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관님, 북한인권은 정면으로 다뤄야 합니다”

▲ 식량을 하역하는 북한 근로자 <사진:연합>

정동영 장관의 북한 인권문제 인식에 대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심한 식량난을 체험해본 탈북자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정장관은 27일 국회 통외통위에 출석, “식량지원이 북한 인권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정장관의 언급은 인권문제 중에서도 먹고사는 생존문제가 가장 우선하기 때문에 식량지원이 중요하다는 취지였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대북 식량지원이 북한을 대화마당으로 유도하고, 향후 장관급회담을 비롯한 회담의 정례화를 위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식량지원이 북한 인권개선에 실질적 도움이 되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그러나 실상은 그게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남조선 쌀은 구경도 못했다’

‘북한인권문제’라고 할 때 인권을 개선해야 할 대상은 북한주민들이다. 즉 인권문제의 기본인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대상이 북한주민인 것이다. 따라서 지원된 쌀은 당연히 굶주리는 주민들이 받아야 정확히 주인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원식량은 북한의 주민에게 돌아가는 게 아니다. 그 식량은 북한의 특정 권력계층이나 김정일의 독재체제 유지를 위해 복무하는 독재기관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먹는다. 독재를 위해 복무하는 권력기관은 북한 주민의 인권이나 생존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금도 많은 주민들은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먹고사는 문제에서 단 하루라도 해방되고 싶어 한다. 주민들은 하루빨리 자신을 해방시켜줄 국제사회와 남한의 지원을 애타게 바라고 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전쟁이나 터져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다.

탈북한 주민들도 지원미를 장마당에서 비싼 값을 주고 사먹어 보았을 뿐, 공짜로 쌀을 먹어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것이 지원식량 분배의 실상이다.

그러면, 대북 지원식량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떻게 분배되는지 예를 들어 알아보자.

군대와 당에 배급, 그 뒤에는 장마당으로

남한에서 지원되는 쌀이 남포항에 들어왔다고 하자. 먼저 김정일의 비준을 받고 김정일의 지시를 거쳐 지원대상들의 순위가 결정된다.

1) 군대들에게 공급한다. ‘군대가 있어야 나라가 있다’는 뜻이다. 각 군부대 차들은 군대번호를 가리고 사민(私民)용 차 번호를 달고 부두에 들어가 그 자리에서 쌀을 받아 부대로 돌아간다. 부두에서 나오면 곧바로 번호를 군대 차번호로 바꾸고 부대로 돌아간다.

2) 당기관, 보위부, 보안성, 검찰소 등 권력기관들이 차례로 차를 준비하여 쌀을 받아간다. 이들이 받아가는 배분 양은 일년치 전량에 해당된다.

3) 각 공장들이 가져간다. 차가 없는 공장들은 다른 공장의 차를 빌린다. 차 임대료는 쌀로 주기로 약속한다. 기름값도 쌀에서 변제한다. 쌀을 받아 임대차 값 쌀 대신 절반 타작 당하고, 기름값을 마련하기 위해 현지에서 쌀의 일부를 팔아 돈으로 기름을 산다. 그 결과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쌀은 시장의 쌀값과 같게 된다.

4) 일반 주민들 몫이다. 권력기관에서 전량을 가져가면 실제로 남는 게 없다. 주민들은 남한에서 쌀을 지원하든, 안 하든 별 관심이 없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다. 돈만 있으면 비싼 값으로 장마당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양정(糧政)일꾼들과 당일꾼들은 국제사회에서 주는 지원미를 장마당으로 빼돌려 개인의 잇속을 채운다. 또 군부대 후방일꾼들과 군 정치간부들은 군량미를 시장에 빼돌려 폭리를 취한다.

▲ 대한민국 상표가 붙은 쌀이 수남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DailyNK는 2005년 2월15일, 6월 22일 국제사회가 지원한 구호미의 일부가 함북 청진시 수남시장에서 되팔리고 있는 동영상을 잇따라 보도한 바 있다. 북한의 식량분배 속사정은 이 동영상에 그대로 드러난다.

정장관은 이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인 동영상을 한번이라도 보았는지 의문이 든다. 한번이라도 보았으면 북한주민의 식량지원이 북한주민들의 인권개선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는 이야기를 쉽게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주민들은 거주이전의 자유, 직장이동의 자유, 여행의 자유 등 초보적인 인권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인권의 실질적 개선 대상인 주민들이 남한에서 보내준 식량을 먹은 독재기관들과 권력기관들로부터 인권탄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권이 개선되려면 식량도 좋지만, 정치범 수용소 문제와 공개총살문제 등 인권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주어야 한다. 북한 인권문제를 원칙적인 견지에서 정공법으로 다뤄주어야만 식량분배 문제, 즉 실질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개선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