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통일 독트린’이 필요하다

I.
“무자비한 보복·타격”은 ‘노동당 조선어’의 대표적 표현이지만 이미 오래 전에 언어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 표현에 위협을 느끼지도 않을 뿐더러 대부분의 국민은 관심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 북한이 국방위원회의 성명 형식으로 발표한 ‘무자비한 징벌·타격’에 대해서 한국정부가 과민반응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몇 가지 주의 깊게 생각할 점은 있다.


왜냐하면 이 성명은 비록 공식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비상통치계획-부흥’이라는 북한급변사태시 대처계획에 대한 북한의 반응, 즉 일종의 의견교환의 하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상통치계획-부흥’이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북한의 정치·경제 체제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전환하여 북한을 부흥시키겠다는 일종의 통일론이고, 북한의 ‘무자비한 타격’ 운운은 이런 통일론에 대한 북한정권의 반응이다.


물론 체제변화에 대한 김정일의  반감과 수령체제에 대한 집착은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북한의 실질적인 최고권력기관 ‘국방위원회’가 강도가 제일 높은 형식인 ‘성명’으로 발표하였고, 국방위원회 성명이 전례가 없다는 점은 중·후기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최고 수준의 답변을 하기에 적절한 기회인 것이다. 왜 그러할까?


김정일 정권과 한국의 종북주의자들은 6.15선언에 따른 낮은 수준의 연방제 통일을 마치 빚쟁이처럼 지난 10년간 반복 주장하여 왔지만, 통일한국이 어떤 체제를 지향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또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조차 납땜으로 수신을 ‘조선중앙방송’으로 고정하는 북한정권이 남북한 주민들의 자유 왕래를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점은 너무나 명백하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도 전혀 없다.


그렇다면 한국 국민 중에서 북한의 정치·경제 체제도 변하지 않고, 자유 왕래도 되지 않은 상태를 과연 ‘통일’이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한마디로 북한 체제의 변화가 없는 6.15식의 연방제통일은 한미동맹을 와해시켜 적화통일로 가기 위한 우회로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II.
그러나 바로 여기에 한국이 통일논의에 있어서 북한정권에 대해 비할 수 없이 큰 강점이 있다. 김정일은 6.15식 연방제 통일논의에서 이미 파산이 확인된 ‘우리식 사회주의’, 더 정확히 말해 ‘수령조폭집단체제’를 통일한국의 체제로 내세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가 북한 내에서는 강성대국 운운하면서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세울지 몰라도, 한국국민 중 어느 누구도 북한체제로의 통일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에서 북으로 탈남한 자의 수를 보면 분명해진다. 심지어 종북주의자들조차 북한행을 권유해도 가지 않는 실정이다.


다른 한편 한국은 당당하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내세울 수가 있고, 또 내세워야만 한다. 왜냐하면 ‘실패한 체제’와 ‘성공한 체제’ 간에 통일을 논할 때 양측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자기 체제를 주장할 수 없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치체제로서 자유민주주의는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지도, 또 다른 인간이나 기관에 의해 지배당하지도 않으면서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또 경제체제로서 시장경제는 잘 알려진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경험적으로 자기개혁 가능성이 확인되고 현실적으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체제이다.


설사 ‘현재’ 북한 주민 상당수가 그간 북한정권의 정보차단과 세뇌로 인해 한국과의 통일을 원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들의 의사가 정상적 상황에서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코 결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원래 의사결정은 항상 관련된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때에만 정당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과 직접 핸드폰으로 통화가 가능한 중국과의 접경지역에 사는 많은 북한동포가 탈북하고 있다는 사실은, 만일 한국의 현실이 가감 없이 북한에 유입될 때, 북한 주민의 의사가 빠른 시간 내에 바뀔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정리하면, 통일이라고 이름 부칠만한 통일을 결코 바랄 수도 실행할 능력도 없는 북한정권이 입만 열면 한국의 보수주의를 반통일주의, 반민주주의, 파시즘 등으로 호도하고 여기에 종북·친북주의자들이 합세하는 상황은 이해할 수도, 이해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국방위원회 성명에도 자신들을 ‘평화·통일’과, 한국정부를 ‘전쟁·분열’과 연결시키는 작태를 잊지 않고 있다. 순전히 논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김정일 정권의 바보 같은 짓을 그냥 놔두는 것은 한반도의 통일 논의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행위이다.


III.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명박 독트린’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실적 통일론을 천명할 때가 되었다. 김정일과 남북한의 그의 수하들에게 이제 과연 누가 현실적·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평화·통일의 길을 제시하고, 누가 한반도 전체에 사람다운 삶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는지 분명히 할 때가 되었다.


그 내용은 북한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을 선택한다면 국가연합이든 연방제든 김정일이 그토록 목메어 외치는 6.15 및 10.4 선언에 대하여 논의할 수 있다는 점을 국내외에 천명하여 통일논의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다. 바꿔 말해 정치적 통일에 대한 논의와 함께 북한의 재건·부흥을 함께 진행시키는 장기적 경제통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또 북핵해결을 위한 ‘그랜드 바겐’은 더 큰 통일의 ‘그랜드·그랜드 바겐’의 시작으로서 그 의미가 분명해질 것이다. 즉 한반도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로 통일이 되는 과정에서 남북한이 맺는 첫 계약이다.


물론 김정일 정권이 이명박 독트린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북한정권이 통일을 입에 담을 때마다 이명박 독트린을 상기시킴으로써 그 선전·선동적 성격을 분명히 해 줄 수 있을 뿐더러, 조만간 닥칠 포스트 김정일체제 하의 북한에게 미리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통일의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현실적 의미가 있다.



IV.
다른 한편 ‘이명박 독트린’의 천명은 현재 그 출구가 보이지 않는 세종시 문제를 어느 일방의 완승이 아니라 윈-윈으로 끝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스개이지만 통일은 2일에서 20년 내에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만큼 우리가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통일의 시작’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통일이 시작되는 상황 하에서 수도기능을 분할하는 것은, 그것이 국민과의 약속이건 아니건, 국민의 신뢰를 얻건 잃건 상관없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위라는 점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 점은 단순히 행정효율의 문제를 넘어서서 통일과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국가의 중심, 믿음의 중심이 희미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울은 서울주민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수도이며, 그것을 어느 지방민이 수도기능의 일부를 자기 것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은 수도의 기능을 순전히 기계적인 보는 데에서 오는 오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시에 행정기능 일부를 옮기는 것에 충청도민들이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한 나라의 수도 혹은 수도가 있는 지역에 산다는 것이 갖는 상징성, 혹은 관이 국민생활에 깊은 영향을 끼쳐왔던 오랜 전통이 국민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세종시 수정안의 경제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활성화된 통일론이 하나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통일국가의 중심으로서 수도는 계속 서울로 남아있어야 하지만, 북한에 평양이나 원산이 지방정부의 중심으로 기능할 수 있듯이, 남쪽에도 지방정부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세종시가 통일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런 제안을 현재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는 정치세력 중에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를 통일한국의 정체성으로 인정하는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먼 미래의 불확실한 희망’으로 부정할 수도, 또 부정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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