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 고소-위폐부인…참여정부, 北 ‘후안무치’ 부추겨

▲ WFP가 지원한 식량이 북한 내에서 분배되고 있는 장면

북한의 행동이 도를 넘고 있다. 그 동안 온갖 억지와 피해자 논리로 핵과 미사일, 인권문제 를 변명해왔던 북한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남한과 국제사회를 협박하고 있다.

북한은 유엔세계식량기구(WFP) 사무소와 현장 요원들을 철수시켰다. 북측으로 송환된 장기수들은 한나라당을 대상으로 10억 달러 피해보상 소송을 냈다. 국제범죄행위인 위폐수사와 금융제재를 핑계로 6자회담도 불참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행동에 국내외적 비판여론이 높아가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는 분명한 입장도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러한 처신에 대해 한국 정부가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이 번번이 국제사회 룰을 어겼음에도 우리 정부가 감싸기로 일관해온 ‘후폭풍’이라는 것이다.

◆WFP 대북 식량지원 전면 중단

올해 1월 1일부터 유엔 세계식량기구(WFP)는 북한에 대한 모든 식량지원을 중단했다. 북한당국이 ‘개발(자금)지원’으로 전환을 요구하면서 국제기구 사무소와 식량 배분 감시요원들의 철수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WFP 이외에도 국제적십자연맹, 유엔개발계획 등 국제기구의 인원 축소를 요구했다. 만성적인 식량과 의료, 생활 물자 부족을 겪고 있는 북한이 이처럼 강압적인 자세로 국제기구의 철수를 요구한 배경에는 한국의 대규모 지원이 있다.

WFP는 지난해 북한에 식량 10만 톤을 지원했다. 10만톤의 분배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감시요원 100여 명이 한 달 평균 450회에 걸쳐 전국을 검증했다. 북한도 여기에 협조했다. 올해 한국 정부는 50만 톤을 지원하면서 10만 톤마다 통일부 직원 서 너명이 20곳을 방문하는 데 그쳤다.

한국의 ‘무사통과’ 대규모 지원이 있는 마당에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한국처럼 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것이다. 결국 북한이 외부사회의 압력을 회피하기 위해 한국 정부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국제기구가 확보한 투명성 조치마저 무력화시키고 있다.

◆남측에 북송장기수 피해보상 10억 달러 요구

북한으로 송환된 비전향장기수들이 6일 과거 남한의 군사정권 하에서 겪었던 인권유린에 대한 보상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고소장에서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자행된 인권유린 피해보상금액으로 10억달러를 요구했다.

북송 장기수들 대부분은 남파간첩이나 전향하지 않은 빨치산 출신으로 대한민국을 전복하기 위한 활동한 중대 범죄자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어부, 스튜디어스, 교사, 학생 등 죄 없는 민간인 강제로 납치해 아직도 484명을 억류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에 장애가 된다며 납북자 문제와 북한 인권문제를 정부간 대화에서 배제해왔다. 과거사위는 국가에 의한 민간인 피해보상을 6.25 전쟁 시점까지 확대했다. 결국 이러한 정부의 정책이 북한의 ‘개념’ 없는 행동을 부추겨 온 꼴이 됐다. 정부가 판문점에서 북측의 고소장을 접수한 행위도 한심하기 그지 없다.

◆핵과 위폐문제

북한은 위폐수사를 핑계로 6자회담에 불참하고 있다. 북한의 위폐유통 행위는 이미 국제사회의 검증이 마무리 되고 있는 상태다.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의 위폐 거래는 상식에 가깝다. 한국정부는 과거에는 북한의 위조달러가 분명하다는 입장에서 지금은 확신할 수 없다는 식이다. 우리정부가 앞장서 증거 불충분을 외치자, 북한은 9일 미국의 위폐 자료가 사실이 아니라며 공식 부인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5일 “북한의 위폐 제조 등 불법행동에 대한 우리의 제재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그런 행동을 수수방관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취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6자회담과 위폐문제를 연계시키지 않을 것이고, 실질적 억지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위폐문제로 6자회담이 공전되고 위기가 고조되면 북한의 남북공조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이후에도 대북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북측의 경수로 제공 요구도 ‘회담 전략’이라고 하면서 설득을 강조하고 있다. 핵개발의 근본 해법은 차치하더라도 회담 방해 행위만큼은 단호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북한 눈치보기로 일관하고 있는 모양새다. 늘어가는 것은 북한 핵무기이고, 약화되는 것은 한-미-일 공조다.

대북현안의 국내정치화가 근본 장애

북한은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반미를 위한 민족 대단결’과 ‘남한 내 반보수 대연합 구축’을 천명했다. 정부와 여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공조를 더욱 강화할 조짐이다. 여당 대권후보들은 이른바 ‘수구냉전세력’을 제외한 민주세력 단결을 촉구하고 있다. 남북정권이 똘똘 뭉쳐가는 분위기를 쉽게 읽을 수 있다.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대북 현안은 이미 국내정치와 깊숙한 연관을 맺게 돼 버렸다. 남북공조를 앞세우는 정부가 핵과 인권, 위폐 문제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북한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남남갈등도 심화될 것이다.

북송 장기수들의 ‘피해보상’이라는 기막힌 요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은 하나를 양보하면 둘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이것이 북한의 상투적인 수법임을 전문가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원칙적인 대응은커녕 마치 남의 일인양 뒷짐지고 있다.

김정일 집단에게 계속 양보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음의 표본이다. 지금까지 각종 남북회담과 국제회담을 통해 보면 삼척동자라도 알만한 일이다. 국제사회와 함께 분명한 원칙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발상은 이제 과감히 접고, 국제사회와 굳건히 공조해 북한의 범죄행위를 뿌리뽑고 정상국가화를 촉구해야 한다. 이제 말로써 북한정권을 설득하려는 시도는 접어야 한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