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위에 올라탄 당 간부들

내가 북한에서 제2자연과학출판사 필사공(筆寫工)으로 있을 때 교정부의 한 여성기자는 사담(私談) 끝에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 언니 아저씨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서인데 정치국 비서의 부인들은 직장에 못나가게 한다더구만. 그리구 남편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대접하나, 이런 것만 강습을 주고, 생활총화도 오늘 남편 반찬 어떤 것으로 해 주었는가에 대해 토론하게 한다더구만. 참 희한한 데 다 있지.”

내가 대학 가기 훨씬 이전이었던 1980년대 당시는 평양시에서 직장 안 나가고 집에서 노는 여성은 ‘동네에서 쓸데없는 말이나 하고 다니는 자,’ ‘남편망신 시킬 여자’로 사회적인 낙인이 찍히던 때였다. 김일성이 우선 여자들을 집에서 놀면 사상이 낙후된다고 수차례 ‘교시’를 내려 보낸 뒤였고, 집에서 노는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을 죄인시하여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던 터였다.

그런데 이 ‘율법’이 모든 북한 여성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상이 낙후해진다는 이유로 김일성이 기를 쓰고 반대해온 ‘집에서 노는 여자’의 삶은 고위계층 여성들에게 흔하게 발견되었다. 수령의 교시를 가장 앞장에서 실천해야 할 고위계층 여성들이 수령의 의도와는 정 반대되는 삶을 살도록 강요당하는 이상한 체계가 북한사회에 존재했던 것이다.

특수계층이 늘어나는 북한, 돌아올 수 없는 나락의 길로 빠져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엔 평양시에서 몇 달째 배급을 안 줘 죽도 겨우 먹는 가구가 시민인구의 50%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사람들은 만성적 배고픔에 지칠대로 지쳐 평양시내는 전체적으로 무기력하고 침울한 공기가 온갖 생명체를 질식시켜버릴 듯이 감돌고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는데 남편이 별안간 수년전에 보아둔 산채를 뜯으려 가자고 해서 같이 나섰다가, 산채는커녕 그림자도 못 보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남편의 맹랑한 처사에 허탈해하며 임신한 몸을 간신히 가누며 어청어청 돌아오고 있었다. 보통강을 끼고 휘돌아간 인적이 잘 닿지 않는 유원지 보도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잘 먹어 영양이 좋은 뱃속에서 울려나오는 군중의 기름진 환성과 만세소리가 줄곧 내 귀를 어지럽히는 것이었다. 들어본지 참으로 까마득한 ‘인육의 고성’이었다.

내가 지금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이곳이 북조선 평양 땅이 옳은가? 분명 주위는 눈에 익은 풍경이었다. 저 멀리 낡아빠진 도로 위로는 다 낡아빠진 무궤도전차 한 두 대가 지렁이 기어가듯 꾸물꾸물 전진하고 있었다. 그럼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고 무슨 함성을 듣고 있는 걸까? 나는 호기심이 바싹 일어 소리나는 쪽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갔다. 얼마 안 가 절벽같은 높고 긴 철책 앞에 부딪쳤고 철책 안 깊숙한 종심부에서 옷을 잘 입은 부녀자 무리들의 날뛰는 모양이 언뜻언뜻 보였다.

그보다 급하게 나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것은 철책 바로 안쪽에 터질 듯이 디룽디룽 매달려 있는 철 지난 강냉이 자루들이었다. 그때 평양시내 인근 텃밭들에선 강냉이 이삭이 사라져 버린 지 이미 오랜 뒤였다. 여기 철지난 강냉이자루들은 배부른 자들에 의해 농락당하고 버림받고 있는 듯했다. 그야말로 별난 세상이었다. 저 강냉이 한 자루가 없어 대학 교수들은 의자에 앉은 채 맥없이 강의하고 학교 교원들은 날 저물면 얼굴 싸매고 장마당에 나가 빵 장사를 하고 있는데……..

나는 가능하다면 어떤 위험을 무릅 쓰고라도 배반당해 버려져 있는 불쌍한 강냉이 몇 자루를 따내고 싶었다. 그러나 철책 위로는 가시철망에 전기 줄까지 흐르고 있고 그 철책 사이사이엔 총을 멘 군인들이 두 눈 부릅 뜨고 이쪽을 이글이글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부질없는 생각을 단념해 버리고 이곳이 어딜까 생각해 보았다. 등 쪽으로 점점 꼬부라져드는 창자를 느끼며 주위를 살펴보니 바로 그 유명한 중앙당 부부장 아파트촌이었다. 중앙당 부부장 이상급 아내와 자녀들이 떨쳐 나와 무슨 운동회를 하는 듯했다. 여기는 북한의 일반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 ‘특수인간’들이 사는 구역이었다. 그랬다. 여기는 딴 세상이었다. 평양시민들이 굶어 죽는 것과는 전혀 인연이 없고, 시민이 다 굶어 죽어도 전혀 상관하지 않는 ‘딴 세상’…….

북한의 현실이 비참해질수록 특수 계층은 점점 늘어나 있고, 저런 무리들이 특수한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체계를 공공연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헤어날 수 없는 깊은 나락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는 것인지 모겠다.

최진이 / 前 조선작가동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