습니다. 어떤 억압이나 위협에 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선거를 이기기 위해서 그는 진실과 청년기자시절의 속울음을 배신했습니다.
 
5월 27일 그는 자식과 형제를 잃고 비통에 잠겨있는 천안함 유족들을 불러내었습니다. 천안함 침몰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고 합니다. 그날 자리에 참석했던 유가족 중 한 분은 “최 의원이 인터넷 같은 데서 도는 괴담을 죄다 끌어와 가족들의 확인을 받으려는 것” 같았고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 최 의원이 가족들을 ‘떠보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의 품속에는 녹음기가 작동되고 있었고, 유가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녹음되고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가족을 잃은 피해자를 찾아가 말꼬투리를 잡은 이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비밀 녹음기를 작동시켰다는 설명 외에 그의 행동을 다르게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를 찾아가 몰래 녹음기를 감추고 이것저것 물어보며 진실을 반전시켜보려는 한 국회의원이 있었다면 우리가 그를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해야 하나요? 이 저주스러운 상상 속에 실재하는 최문순 의원을 떠올리며 나의 감정을 다스리기가 어렵습니다.
 
나라의 안보야 어떻게 되던 말든, 피해자 가족의 슬픔이야 하늘에 닿던 말든, 그저 표계산이나 하며 진실을 반전시켜보려는 한 정치꾼이 아름다웠던 청년 기자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결국 살인자의 편에 서서 말이지요.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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